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인생]“최고 로펌 박차고 나와 왜 새벽 3시까지 판결문 타이핑했냐고?”
이진 엘박스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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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사 원한 아버지 실망 뒤로
MBA서 74학점 들으며 동업 구걸
VC와의 피자 한 끼가 바꾼 삶
발목 잡는 난관 다시 뚫을 수 있나
」
시간이 흘러 2026년. 무가치해 보이던 원시적이고 고된 이 육체노동은 AI 시대 핵심인 디지털 데이터(판결문)로 차곡차곡 쌓였다. 시드(2019)부터 시작해 매년 받은 시리즈 A(40억원), 시리즈 B(200억원), 시리즈 C(290억원) 투자는 이 대표가 리걸 테크를 "데이터 사업"으로 정의하고 끊임없이 더 깊은 데이터 해자를 팠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런 강력한 해자 덕분에 그가 세운 리걸 테크 기업 엘박스는 업계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최다 판례 확보(2024년 인수한 케이스노트까지 합해 500만건)로 현재 국내 10대 로펌은 물론 경찰·검찰·법원 등 정부기관과 삼성전자 등 민간 기업 법무팀의 필수재가 됐다. 유료로라도 꼭 써야 할 만큼 꽤 쓸만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오는 10월 2일 사실상 검찰 손발을 묶은 형사소송법(형소법) 개정안 시행으로 각종 민·형사 범죄 피해자가 겪어야 할 금전적·시간적 피해와 절차적 어려움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거라는 우려가 팽배한 지금, 경찰이나 변호사보다 보통사람들한테 이런 서비스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돈 없고 힘없을수록 결국 기댈 데가 싼값에 법적 절차를 대신해주는 리걸 테크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지난 23일 이런 궁금증을 안고 그를 만났다. 국내 리걸 테크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꽉 막힌 역차별적 법적 규제 탓에 그 자리를 빅테크 AI나 글로벌 리걸 테크 기업에 내주고 결국 희망 고문에 머물 수밖에 없을까. 이 대표의 독특한 인생 궤적과 그가 꿈꾸는 미래를 통해 그 가능성과 한계를 확인했다. 그의 인생을 그의 입장에서 정리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창업자의 위대한 허드렛일
" "나눗셈 좀 해보세요. 맨날 100만개 100만개 하는데, 지금 그 500페이지짜리 판결문 하나 사흘째 치고 있다면서요. 언제 판결문 100만개를 모아요. " " 창업 당시 유일한 직원이었던 유수 IT 기업 출신의 27살 먹은 데이터 엔지니어(개발자)가 하루종일 타이핑만 하는 나를 보다못해 이렇게 투덜거렸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나도 계속 이렇게 할 생각은 없어. "
그러곤 대학생 인턴을 뽑아 둘이 하다가 알바천국에 광고 올려서 4인 1조 판결문 치기 알바를 구하고, 점점 확장해 동시에 알바를 330명까지 썼다. 그렇게 1년 반 동안 사람을 갈아 넣어 법원이 이미지 파일로 제공하는 판결문 20만개를 디지털 데이터로 확보했다. 당시 업계를 장악하던 1위 업체가 20년 가까이 모은 30만 건보다는 적지만 꽤 유의미한 수준이었다. 2020년엔 투자받은 돈으로 네이버 등에서 날로 발전하던 OCR(이미지 속 글자를 텍스트로 변환하는 문자 인식 기술) 작업하던 인력을 뽑아 자동화를 시작했다.
김앤장 출신, 다시 말해 리걸 테크 창업자에게 필요한 도메인 지식은 있다지만 남다른 기술력은커녕 변변한 경쟁력도 없는 나의 뭘 보고 투자자들은 계속 베팅을 이어갔을까. 나중에 한 투자자가 해준 말을 듣고 의문이 풀렸다.
" "오래전에 학벌은 별로, 개발자도 아닌 디자이너 출신 한 창업자가 와서 피칭했다. 요즘 뭐 하느냐 물었더니, 강남역 뒷골목에서 식당 전단 줍고 있다네. 필요한 50억원 중에 2억원만 투자해달라는데 거절했다. 내가 뭘 놓쳤느냐고? 배달의 민족. " "

김봉진 의장의 스펙만 보고 배민을 놓친 이후로 이 투자자는 전략적 의지를 갖고 웬만한 사람은 안 할 허드렛일을 사업의 발동을 걸기 위해 기꺼이 하는 이상한 창업자를 만나면 무조건 잡는다고 했다. 그게 나였다.
창업 초창기는 물론 지금도 리걸 테크 관련 공청회에 가면 창업자들은 법원이 판결문 공개를 안 해서 성장을 못 한다며 욕하기 바쁘다. 이상했다. 자기 문제는 자기가 풀어야 하는데, 감이 안 떨어져서 못 먹는다고 왜 나무 탓을 하지. 기어 올라가거나 발로 차기라도 하면 되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난 내가 할 수 있는 걸 했다. 미친 듯이 쳐넣었다. 사시 준비, 연수원, 저녁 있는 삶은커녕 하루 16~17시간 일하던 로펌 시절을 다 돌이켜봐도 살면서 겪은 가장 힘든 일이었다.
