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이었던 술집에서 마신 맥주, 이거 명물이네 [윤한샘의 맥주실록]

윤한샘 2026. 8. 30.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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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모르겐(Guten Morgen,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는데, 지나가던 수도사님이 눈을 찡긋하며 인사를 했다.

나의 맥주 스승이었던 한스가 '뮌헨 맥주는 맥주도 아니야'라고 농담처럼 던졌던 말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그 속에 담긴 맥주는, 조금 과장을 보태 올해 마신 맥주 중 제일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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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샘의 맥주실록] 와인의 도시에서 만난 자유로움 가득한 맥주, 란트비어

[윤한샘 기자]

 풀다에서 머물렀던 프라우엔베르크 프란치스코 수도원
ⓒ 윤한샘
"구텐모르겐(Guten Morgen,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는데, 지나가던 수도사님이 눈을 찡긋하며 인사를 했다. 그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번져있었다. 반가우면서도 쑥스러운 마음이 뒤섞인 웃음으로 나 또한 "구텐모르겐"을 건넸다. 독일 헤센주의 도시 풀다(Fulda)에서 묵은 곳은 수도원이었다.

수도원에서 묵은 하룻밤

프라우엔베르크 프란치스코 수도원, 아름다운 풀다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품고 있다. 성모교회로 시작해 11세기 중반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성장했지만, 16세기 농민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30년 전쟁 중이던 1623년 프란치스코 수도원이 된 유서 깊은 성지다. 2017년, 프란치스코 계열 사회적 기업이 장애인 등 약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활동의 일환으로 수도원의 일부분을 게스트하우스 겸 연수원으로 활용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운 좋게도 이 유서 깊은 곳에서 하룻밤을 머무를 수 있었다. 문제는 전날 밤이었다. 풀다 대성당을 둘러본 후,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수도원에 도착했는데 그냥 잠을 청하기에 뭔가 아쉬웠다. 고민하던 찰나 수도원 정원 구석에 있는 작은 쉼터가 떠올랐다. 어둠이 옅게 스며든 밤, 우리는 그곳에 모였다. 와인 한 병을 조금씩 나눠 마시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시간 남짓 지났을까. 깜깜한 어둠 뒤로 거대한 실루엣이 다가오는 게 아닌가.
 수도원 호텔방 침대 모습
ⓒ 윤한샘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흐른 것도 잠시, 다행히 그림자의 정체는 수도사님이셨다. 나름 숨을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밤공기를 타고 소리가 샜던 모양이다. 호통이 쏟아질 줄 알았던 수도사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방해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모여서 와인을 마시는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다만, 여기보다 더 좋은 야외 테라스 자리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면 어떨까요? 거기서 남은 회포를 푸시지요."

순간 살짝 감동 받았다. 와인도 다 마셨겠다, 날도 어두워졌겠다. 그리고 밖에 더 있는 것도 염치가 없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숙소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밝은 햇살 아래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건넨 미소에는 많은 감정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어느덧 막바지로 향하는 아쉬운 여정, 다음 목적지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추억이 담긴 뷔르츠부르크였다. 언제 방문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래전 겨울, 마리엔베르크 요새에서 바라본 뷔르츠부르크의 야경과 다리 근처에서 마신 와인을 잊을 수 없었다. 화창한 여름, 동일한 레스토랑에서 이번에는 맛있는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프랑켄의 도시

뷔르츠부르크는 바이에른의 북서쪽 끝에 있다. 그러나 거리로 보면 프랑크푸르트에서 1시간 남짓에 불과하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행정 구역상으로는 바이에른에 속하지만, 역사적으로 '프랑켄(Franken)'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뷔르츠부르크는 프랑켄에서도 '운터프랑켄(하 프랑켄)'의 중심 도시다.

'프랑크족의 땅'에서 이름이 유래한 프랑켄은 원래 바이에른과는 뿌리도 언어도 다른 문화권이었다. 가톨릭 주교들이 다스리던 이 땅이 바이에른에 편입된 것은 나폴레옹이 유럽의 지도를 다시 그린 19세기의 일이다. 그것도 자발적 합류가 아니라 위로부터 진행된 강제 병합이었다.

