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명 삼킨 ‘시속 180㎞’ 초고속 홍수…관측소 감지 땐 이미 늦었다

이근평 2026. 8. 2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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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현지시간) 네팔·티베트 접경지대에서 발생한 홍수에서 시속 180㎞에 달하는 초고속 물폭탄이 네팔·티베트 국경 마을들을 순식간에 집어삼키며 기존 조기 경보망이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천 관측소가 급류를 감지했을 때는 이미 주민들이 대피할 시점을 놓쳤다는 의미다. 이번 홍수로 인한 사망자는 28일 오전 기준 최소 392명까지 늘었다.

27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지역 데비가트에서 차량 한 대가 돌발홍수로 밀려든 토사와 잔해에 뒤덮여 있다. 시속 180㎞에 달한 급류는 마을과 도로·다리 등을 순식간에 휩쓸었다. AP=연합뉴스


해발 5127m서 무너진 빙하…30분 만에 수위 9m


27일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전 8시37분쯤 네팔 랑탕리룽봉 북사면 해발 약 5127m 빙하 아랫부분이 무너지면서 시작된 이번 재난은 얼음과 바위가 급류로 바뀌면서 파괴력이 커졌다. 무너진 빙하는 내려오는 동안 흙과 물에 섞여 초속 약 50m, 시속 180㎞에 가까운 속도로 계곡을 따라 이동했다.

국제산악통합개발센터(ICIMOD)에 따르면 하류 강의 수위는 30분 만에 7~9m 치솟았다. 급류는 이후에도 100㎞ 넘게 하류로 내려가며 도로, 다리, 수력발전 시설을 휩쓸었다.

붕괴 충격이 커 재난 초기 이 일대에서 규모 4.4의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측정됐지만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추가 분석 결과 지진이 아닌 빙하 붕괴와 토석류의 충격에서 진동이 나왔다고 판단했다. 산이 무너진 충격이 지진처럼 포착됐던 것이다.


피할 틈 없었다…무용지물 된 조기 경보망


이번 홍수에서 기존 경보망은 유명무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NYT는 “네팔의 경보 체계가 강과 호수의 수위 상승을 감지하는 데 맞춰져 이번처럼 산사태로 순식간에 발생한 홍수엔 대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산 위에서 갑자기 쏟아진 급류는 관측소까지 도달하는 데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네팔 재난관리청의 수실 쿠마르 슈레스타 선임기술자는 NYT에 “경보 체계 자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했지만 홍수가 너무 빠르게 닥쳐 주민이 안전한 곳으로 피할 시간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생존자들은 홍수가 피할 틈도 주지 않고 쏟아졌다고 증언했다. 데비가트 주민 자낙 바하두르는 로이터통신에 “멀리서 볼 때는 강이 작아 보였는데 갑자기 넘치기 시작했다”며 “홍수가 폭탄처럼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NYT는 굉음을 듣고 산비탈로 달아나 목숨을 건졌지만 아내와 두 딸을 구하지 못한 한 주민의 사연을 전했다.

27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지역 비두르시 데비가트의 주택들이 돌발홍수로 밀려든 진흙과 잔해에 뒤덮여 있다. AFP=연합뉴스


관측소가 급류에 파괴될 수 있다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프랑스 개발연구원(IRD) 소속 지형학자 크리스틴 쿡은 NYT에 “네팔의 하천 관측망이 비교적 넓게 구축돼 있지만 이번 규모의 급류를 감시하도록 설계된 것은 아니다”며 “이런 재난에서는 관측 장비 자체가 파괴된다”고 말했다. 붕괴가 발생한 랑탕산맥 북쪽이 관측의 사각지대였다는 점 역시 이번 재난을 키웠다고 전문가들은 봤다. 오스틴 로드 미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은 “이 지역은 인구 밀도가 낮고 지질학자들의 감시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라며 “위성으로 산비탈의 변화를 살피는 방식과 대형 산사태가 만드는 지진파를 감지하는 체계를 기존 하천 관측망에 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어나는 사상자…한국인 9명 등 1400여 명 실종


인명 피해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AP통신은 28일 네팔에서 사망자 389명, 부상자 460명, 실종자 910명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티베트에서도 3명이 숨지고 558명이 실종됐다. 양측을 합치면 사망자는 최소 392명, 실종자는 1468명에 이른다. 통신이 끊긴 산간 지역의 피해가 아직 모두 확인되지 않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라수와 지역 수력발전소 건설에 참여한 두산에너빌리티 직원 6명과 한국남동발전 직원 3명 등 한국인 9명의 소재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들의 숙소와 사무실 건물이 홍수로 유실됐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도로·다리 끊겨 수색 난항…‘자연댐’ 붕괴 땐 2차 홍수


네팔 정부는 군과 경찰 등 보안 인력 3만여 명과 헬기를 투입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다리 35개 이상이 파괴됐고 도로 약 40㎞가 유실되거나 파손돼 구조대의 접근이 어렵다. 헬기도 악천후 등으로 일부 지역에는 접근하지 못하는 상태다.

수색 작업은 추가 홍수 위험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네팔과 중국 국경 양쪽에서는 무너진 바위와 흙이 강을 막으면서 자연스럽게 댐과 호수가 형성됐다고 한다. 호수에 물이 계속 차다가 둑이 무너지면 또다시 대규모 급류가 하류를 덮칠 수 있다. 중국 당국은 앞으로 사흘 동안 올림픽 규격 수영장 약 1200개 분량인 300만㎥의 물이 호수로 추가 유입돼 다음 달 1일을 전후해 자연댐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도 내놨다.

26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지역 데비가트에서 한 주민이 돌발홍수와 산사태로 진흙에 뒤덮인 도로를 걷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재난은 기후변화와 무관치 않다. 로이터통신은 사이먼 콕스 뉴질랜드 지구과학연구소 수석과학자를 인용해 “기후변화가 고산지대의 바위와 얼음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조건을 만들고 있다”고 짚었다. 기온 상승으로 빙하가 줄면 가파른 산비탈을 받치던 얼음이 약해져 대규모 붕괴 가능성이 커진다는 원리다. 땅이 얼었다 녹는 과정과 강수 양상이 달라지는 점도 산비탈을 약하게 만드는 요인일 수 있다. 2023년 네팔을 방문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때 “네팔 고산지대의 얼음이 30여 년 사이 약 3분의 1 줄었다”며 “네팔 빙하가 녹는 속도가 직전 10년 동안 그 이전 10년보다 65% 빨라졌다”고 밝혔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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