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논란을 교실에 던져봤다... 아이들이 말한 '친일 청산'

서부원 2026. 8. 2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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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영의 '가문 자랑'에서 비롯된 친일파 논쟁이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모른다.

"경각심을 고취하는 차원에서, 삼일절이나 광복절에만 말고 정기적으로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삶을 비교해 보여주는 등의 친일 청산 특집 방송이 제작되었으면 좋겠어요."

대입이라는 고단한 현실 앞에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들 하지만, 적어도 친일 청산 문제만큼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관심사다.

"친일 청산이 그들 후손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해방 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서 왜 친일 청산에 실패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친일 청산 문제가 줄곧 화제가 되는지 온 국민이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대사 교육을 강화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어이없긴 하지만, 저희 또래 중엔 공산당이 친일파인 줄로 아는 아이들이 적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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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후손에게 죄 물을 수 있나... 학생들 '사과 없이 용서 없다' 한목소리

[서부원 기자]

 배우 하영이 지난 1월 21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제작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저렇게 카메라 앞에서 고개 한 번 숙이고, SNS에 사과문 하나 올리면 끝인가요?"

"아무리 민족 반역자라고 해도, 조상의 죄를 까마득한 후손에게 묻는 건 잔인하지 않나요?"

배우 하영의 '가문 자랑'에서 비롯된 친일파 논쟁이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모른다. 최근 인기몰이 중인 젊은 연예인과 관련된 논란인 까닭에 고등학교 교실에서도 화두가 됐다. 더욱이 2학기가 막 시작된 지금, 한국사 교과의 첫 단원이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과정을 다루고 있어 친일 청산 문제는 피해 갈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곳이 교과서의 여러 단원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믿고 있다. 지금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을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분단과 전쟁'일 테다. 곧, 1945년부터 1950년까지의 5년간의 역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필수 교양이다.

의도한 바는 아닐 테지만, 2학기 개학이 대개 광복절과 맞물려 있어 교과서의 진도와 맞아떨어진다. 해마다 14일이 '세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라는 것과 다음날이 광복절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면서 수업을 시작한다. 그래선지 아이들은 이 둘을 한데 묶어 기억한다.

아이들이 묻기 시작한 '친일 청산'
 지난 15일 서울 독립문 인근 옥바라지 골목에서 '제1회 친일파 척결 카페 매국노 조롱잔치'가 열렸다.
ⓒ 이진민
올해는 배우 하영의 논란으로 인해 수업 전 동기 부여가 훨씬 수월해졌다. 시작종이 울리자마자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화두를 꺼냈다. 친일파의 후손인 게 확인된 이상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과 후손에게 죄를 묻는 연좌제는 위헌이라는 주장이 거세게 맞붙었다.

어쩌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8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친일 잔재 청산 문제를 화두로 삼고 있다는 자체가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그마저 광복절 전후로만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가 불과 며칠만 지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 언론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내년 광복절을 기약하면서.

"조상의 친일 행적을 끝까지 추적해 후손의 재산을 환수하는 게 역사적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죠."

"이미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러 증거 삼을 만한 사료도 거의 없는 마당에 사회적 갈등과 혼란만 부추길 가능성이 커요."

양측 아이들의 주장은 선명하고 논쟁도 치열하지만, 안타깝게도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 친일파에 대한 응징은 역사 교과서에서나 가능할 뿐 친일 재산 환수와 같은 법적 조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후손에게 죄를 묻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아이들도 친일 청산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선 모두 동의한다. 법적 책임과는 별개로 역사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세월이 더 이상 죄지은 자들의 편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는 거다.

아이들이 말하는 '사과와 책임'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역사적, 도의적 책임일까. 괜한 말꼬리를 잡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지만, 부러 아이들에게 물었다. 기성세대로서 민망하지만, 이는 친일 재산 환수 등 법적 책임을 묻는 일이 힘들어진 지금, 후손에게 지울 수 있는 '벌'에 대한 대안을 그들에게 묻는 꼴이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찾아뵙고 정중히 무릎 꿇고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 모습을 국민이 본다면 분노가 조금 수그러들지 않을까요?"

