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화 안 낼게"… 아이는 왜 이 말을 믿지 못할까

박명관 2026. 8. 28. 10:3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아이의 방문은 자주 닫힌다.

정말 숨기는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친구와 나눈 대화를 부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뿐일 수도 있다.

아이는 그동안의 대화까지 기억한다.

그 변화를 무관심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되고, 아이가 부모에게 말하지 않은 모든 것을 거짓말이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을 찾아내기 전에 살펴야 할 부모와 자녀 사이 대화의 조건

[박명관 기자]

중·고등학생이 되면 아이의 방문은 자주 닫힌다.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간다. 부모가 "오늘 학교 어땠어?"라고 물으면 "그냥"이라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몇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귀가가 평소보다 늦었다. 휴대전화 화면을 엎어놓는 손길도 조금 급해 보였다. 학원에 간다고 했는데 설명도 어딘가 맞지 않는다.

닫힌 방문 앞에 섰다가 노크하려던 손을 내릴 수도 있다.한 번 더 물어야 할까. 그냥 기다려야 할까.
부모에게는 자녀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아이에게 위험한 일이 생겼는지 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보호하려는 마음이 언제나 사실을 정확하게 보게 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지난 2024년 방영된 MBC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바로 그 틈에 프로파일러 아버지를 세워놓는다. 장태수(한석규 분)는 사람의 눈빛이 흔들리는 순간을 보고, 피하고 싶은 화제를 찾아내며, 진술의 모순을 짚어내는 사람이다. MBC의 공식 인물 소개에서도 그의 진가는 '조사실 안'에서 발휘된다고 설명한다.

다른 사람을 상대할 때 그것은 능력이다. 그 시선이 딸 장하빈(채원빈 분)을 향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질문하기 전에 끝난 판결

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태수는 딸을 의심할 만한 흔적과 마주한다. 하빈의 알리바이가 거짓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그러니 태수의 의심을 근거 없는 망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프로파일러의 상황을 평범한 가정과 그대로 비교할 수도 없다. 장태수가 마주한 위험과 부모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의심은 무게부터 다르다.그럼에도 두 상황에서 닮은 순간이 하나 있다. 의심이 생긴 뒤부터 눈앞의 행동이 모두 그 의심을 뒷받침하는 증거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태수는 딸에게 묻는다.

"왜 거짓말해?"

짧은 말이지만 순서를 들여다보면 이상하다. 먼저 '네가 거짓말했다'는 판단이 있고, 그다음에 이유를 말하라는 요구가 따라온다.

질문처럼 보이지만 첫 번째 판결은 이미 끝난 셈이다. 아이의 말이 한 번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전까지 아무렇지 않았던 행동도 달리 보이기 쉽다. 말이 짧으면 무언가 숨기는 것 같다. 자세히 설명하면 미리 준비한 변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방문을 닫는 행동, 늦은 귀가, 처음 듣는 친구 이름이 어느새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연결된다.

그때부터 대화의 목적도 조금씩 달라진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려던 질문이 자신이 세운 가설을 확인하는 질문으로 바뀐다.

집이 취조실로 변하는 데 고함이나 협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대답이 돌아와도 이미 답을 정해놓았다면 식탁에서도 취조는 가능하다.

장태수라는 인물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사람을 못 읽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읽는 사람이다. 수사에서는 의심하고 모순을 찾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하지만 가족의 일상에는 수사 기록보다 훨씬 많은 잡음이 섞여 있다. 늦은 귀가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휴대전화를 엎어놓은 행동도 마찬가지다. 정말 숨기는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친구와 나눈 대화를 부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뿐일 수도 있다. 문제는 어느 한쪽의 가능성을 너무 일찍 지워버릴 때 생긴다.

말하지 않는 것과 거짓말은 다르다

그렇다고 자녀의 말을 무조건 믿는 것이 답은 아니다. 학교폭력이나 범죄 피해처럼 안전과 직접 연결된 위험이 의심된다면 부모는 확인하고 개입해야 한다. 보호해야 할 상황에서 "사생활이니까"라며 물러서는 것도 책임 있는 태도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부모가 알아야 할 것과 부모가 알고 싶은 것은 같지 않다. 청소년이 부모에게 하지 않는 말도 모두 같은 종류가 아니다. 잘못을 감추려고 거짓말할 수 있다. 혼날까 봐 성적을 숨길 수도 있다.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약속 때문에 옮기지 않을 수도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아직 부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을 전부 같은 이름으로 부르면 청소년에게 남는 사생활의 범위는 매우 좁아진다. 청소년기에 부모가 모르는 영역이 늘어나는 것 자체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다. 미국심리학회(APA)는 2002년 청소년 상담의 비밀보장을 다룬 글에서 성장하면서 독립성이 커지는 과정에는 사생활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자해·타해 위험이나 학대처럼 안전과 관련된 경우에는 비밀보장에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즉 청소년의 사생활과 성인의 보호 책임은 어느 한쪽을 없애야 성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이 원칙은 디지털 환경에서도 이어진다. APA는 2026년 청소년과 AI 이용에 관한 부모 지침에서 사생활과 자율성을 존중하되 필요한 한계를 함께 두고, 규칙을 일방적으로 정하기보다 청소년을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라고 권고한다. 2026년 6월 자녀의 온라인 개인정보 공유를 다룬 글에서도 나이에 맞게 자녀를 의사결정에 참여시키는 방식이 강조됐다.

