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건 없다, 그런데 20년 넘게 살아남았다…이 스테이크의 힘 [쿠킹]
매달 한 곳의 스테이크하우스를 찾아 그 집만의 고기 철학과 조리 방식, 공간의 결을 차분히 기록하는 〈스테이크의 정석〉을 시작합니다. 스테이크 전문가 김광중 셰프가 화제성보다 완성도에 주목해 스테이크 한 접시에 담긴 디테일을 짚어봅니다. 6회는 ‘울프강 스테이크하우스’입니다.
⑥ 울프강 스테이크하우스

좋은 스테이크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마블링이 화려하게 핀 좋은 원육, 수십 일에 걸친 숙성, 혹은 셰프의 정교한 조리 기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좋은 조건을 갖추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그 품질을 얼마나 일정하게 유지하느냐입니다.
좋은 원육을 선별하고, 충분히 숙성한 뒤 강한 불로 정확하게 구워내는 것. 말로는 쉬워 보이지만 이 기본적인 과정을 매일 같은 수준으로 반복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오늘은 이 클래식한 방식을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울프강 스테이크하우스(Wolfgang’s Steakhouse)'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미국 본토 매장도 경험해봤지만, 이번에는 국내 매장을 중심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울프강의 탄생 배경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창업자 울프강 즈위너(Wolfgang Zwiener)는 셰프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는 뉴욕의 유명 스테이크하우스 '피터 루거(Peter Luger)'에서 40년 넘게 헤드 웨이터로 근무하며 수많은 손님과 스테이크를 가까이에서 지켜봤습니다. 2004년, 정년을 넘긴 나이에 뉴욕 파크 애비뉴에 자신의 이름을 건 첫 레스토랑을 열었을 때 그는 새로운 스타일의 요리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두툼한 포터하우스와 드라이에이징, 초고온 브로일러, 클래식한 사이드 메뉴까지. 전형적인 뉴욕식 스테이크하우스의 구성을 따랐습니다.
그 중심에는 품질(Quality), 숙성(Aging), 굽기(Broiling) 세 가지가 있습니다. 울프강 스테이크하우스는 미국 농무부(USDA)의 프라임 등급 블랙 앵거스 품종을 사용하며, 한국을 비롯한 해외 매장에서도 이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원육은 매장 내 전용 숙성실에서 약 28일 동안 건식 숙성(Dry Aging)을 거칩니다.
드라이에이징은 온도와 습도, 공기 흐름 등을 관리하며 고기를 숙성하는 방식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분이 줄어 풍미가 응축되고, 효소 작용으로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식감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드라이에이징 특유의 고소하고 너티(Nutty)한 향도 이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숙성을 마친 고기는 약 1600℉(870℃)의 초고온 브로일러(위에서 강한 열을 가하는 조리기기)에서 빠르게 구워냅니다. 강한 화력으로 표면에 짙은 크러스트를 만들면서 내부는 원하는 굽기로 익히는 방식입니다. 한국에서는 우권제 총괄셰프를 중심으로 이러한 조리 기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울프강 스테이크하우스에는 특유의 클래식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국내 첫 매장인 서울 청담점도 그렇습니다. 레드 카펫이 깔린 계단을 올라 위스키 바를 지나면 흰 테이블보와 클래식한 가구, 단정하게 차려입은 직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서울 청담동에 있지만 잠시 뉴욕의 오래된 스테이크하우스에 들어온 듯합니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게 만드는 순간은 시그니처 메뉴인 '포터하우스'가 등장할 때입니다. T자형 뼈를 중심으로 채끝등심과 안심이 나뉜 두툼한 스테이크가 뜨겁게 달군 접시 위에서 지글거리며 테이블에 놓입니다. 서버는 고기를 덜어낸 뒤 접시에 고인 버터와 육즙을 다시 고기 위에 끼얹습니다. 고기를 접시 가장자리에 살짝 대면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향이 올라옵니다. 주변 테이블에 스테이크가 나올 때도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갈 정도입니다.
울프강이 모든 것을 뉴욕 방식 그대로 고집하는 것은 아닙니다. 포터하우스와 드라이에이징, 초고온 브로일링처럼 스테이크를 만드는 핵심은 유지하면서 그 주변 메뉴에는 한국의 식재료를 꽤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시즌 메뉴에는 대저토마토와 서산 주꾸미, 달래, 전복 같은 국내 제철 식재료가 등장합니다. 포터하우스는 그대로 두고, 사이드와 시즌 메뉴에서 한국의 계절과 입맛을 반영합니다.

"미국 브랜드이지만 울프강에 가면 김치를 주문해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김치 역시 이곳에서 꽤 존재감 있는 사이드 메뉴입니다. 뉴욕 스테이크하우스의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되 한국 고객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받아들인 셈입니다.
글로벌 F&B 브랜드가 다른 나라에 진출할 때는 본국의 방식을 어디까지 유지하고, 현지의 취향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가 늘 고민입니다. 울프강은 스테이크 자체는 크게 건드리지 않고 그 주변 메뉴에서 현지화를 택했습니다.

클래식은 그저 오래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살아남은 방식에 가깝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외식 시장에서는 새로운 조리법과 낯선 식재료, 눈을 사로잡는 플레이팅이 계속 등장합니다. 울프강의 스테이크에는 그런 새로움이 많지 않습니다.
좋은 고기를 고르고, 시간을 들여 숙성하고, 두껍게 잘라 강한 불에 구운 뒤 뜨거운 접시에 내놓습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과정을 2004년부터 20년 넘게 반복해왔습니다.
다만 국내 매장을 경험하면서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서울에는 청담점과 광화문점이 있는데, 두 매장에서 먹은 스테이크의 숙성에서 나오는 감칠맛과 크러스트 다소 편차가 느껴졌습니다. ‘어디서 먹어도 같은 맛’이 글로벌 브랜드의 강점이라면 이 차이는 작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F&B에서 새로운 메뉴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오늘 잘한 것을 내일도, 한 달 뒤에도, 다른 도시의 매장에서도 비슷한 수준으로 내놓는 일입니다. 울프강처럼 클래식을 내세우는 브랜드라면 그 기준은 더 엄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울프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화려한 플레이팅이 아니라 뜨거운 접시 위에서 나는 ‘치익’ 하는 소리였습니다. 뉴욕에서 시작한 그 방식이 지금 서울의 테이블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유행은 새로운 것을 요구하지만, 클래식은 같은 것을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한결같이 잘해낼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김광중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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