"친일파의 후손으로서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기리는 보훈단체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도록 하면 어떨까요?"

"보훈단체에 개인 소득의 일정액을 기부하도록 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대안들이 쏟아졌다. 하나같이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는 치기 어린 것들이지만, 친일 청산의 전제 조건이 후손들의 공개적인 사과라는 데엔 이의가 없었다. 사과 없이 용서란 있을 수 없고, 사과에는 조상의 죄를 스스로 고백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과 없는 용서가 남긴 역사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이다.
ⓒ 연합뉴스
한 아이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전두환을 용서하고 사면을 건의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뼈아픈 역사를 끄집어냈다. 전두환은 죽을 때까지 5.18 광주 학살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하기는커녕 무장한 시민들에 맞선 계엄군의 자위권 행사라는 뻔한 거짓말을 서슴지 않았다.

사면받은 전두환은 마치 무죄 판결이라도 받은 양 거침없이 행동했고, 이후 국가 원로라는 융숭한 대접까지 받으며 온갖 호사를 누리다 세상을 떠났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그는 4.19 혁명 직후인 내각책임제 시절 윤보선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장수한 인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사면의 이유였던 '국민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되레 군사독재정권에 정당성을 인정한 꼴이어서 두고두고 분란의 씨앗이 됐다. 사과 없는 용서, 단죄 없는 화해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 명징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최근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개최한 '5.18 재조명' 포럼도 이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고, 우리 국민에게 미안해할 줄은 알아야죠."

"경각심을 고취하는 차원에서, 삼일절이나 광복절에만 말고 정기적으로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삶을 비교해 보여주는 등의 친일 청산 특집 방송이 제작되었으면 좋겠어요."

부끄러움을 모르는 친일파 후손들을 자주 봐온 탓일까. 상충하던 아이들의 의견은 시나브로 이렇게 수렴됐다. 한 아이는 재산 환수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면서 "뻣뻣하게 쳐든 고개라도 숙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안하무인격인 그들의 태도는 용서가 안 된다는 거다.

대입이라는 고단한 현실 앞에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들 하지만, 적어도 친일 청산 문제만큼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관심사다. 평소 중국 혐오 발언을 입에 달고 살아도, 친일 청산의 대의에는 모두가 공감한다. 친일파 후손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건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요즘 아이들에겐 '지금의 일본'보다 '지금의 중국'이 더 싫다는 뜻일 뿐, 과거 일본 제국주의를 증오하는 건 그들이나 기성세대나 차이가 없다. 일제에 부역하며 부귀영화를 누려온 친일파에 대한 분노 또한 마찬가지다. 역사에 문외한인 아이들에게조차 친일 문제는 '역린'이다.

친일 청산 넘어 현대사를 가르쳐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2026.8.15
ⓒ 연합뉴스
이렇게 된 이상,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다루는 올해 수업은 친일 청산이라는 화두로 내용을 이어보려 한다. 친일 청산의 좌절은 우리 현대사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음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 현대사의 수많은 사건의 인과관계와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다.

친일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철저히 묵살됐고, 군사독재정권은 이를 마치 범죄인 양 다뤘다.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기막힌 진실이 회자되는 배경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물구나무선 해악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칠 무렵, 한 아이는 수업을 매조지듯 이렇게 말했다. 논쟁을 갈무리하는 역사 '덕후'다운 발언이었다. 그는 배우 하영 개인에 대한 비난은 멈춰야 한다면서, 굳이 그의 잘못이라면 연예인으로서 대중에게 관심받고 싶어 잘 모르는 조상 자랑을 했다는 것뿐이라고 짐짓 두둔했다.

"친일 청산이 그들 후손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해방 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서 왜 친일 청산에 실패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친일 청산 문제가 줄곧 화제가 되는지 온 국민이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대사 교육을 강화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어이없긴 하지만, 저희 또래 중엔 공산당이 친일파인 줄로 아는 아이들이 적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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