그래서일까, 프랑켄 사람들은 지금도 은연중에 '우리는 바이에른이 아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나의 맥주 스승이었던 한스가 '뮌헨 맥주는 맥주도 아니야'라고 농담처럼 던졌던 말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한스는 프랑켄에서도 맥주의 심장인 밤베르크(오버프랑켄) 사람이었다. 프랑켄의 상부 지역을 의미하는 오버프랑켄은 작고 독립적인 마을 양조장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밤베르크와 바이로이트는 맥주 자부심으론 세계 최고인 지역이고.

프랑켄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원래 바이에른의 중심지였던 레겐스부르크, 잉골슈타트, 뮌헨과 다른 정체성을 느낄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국기다. 흰색과 파란색으로 되어 있는 바이에른 기와 달리 프랑켄 지역은 흰색과 빨간색 기를 걸어 놓는다.

맥주에서도 미묘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바이스비어와 헬레스가 중심인 뮌헨과 달리 밤베르크와 바이로이트 같은 프랑켄 지역에서는 켈러비어나 훈연맥주처럼 전통적인 색이 녹아있는 맥주를 만날 수 있다.

기독교 그리고 와인의 도시, 뷔르츠부르크

뷔르츠부르크의 역사는 독일 기독교와 궤를 같이한다. 7세기 킬리안 성인이 게르만의 땅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선택한 출발지가 바로 이곳이다. 8세기에는 '독일인의 사도', 성 보니파티우스가 뷔르츠부르크에 최초의 주교구를 세우며 영적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풀다 대성당에 안치된 성 보니파티우스의 묘
ⓒ 윤한샘
기독교에 확고한 힘을 부여한 사람은 붉은 수염의 황제, 바르바로사였다. 1156년 뷔르츠부르크에서 결혼한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1168년 이곳을 주교가 직접 통치하는 주교후국으로 인정했다. 주교후국은 황제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고 주교가 독립적으로 통치 하는 영방을 뜻한다.
관광 중심지인 마리엔베르크 요새와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도 원래 주교들의 거처였다. 13세기부터 주교후들은 도시 전역을 방어할 수 있는 마리엔베르크 요새에 머물렀다.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 이 요새는 오로지 전쟁을 방어하기 위한 거대한 성채다.
 알테 마인교에서 바라본 마리엔베르크 요새
ⓒ 윤한샘
하지만 18세기 전쟁의 위험이 잦아들자, 주교후로 강력한 권력과 부를 축적한 쇤보른 가문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벤치마킹한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를 지었다.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정점을 보여주는 이 건축물은 바르바로사를 그려 넣은 황제의 방과 황금으로 도배된 거울의 방 그리고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가 그린 거대한 천장 프레스코화로 유명하다.
수백 년 동안 이어오던 권력을 무너뜨린 사람은 다름 아닌 나폴레옹이었다. 그는 유럽 대륙을 정벌하며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세속화시켰다. 라인강 좌안을 병합한 나폴레옹은 땅을 잃은 바이에른과 프로이센 같은 독일 영주들에게 주교후국 같은 영방을 나눠주었다.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 베르사유 궁전을 벤치마킹해 지었다.
ⓒ 윤한샘
뷔르츠부르크의 운명도 이때 결정되었다. 프랑켄의 도시가 아니라 바이에른의 도시로, 자신의 의지가 아닌 외부 권력에 의해 강제 병합된 것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나는 바이에른 사람이 아니라, 프랑켄 사람이야'라는 말이 수긍된다.

와인은 이런 뷔르츠부르크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상징과 같다. 실바너 품종으로 빚은 화이트 와인은 동그랗고 납작한 병 복스보이텔에 담겨있다. 이 와인은 바이에른에서도 상 프랑켄과 중 프랑켄에서 만날 수 있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와인의 도시에서 만난 란트비어
 마리엔베르크에서 바라본 뷔르츠부르크 전경
ⓒ 윤한샘
뷔르츠부르크에 도착해서 먼저 둘러본 곳은 마리엔베르크 요새였다. 이 언덕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 어떤 독일 도시보다 아름답다. 마인강 건너 수많은 교회들이 서로 다른 스타일을 뽐내며 앉아 있었다. 놀라운 점은 레지덴츠를 비롯해 대다수 교회와 건물들이 세계대전 폭격으로 모두 부서졌다는 사실이다. 지금 보고 있는 풍광은 복구의 결과들이다.

