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 울려도 대피소 안 가…민방위 훈련 취지 ‘무색’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전국적으로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이 실시됐지만, 사이렌이 울려도 대피에 참여하는 시민은 드물었다.
시민 대피와 일부 도로 차량 통제 등 실제 공습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 이뤄졌다.
훈련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실제 대피에 참여하는 시민은 많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민방위훈련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동시에 실제 상황에 가까운 훈련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문가 “시민 인식 개선하고 실전 상황처럼 훈련 진행해야”

20일 오후 2시 전국에 공습경보가 발령되면서 민방위훈련이 20분간 진행됐다. 시민 대피와 일부 도로 차량 통제 등 실제 공습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 이뤄졌다.
민방위훈련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와 각종 재난에 대비해 국민의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이다. 1975년 민방위기본법 제정 이후 시행돼 왔다. 과거 정기적으로 실시되다 중단·축소를 거쳐 2023년부터 공습 대비 전국 단위 훈련이 재개됐다. 이날 훈련은 정부와 군,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는 국가위기관리 훈련인 ‘2026 을지연습’의 일환으로 행정안전부가 주관했다.
이날 오후 2시 정각,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일대에 사이렌이 울렸다. 세종대로 사거리부터 숭례문 교차로까지 약 1㎞ 구간에서는 오후 2시부터 5분간 차량 이동이 통제됐다. 신호를 기다리던 시민 50여 명의 발도 묶였다. 시민들은 사이렌이 울리자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렸지만 이내 휴대전화로 시선을 돌렸다. 이어폰을 귀에 낀 채 별다른 움직임 없이 서 있는 시민도 눈에 띄었다.

세종대로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만난 한혜경(54·여)씨는 “오늘 민방위 훈련을 하는지 몰랐다”며 “재난문자를 받긴 했는데 워낙 자주 오다 보니 그냥 넘겨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고 무작정 멈춰 세우기만 하는 통제 방식이 실제 비상 상황에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실내에 있어 사이렌을 듣지 못했다는 시민도 있었다. 세종문화회관 로비에 있던 황준형(31·남)씨는 “사이렌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며 “재난문자 수신을 꺼둔 탓에 주변 사람들의 알림 소리를 듣고서야 훈련 중인 걸 알았다”고 말했다. 황씨는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훈련이 치러진 느낌”이라며 “시민들이 민방위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체계가 더 잡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훈련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실제 대피에 참여하는 시민은 많지 않았다. 현장에서 대피 안내가 이뤄졌지만 대피소까지 이동하지 않는 등 훈련 참여가 형식에 그치는 모습이 이어졌다.
광화문역 6번 출구 앞에서는 종로구 민방위 조끼를 입은 직원 10여 명이 시민들의 대피를 안내했다. 이 가운데 5명은 ‘민방위’ 마크가 그려진 깃발을 흔들며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지하로 대피해 달라”고 안내했다. 하지만 상당수 시민은 대피 안내에도 개의치 않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직원들의 안내를 받고 역 안으로 들어온 시민 중에서도 지하 대피소까지 내려가지 않고 출구 근처에 머무르는 경우가 있었다. 일부는 버스 시간이 촉박하다며 양해를 구한 뒤 자리를 뜨거나 직원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빠져나가는 모습도 목격됐다.

대로변을 지나던 김유은(21·여)씨는 “사이렌 소리를 듣긴 했지만 대피하라는 지시가 없어 가던 길을 계속 갔다”며 “실제 상황이었다면 상황을 파악하려고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대응이 지체됐을 것 같다”고 했다.
현재 민방위 대피소는 아파트 지하주차장과 지하철역, 지하상가 등 전국 1만7000여곳에 지정돼 있다. 네이버·다음 포털과 카카오맵, 티맵, 네이버지도, 안전디딤돌 애플리케이션에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외국인은 ‘이머전시 레디 앱’을 통해 영어·중국어·일본어·베트남어 등 22개 언어로 훈련 일정과 대피소 위치를 안내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민방위훈련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동시에 실제 상황에 가까운 훈련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단기간에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은 만큼 정부가 인식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지금처럼 시나리오대로 짜인 훈련은 실전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미국처럼 불시에 자주 훈련을 실시해 실제 재난과 유사한 환경에서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민방위 훈련은 이날 오후 2시20분에 경보가 해제되며 종료됐다.
유정민 기자 yu@kukinews.com
Copyright © 쿠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