엘리베이터 1층 버튼 누르다
지난 2022년 11월 챗 GPT가 세상에 나와 리걸 테크에 날개를 달자 주변에선 마치 내가 선견지명을 갖고 창업한 것마냥 "언제부터 AI 공부했느냐"고 물어본다. 아니다. 꽁지에 불붙어서 살려고 어쩔 수 없이 절벽에서 뛴 거지, 뛰어내리면 흐르는 강변의 금광에서 곡괭이로 금을 캘 수 있을 거라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에겐 너무 좋은 직장이라 나갈 이유가 없었겠지만 나는 절실했다. 그래서 "어떻게 김앤장을 나갈 수 있었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쉽다. 엘리베이터 1층 누르고 로비에 가서 문 열고 나가면 된다. "
김앤장에 들어간 2012년부터 퇴사한 2017년까지 정말 행복했다. 매일 밤 한두 시에 퇴근하고, 딱 하루 쉬는 토요일에도 이메일에 매달려야 할 만큼 치열하게 살다 보니4년 차 때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으로 후각이 마비됐다. 20~30대가 석 달 만에 완전 백발이 되는 게 이상하지 않은 그런 환경이라 특이할 것도 없었다. 그게 꽁지의 불이었다는 게 아니라, 거꾸로 그래서 행복했다. 난 일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니까.
![지난 2019년 시드 단계부터 투자·육성하는 국내 대표 액셀러레이터인 블루포인트 파트너스 대전 오피스를 찾아 당시 담당 심사역이었던 김두성 이사(현재 그룹장, 왼쪽)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이진]](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8/26/joongang/20260826001556181ttkm.jpg)
퇴사 계기는 엉뚱한 데서 왔다. 골드만삭스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이나 사모펀드 클라이언트와 회의를 하면, 불확실성과 싸우고 리스크를 짊어지며 직관을 훈련하는 게 보였다. 난 세금 자문, 전략 자문과 함께 어드바이스의 세 축 중 하나인 법적 자문, 그중에서도 막내일 뿐이었다. 어느 순간 답답했다. 리스크 지지 않는 대가로 내가 만드는 부가가치가 너무 작았다. 고민을 털어놓으면 선배들은 "이 직업 최고 장점을 넌 왜 단점이라고 하느냐"고 했다. 이걸 더 오래 한다고 내가 지금 느끼는 충족되지 않는 부족함이 채워지진 않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로펌에서 보내주기로 돼 있는 로스쿨 유학 기회를 박차고 나와 2017년 MBA를 갔다. 아들이 법원 대신 로펌 간다고 실망한 후 경력직 판사에 계속 희망을 걸던 아버지는 절망했다. 난 아랑곳않고 두 살 아이까지 데리고 절박한 심정으로 미국에 갔다.
첫날부터 난 학생이 아니라 창업자라고 되뇌었다. 법 관련 창업 생각은 전혀 없어서 옷장 속 옷 매칭 서비스 등 엉뚱한 창업 아이템을 들고 동업자를 찾겠다고 컴퓨터 사이언스 건물인 워즈니악 홀 앞에서 아무나 붙잡고 동업을 구걸했다. 등산복 차림의 동양 아저씨에게 다들 경악했다. 당연히 실패했다. 또 경영엔 무지했기에 하나라도 더 배우려 2년 동안 무려 74학점을 들었다. 모든 수업이 큰 도움이 됐지만, 유명 벤처 캐피털리스트 등과의 캐주얼한 식사 시간은 정말 유용했다. 그중 온셋(Onset) 벤처스의 유명 VC 쇼밋 고시(ShomitGhose)와의 피자 점심은 내 인생을 바꿨다. 김앤장 경험을 통해 법률은 도제식으로 전수되는 지혜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의 업을 데이터 비즈니스로 해석할 수 있어야 뭐든 성공할 수 있다"며 학생의 전직을 하나하나 예시로 들어 증명했다. 이를 계기로 "뭐든 데이터 비즈니스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뿐더러 내려놓았던 법에 다시 관심을 갖고 결국 리걸 테크 창업으로 이어졌다.
변호사법 109조라는 족쇄
인류를 위한 거창한 미션으로 창업하진 않았다. 하지만 자연스레 법을 사람들에게 더 가깝고 의미 있게 만들겠다는 미션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우리 의지와 정반대로 고객센터엔 개인 고객들 원성이 넘쳐난다. 변호사법 109조, 그러니까 변호사 아닌 자가 유상으로 법률 서비스를 해주거나 알선하면 7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 탓에 똑같은 구독료로 차별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서다. 엘박스는 변호사 아닌 주식회사라 변호사를 위한 도구로 판례 검색을 넘어 서면 작성 등 서비스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만, 정작 이 서비스가 더 필요한 개인에겐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법이 국내 리걸 테크의 발목을 잡고 있기에 개인들은 어쩔 수 없이 환각이 많은 챗 GPT 등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도 한해 11억4060만 달러(1조6000억원)의 법률 무역수지 적자에, 양측 다 나 홀로 소송(민사 1심 본안) 비율이 67.3%나 되는 상황에서 왜 국민을 위한 진전이 없나 안타깝다.
다들 무가치하다 여겼던 판결문 타이핑으로 사업에 시동을 걸었듯, 나는 이번에도 막힌 길을 뚫을 수 있을까. 오늘도 나를 갈아넣는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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