한국에서도 청소년의 생활과 의식은 정책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조사되고 있다. 성평등가족부가 2026년 전국 5천 가구의 주양육자와 9~24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종합실태조사에는 AI 활용과 디지털 환경 변화에 관한 문항도 새롭게 포함됐다. 청소년의 독립성과 사생활 문제를 이제 방문 하나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아이 생활의 상당 부분을 알고 있다. 청소년기가 되면 친구에게만 보여주는 얼굴이 생기고 부모와 다른 판단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도 아직 정리하지 못해 누구에게도 설명하고 싶지 않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오래 함께 살았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머릿속까지 열람할 권리를 주지는 않는다.

"내가 널 몇 년을 키웠는데."
"네가 어떤 애인지 내가 몰라?"

익숙한 말이다. 그러나 부모가 기억하는 아이와 지금 눈앞에서 변하고 있는 아이 사이에는 시간이 흐른다. 장태수에게는 이 차이가 더 치명적이다.

'나는 사람을 읽을 수 있다'는 직업적 자신감이 '나는 내 딸을 읽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넘어가면서 그는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보다 딸이 거짓말할 가능성을 먼저 본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잘 안다는 믿음이 그 사람을 새롭게 보는 일을 막을 수도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도 화 안 낼게."

부모가 아이에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솔직히 말해. 화 안 낼 테니까."

부모는 정말 사실을 듣고 싶어서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그 말을 믿는지는 그날의 약속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실대로 말했다가 크게 혼난 적이 있는지,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부모가 결론을 내린 적은 없는지, 어렵게 꺼낸 이야기가 나중에 다시 꾸중의 근거로 돌아온 적은 없는지. 아이는 그동안의 대화까지 기억한다.

그래서 "왜 거짓말했어?"라고 묻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사실대로 말했을 때 이 집에서는 그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가

이 질문을 덧붙인다고 거짓말에 대한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것과 부모가 대화의 조건을 돌아보는 일은 동시에 가능하다. 드라마에서 윤지수는 하빈을 향했던 자신의 의심을 돌아보며 말한다.

"물어볼 자신이 없어..."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비극은 누군가가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만 생기지 않는다. 의심하면서도 제대로 묻지 못하고, 물으면서도 상대의 답보다 자신의 확신을 앞세우는 일이 겹친다. 작품 후반 하빈이 "한 마디만 물어봤으면 됐잖아!"라고 터뜨리는 것도 그래서다. 묻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대답을 듣는 순간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호와 감시 사이

부모의 확인이 어디서부터 감시가 되는지는 행동 하나만으로 정하기 어렵다. 아이의 휴대전화를 몰래 확인했는데 실제 위험을 발견했다고 해보자. 위험을 막았다는 점에서는 필요한 행동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사생활을 들여다봤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위험 신호가 구체적인데 관계가 틀어질까 두려워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보호라고 부르기 어렵다. APA 역시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과 관련해 특히 초기 청소년기에는 성인의 점검과 대화, 지도가 필요하다고 권고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청소년에게 필요한 사생활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보느냐, 보지 않느냐'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부모가 판단해야 할 것은 위험의 구체성이다. 지금 확인하지 않으면 실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 덜 침해적인 방법으로 먼저 물어볼 수 있는지, 확인한 사실을 가지고 아이와 어떤 대화를 할 것인지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질문과 추궁은 갈라진다.질문에는 내가 틀릴 가능성이 남아 있다. 추궁에는 그 자리가 없다.
이 차이를 드라마는 장태수의 직업을 통해 보여준다. 그는 다른 사람의 확신과 진술에서 허점을 찾아내는 데 능숙하지만 가족 안에서는 자신의 확신을 의심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프로파일러라는 설정의 역설도 여기에서 생긴다. 타인의 거짓말을 찾아내는 기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말을 듣는 능력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

닫힌 방문 앞에서

밤이 되면 어느 집에서나 방문 하나쯤은 닫힌다. 부모가 복도를 지나가다 그 문 앞에서 멈출 수도 있다. 안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릴 수도 있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손잡이를 잡아야 할지, 노크해야 할지, 그냥 지나가야 할지 잠깐 망설일 수 있다. 문 너머에서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부모는 문을 열어야 한다.

하지만 문이 닫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안에는 부모에게 아직 말하고 싶지 않은 실패가 있을 수도 있다. 친구와의 대화가 있을 수도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있다. 청소년이 성장한다고 부모가 알아야 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의 모든 일을 부모가 알던 시기가 조금씩 끝나간다. 그 변화를 무관심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되고, 아이가 부모에게 말하지 않은 모든 것을 거짓말이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

확인해야 할 때는 확인해야 한다. 위험하다면 개입해야 한다.

다만 방문을 열기 전에 한 가지는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인가. 아니면 아직 가설인가.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서 장태수의 "왜 거짓말해?"가 오래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로는 무엇을 물었느냐보다, 그 질문을 꺼내기 전에 이미 무엇을 답이라고 정해두었는지가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감사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