다행히 맑은 날씨 덕에 길목 곳곳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푸른 하늘 아래 커튼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는 포도밭은 왜 와인이 이 도시의 영혼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빨리 내려가서 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물론 맥주도 한 잔 필요했고.

알테 마인뮐레(Alte Mainmühle), 십여 년 전 와인을 마셨던 이 식당은 '알테 마인교'(Alte Mainbrücke) 초입에 있다. 12명의 성인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는 이 다리는 마치 프라하 카를교의 축소판처럼 보였다. 식당 이름 중 '알테'는 오래된, '마인'은 마인 강, '뮐레'는 방앗간을 의미한다. 아주 옛날 방앗간이었던 장소가 지금은 뷔르츠부르크를 대표하는 가스트호프가 된 것이다.

겨울에 찾았을 때는 몰랐던 풍경이 펼쳐졌다, 눈부신 하늘 아래 다리 뒤로 우뚝 솟은 마리엔베르크 요새는 컴퓨터 배경 이미지처럼 다가왔다. 무엇보다 알테 마인뮐레 입구에서 브뤼켄숍펜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낭만 그 자체였다.

브뤼켄숍펜(Brückenschoppen)은 '다리 위에서 와인 한 잔'이라는 뜻으로, 알테 마인교 입구에 서서 와인을 마시는 문화를 말한다. 손에 와인 잔을 들고 환하게 웃는 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내 위장은 알테 마인뮐레로 어여 들어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프랑켄 와인
ⓒ 황병진
오랜만에 왔지만 실내는 거의 바뀌지 않은 듯했다. 가장 먼저 주문한 건, 돼지어깨살 구이인 섀이펠레(Schäufele)였다. 섀이펠레는 삽이란 뜻으로, 돼지어깨뼈가 삽처럼 생겨 붙은 이름이다. 이 어깨살 구이가 너무 그리웠다.

음료 메뉴를 보니 수십 개의 와인이 한 면을 채우고 있었다. 대부분 지역 품종인 실바너로 빚은 화이트 와인이었다. 맥주도 빠질 수 없지. 그런데, 웬걸, 맥주는 딱 두 개, 필스너와 란트비어 밖에 없는 게 아닌가.

잠깐, 란트비어가 있다고? 그렇다면 실망할 필요 없지. 란트비어(Landbier)는 그 고장의 색깔이 담긴 동네 맥주를 말한다. 보통 필터링 하지 않은 라거인 켈러 비어나 츠비켈일 경우가 많다. 노포에서 우리가 지역의 손맛을 느끼듯, 란트비어야말로 그 동네의 매력을 품은 명물이다.

자유로움을 품고 있는 맥주
 알테 마인뮐레의 란트비어와 섀이펠레
ⓒ 윤한샘
맥주는 세라믹 재질로 된 슈타인글라스에 나왔다. 잔을 만져보니 엄청 차가웠다. 그 속에 담긴 맥주는, 조금 과장을 보태 올해 마신 맥주 중 제일 맛있었다. 색과 투명도는 알 수 없었지만, 희미한 흰 빵, 부드러운 질감, 잘게 부서지는 거품, 낮은 쓴맛과 은은한 단맛, 존재감이 없는 홉 향으로 미뤄볼 때 켈러비어가 확실했다.

쾰른의 쾰쉬와 뒤셸도르프의 알트. 돌이켜보면, 앞선 두 맥주는 엄격한 규정 속에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켜온 맥주였다. 반면 뷔르츠부르크 란트비어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프랑켄 맥주들은 마을 곳곳의 작은 양조장에서 '소박하게, 여기서, 우리만의 것'을 빚어내고 있었다.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다는 건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 아닐까. 와인의 도시, 뷔르츠부르크에 와서야 동네 맥주로 이걸 깨닫다니, 그것도 십여 년 만에.

역시 한 모금의 맥주가 알려주는 건, 거창한 역사가 아니다. 지금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스한 자부심이다. 모두의 일상을 위해, 건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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