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중간선거 앞두고 비상사태 선포설…트럼프, 부인 안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가비상사태 선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내놓으면서 미국 사회 내 우려와 기대가 엇갈리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디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문서 공개 등을 통해 미국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확산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투표권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그러면서 “부정선거론자들과 일부 우익 팟캐스터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는 기대가 확산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 역시 관련 질문을 받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백악관 연설에서 미국 선거가 외국의 개입에 취약하다는 주장을 거듭 제기했다. 자신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에게 패한 2020년 대선이 ‘도둑맞은 선거’였다는 주장도 반복했다. 이후 지난달 29일 우파 논객 스티브 배넌은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국가안보를 이유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배넌은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중대한 일이 닥쳐오고 있으니 준비하라. 온다. 온다. 8월 마지막 주를 비워둬라. 온다”고 말했다. 배넌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초기인 2017년 1월부터 8월까지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지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국가비상사태 선포 가능성을 명확히 부인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공개된 우익 매체 ‘리얼 아메리카즈 보이스’ 인터뷰에서 진행자 웨인 앨린 루트가 ‘선거를 이유로 국가안보 비상사태를 선포할 의향이 있느냐’는 취지로 묻자 “이렇게만 말하겠다.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한 일도 일어났다. 그 정도로만 해두겠다”고 답했다.
미국의 국가비상사태는 대통령이 국가적 위기나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고 판단할 경우 특별한 법률상 권한을 발동하는 제도다. 핵심적인 법적 근거는 1976년 제정된 국가비상사태법(National Emergencies Act)이다. 다만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대통령에게 무제한적인 권한을 새롭게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법률이 비상사태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정해놓은 권한만 법에 명시된 범위 안에서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더라도 선거 관리에 관한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한 헌법적 원칙까지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경제 제재나 국가안보 등 다양한 사유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왔다. 트럼프 대통령도 2019년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과 2020년 코로나19 확산 대응을 위해 각각 이 제도를 활용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선거 또는 투표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발동하려 한 대통령은 없었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관리 관련 행정명령을 저지한 소송을 이끈 엘리아스 로 그룹의 파트너 변호사 아리아 브랜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선거관리권을 연방정부로 이전하기 위해 모종의 비상사태를 선포할 명분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권자 옹호단체 ‘내일의 유권자들’(Voters of Tomorrow)의 산티아고 마이어 대표는 “솔직히 말해 그(트럼프 대통령)가 현실 감각을 잃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명백하다고 생각한다”며 “따라서 우리는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선거와 관련한 국가비상사태 선포 행정명령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백악관이 가정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하면서도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백악관 공보 담당자 로런 비스는 “극단적 진보 성향 민주당원들은 ‘세이브 아메리카 법안’에 찬성하지 않음으로써 미국인들이 선거에 대해 완전한 신뢰를 갖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며 “지금 이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는 나라를 잃게 된다”고 덧붙였다.
세이브 아메리카 법안은 투표 시 유권자 신분증 및 시민권 증명을 의무화하는 내용 등이 담긴 법안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전민구 기자 jeon.ming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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