[삶의 향기] 예리했지만 뾰족하지 않았던 신익희

서울 생활을 제법 했는데도 계절이 변할 때면 고향 생각이 난다. 지금쯤 금만평야는 무슨 색이고, 농부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상상해본다.
금만평야의 농부들도 여느 농부들처럼 논 갈고, 모 심고, 뙤약볕 아래서 틈틈이 피사리를 했다. 논에서 나락을 거두어 타작을 끝내고 나서야, 새끼 가오리인 ‘갱개미’ 회를 안주 삼아 막걸리 두어 사발로 목을 축였다. 겨울철에도 일을 멈추지 못했다. 멍석에 둘러앉아 새끼 꼬고 망태기를 짜며 틈틈이 소여물도 쑤어야 했다. 사시사철 손에서 일을 놓지 못했다. 6·25가 터졌다는 말을 듣고도 논에 물을 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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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직후 금만평야 농군들 치하
뜻밖의 감사 인사에 청중 눈시울
기개 컸지만 촌에선 촌사람 되어
」

긴 전쟁이 끝나고 석 달이 흐른 1953년 10월, 금만평야 만경고을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전쟁이 끝났어도 아직 불안해하던 농부들에게 낯익은 면서기가 소식을 전했다. “알려드립니다. 내일모레 국회의장 해공 신익희 선생이 만경에 온답니다. 모두들 면사무소 앞으로 나오세요.” 동네 사람들은 해공이 만경에 오는 이유가 궁금했다.
당시 2부제 오후 수업 덕에 그날 현장을 보게 된 영수와 만성 두 소년은 할아버지가 되어 70여 년 전 그날을 회상했다. “면사무소 앞이 인산인해를 이뤘어. 500명도 넘었을 거여. 그날은 갓을 챙겨 쓴 어르신들이 일찌감치 나오셔서 단상 앞자리에 앉으셨지.” 해공이 연설을 시작하자 ‘끼익 끼익’ 잡음을 내던 단상의 마이크도 멀쩡해졌다고 한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우리 민족은 늘 배고픔에 시달렸습니다. 전란 때는 말할 것도 없고요. 저는 어릴 적 ‘금만평야가 없었다면 임진란 때 온 백성이 아사했을 것’이란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금만평야에서도 고랑이 만개나 된다는 ‘만경(萬頃)’은 풍년이 들던, 흉년이 들던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쌀 뒤주 역할을 해왔습니다. 여러분의 조상은 일찍이 동고동락의 정신으로 이 나라 백성들과 쌀을 나누었습니다.”
이 말을 한 해공은 깊이 머리를 숙였다. 해공의 말에 감동한 청중들은 흙 때 묻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노인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고 비녀 꼽은 아낙들까지 흐느끼기 시작하자, 해공은 하늘을 한번 쳐다본 후 화제를 바꿨다.
“저는 지난 6월 영국여왕 대관식에 다녀왔습니다. 여왕이 참 예쁩디다. 스물일곱 살이라고 하드만요.” 청중들은 해공이 전하는 영국여왕이야기에 신기해했다. “대관식이 끝나고 여왕과 함께 처칠 수상과 이든이라는 외상을 만났습니다. 먼저 여왕께 감사를 전했습니다. ‘얼마 전 아국(我國)이 전란에 처했을 때 귀국(貴國)이 5만 6000이 넘는 군인을 보내주신 덕에 전란을 마무리했으니, 만약 귀국이 어려움에 처하면 아국이 팔을 걷어붙이고 돕겠다’라고 말했습니다.”
해공의 말엔 어느덧 청중들이 쓰는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청중들은 해공의 말 하나하나에 귀를 세웠다. “그랬더니 처칠이 크게 웃고 이든 외상은 더 크게 웃더만요.” 청중들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우리가 영국을 돕겠다고?” 청중들은 해공의 기개에 감탄했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1956년 5월, 대통령 후보가 된 해공은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유세를 하던 중 호남선 열차 안에서 급서했다. 3년 전 면사무소 앞에서 해공의 연설을 들었던 한 노인은 해공의 사망 소식에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고 전해진다. “그 양반이 우리를 알아줬어. 내 술을 두 사발이나 드셨어. 갱개미 무침도 드시고…. 그런 분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그 양반, 참말로 양반이었어. 욕보았소, 해공.”
해공은 한시를 잘 짓고 외국어도 유창했지만 촌에 가면 촌사람이 되었다. 해공기념사업회의 이창수 선생은 해공을 ‘유식했지만 드러내지 않았고, 예리했지만 뾰족하지 않았던 어른’으로 묘사했다. 해공 사후 70년이 된 지난 7월, 엘리자베스 여왕의 딸 앤 공주가 부산 영국군 묘소를 참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젠 ‘예쁘던’ 여왕도 떠났고, 그녀의 딸도 할머니가 되었다.
며칠 전 들른 해공 가옥 부근에는 기품 있는 곰솔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 아래 화단엔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날개를 접은 채 쉬고 있었다. 해공이 남긴 날개 익(翼)자 서명이 문득 떠오른다.
곽정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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