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범벅이 된 미용실 잔혹사… "할머니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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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로 향하는 길,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난감 가게에 들러 말랑이 하나를 샀다.
미용실 사장님은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머리를 정리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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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미 기자]
날씨가 덥다 못해 푹푹 찌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벼르고 벼르던 일을 오늘 만큼은 꼭 거행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대상은 둘째 손주 '에그'. 머리가 제법 길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더워 보였다. 마침 큰 손주가 엄마와 함께 뮤지컬을 보러 간 틈을 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최애 할아버지'와 비밀스러운 모의를 시작했다.
"여보, 오늘 에그 머리 좀 깎입시다."
사실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번 큰 손주와 함께 미용실에 갔을 때, 둘째가 울고불고 자지러지던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미용실로 향하는 길,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난감 가게에 들러 말랑이 하나를 샀다. 미끼 삼아 달래볼 생각이었지만, 아직 말이 트이지 않아 소통이 힘든 아이에게 통할지 확신은 없었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안아주고 달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절반의 기대를 품고 미용실 문을 열었다.
기대는 문을 열자마자 산산조각이 났다. 미용실 출입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에그는 사색이 되어 울기 시작했다. 머리를 절대로 자르지 않겠다고 온몸으로 저항하는 아이를 할아버지가 안고 의자에 앉았다. 눈물범벅, 콧물범벅이 된 채 깎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가운을 입고 같이 앉은 할아버지가 아이를 꽉 안아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옆에서 나는 혹시라도 아이가 다칠까 봐 머리를 꼭 잡아주었다. 미용실 사장님은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머리를 정리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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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용실 풍경 |
| ⓒ 홍영미 |
집에 돌아와 아이를 씻기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육아 상식이 턱없이 부족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 스마트폰을 들고 인공지능(AI)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기가 머리 자를 때 너무 우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화면에 떠오른 답변들을 읽어 내려가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AI가 말하는 '아이 머리 깎일 때 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방법'이 바로 오늘 우리가 했던 행동, 즉 '아이를 억지로 잡고 깎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답변에 따르면 유아기 아이들은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것을 자신의 몸 일부가 사라지는 '신체 훼손의 공포'로 느낀다고 한다. 거기에 가위의 차가운 촉감, 바리캉의 기계음, 낯선 공간에서 가운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는 통제권 상실감이 더해져 아이는 극심한 공포에 빠진다는 것이었다.
아이 눈에는 그 자리가 미용실이 아니라 공포의 처형대였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모르고 "괜찮아, 괜찮아, 아프지 않아. 아휴 예뻐라"라며 억지로 잡고 깎였으니, 얼마나 미안하고 죄스러웠는지 모르겠다.
AI는 몇 가지 팁을 일러주었다. 영상을 틀어주고 소리 없이 다가가 깎는 '치고 빠지기'나 청소기를 틀어 바리캉 소리를 묻히게 하는 법, 미용 놀이를 통해 자극에 익숙해지게 하는 방법 등이었다. 이미 실패한 방법도 있었지만, 아이의 심리를 이해하고 나니 앞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아직 미용실이라는 공간이 낯설고 무서운 아기의 머리를 자를 때는 무엇보다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태도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빠르고 깔끔하게 다듬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겁에 질린 아이가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차분히 다가가는 배려가 먼저여야 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기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듯 천천히 머리를 깎아주는 곳도 있다고 하니, 다음에는 아이 전용 시설과 놀잇감이 잘 갖춰진 '키즈 미용실'을 찾아가 볼 생각이다.
당장 오늘 밤부터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부터 해볼 생각이다. 목욕할 때 머리카락을 살짝 만져주며 놀아주고, 집에서 가위로 소꿉놀이하듯 미용 놀이도 시도해 보려 한다. 정 안 된다면 목욕 시간을 이용해 가위로 조금씩 다듬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리라.
집에 돌아와 뽀송해진 얼굴로 과자를 집어 먹는 에그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머리카락 조금 길면 어떠랴. 아이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것보다 조금 더부룩한 게 훨씬 낫다.
"에그야, 할머니가 잘 몰라서 너무 미안했어. 다음엔 절대 억지로 안 할게."
어설픈 초보 할머니는 오늘도 손주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인공지능의 문장을 빌려 뒤늦은 반성문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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