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수능 시험을 바꾸기 전에 ‘수업’을 바꿔야 한다

2026. 8. 31. 00:3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30년간 오지선다를 지켜온 수능의 근본을 흔드는 제안을 내놓았다.

우리의 수능은 짧은 시간에 긴 지문을 읽고 답을 고르는 연습을 요구하는 시험이고, 수능을 잘 푸는 연습은 비판적 문제의식이나 통합적 사고력을 기르는 과정이 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런 교실을 그대로 둔 채 학생들에게 융합적 사고를 묻는 서·논술형 시험을 대비하라고 요구한다면 그 빈자리는 결국 사교육이 메울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수능은 대학입학시험이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수경
강원대 교수
교육학과
현 수능은 비판적 문제의식이나 
통합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한계 

그러나 일선 교육을 그대로 두면 
서·논술형 대비는 사교육이 주도 

한 가지 질문을 깊이 생각하고 
토론하는 교육 방식으로 변해야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30년간 오지선다를 지켜온 수능의 근본을 흔드는 제안을 내놓았다. ‘서·논술형 도입’이라는 이 한 문장에 입시 논쟁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발단은 지난 5일 청와대 업무보고와 위원장의 언론 인터뷰다. 국교위는 수능에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하고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 중장기 대입 개편안 추진 계획을 밝혔다. 수시 도입과 정시 비율을 놓고 끊이지 않던 입시 논쟁이 시험의 형식을 넘어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라는 근본 질문으로 번진 셈이다.

우리나라 대학입시가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대전환한 것은 1994학년도다. 1983년 처음 개편 논의가 시작돼 93년 제1회 수능이 실시되기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많이 거명된 제도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였다. 교과서적 지식의 단순 암기력이 아니라 통합적 사고 능력을 평가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우리의 미래는 기술에 달려 있는가’(2025년 일반계열), ‘진실은 언제나 설득력이 있는가’(2025년 일반계열), ‘자연은 인간에게 적대적인가’(2024년 기술계열). 이들은 바칼로레아의 필수과목인 철학의 최근 시험문제들이다. 정답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네 시간 동안 자기 생각을 논증해 써내야 하는 질문들이다.

돌이켜보면 수능을 도입할 때 정부가 내건 표어 역시 ‘암기력이 아닌 사고력 평가’였다. 그러나 수십만 수험생의 답안을 공정하게 채점할 자신이 없었던 수능은 ‘자신의 생각을 길게 쓰는 시험’이 아니라 ‘긴 제시문을 읽고 오지선다의 답 하나를 빠르게 고르는 시험’이 됐다. 사고력 평가라는 이상은 변별력과 채점 공정성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 유보됐다.

모든 일반계 고등학교의 1차적 목적은 대학 진학에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계열을 막론하고 고3 내내 기출 문제를 풀며 시험을 대비한다. 문제는 어떤 기출 문제를 풀면서 고3을 보내는가에 있다. 우리의 수능은 짧은 시간에 긴 지문을 읽고 답을 고르는 연습을 요구하는 시험이고, 수능을 잘 푸는 연습은 비판적 문제의식이나 통합적 사고력을 기르는 과정이 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차정인 국교위원장이 “오지선다 객관식 문제를 AI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계속 출제할 것인가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한 것은 도입 당시 미뤄둔 과제를 다시 꺼내들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바칼로레아가 ‘진실은 언제나 설득력이 있는가’를 생각하고 답하게 하는 동안 수능은 정답 하나를 고르게 해 왔다. 그러니 이번 논의의 방향 자체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새로운 제도가 뿌리내리려면 그에 맞는 토양이 갖춰져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 토양의 핵심은 ‘수업’이다. 바칼로레아는 1808년 나폴레옹 시대에 시작된 평가 방식이다.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프랑스 중등교육의 토양 위에 세워지고 다듬어져 온 제도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수업의 토양은 어떠한가. 일선 학교의 교육은 여전히 교과목 중심의 견고한 벽 속에서 분절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과목별로 갈라진 교과서, 정해진 진도를 빠듯하게 따라가야 하는 수업. 지식을 전달하는 데 급급한 교실에서는 한 가지 질문을 놓고 길게 생각하고 토론하는 경험이 설 자리가 없다. 이런 교실을 그대로 둔 채 학생들에게 융합적 사고를 묻는 서·논술형 시험을 대비하라고 요구한다면 그 빈자리는 결국 사교육이 메울 것이다.

바칼로레아는 본질적으로 대학입학시험이 아니라 고교 졸업자격시험이라는 점 역시 짚어야 한다. 서·논술형 문항을 절대평가로 채점해 합격선을 넘으면 고교 졸업 자격, 곧 대학교육을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수능은 대학입학시험이다. 서·논술형과 절대평가를 논하면서도 선발시험의 성격을 그대로 둔다면 우리는 바칼로레아의 문항 형식만 빌려올 뿐 그 정신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이 끝난 날이면 전문가들이 올해의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이고, 파리 시내 카페와 식당에서도 남녀노소가 제 각각의 답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시험의 여운이 오답의 다툼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수능이 끝난 날, 우리 사회도 ‘문제가 어떻게 나왔는가’가 아니라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를 두고 대화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시험장을 나서는 아이들 표정이 아니라 시험 문제가 던진 물음이 저녁 식탁의 화제가 되는 사회를 그려본다. 그날을 보려면 시험을 바꾸기 전에 먼저 수업을 바꿔야 한다.

남수경 
강원대 교수 
교육학과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