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성씨 정하기 위해 '혈액형' 기다린 사연

서나연 2026. 8. 20. 15:4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첫째 아이와 잘 어우러지면서도, 너무 첫째를 의식한 이름을 짓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아이를 낳을지에 대한 생각이 확실하지도 않았고, 지금 체크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뱃속의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의 성씨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혼인신고 시 '기본값'인 아버지의 성... 잠시 멈춰 서서 '합의'를 위한 고민을 한 이유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나연 기자]

둘째 이름에 대해서는 첫째 아이와도 함께 고민하게 된다. 첫째 아이와 잘 어우러지면서도, 너무 첫째를 의식한 이름을 짓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이름 세 글자 중 한 글자는 이미 정해져 있기에, 나머지 두 글자를 치열하게 조합하며 세 식구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제일 앞 글자인 성씨도 그냥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7년 전, 혼인신고를 할 때 혼인신고서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

멈칫했지만, 그땐 신혼부부 주택 청약을 하는 게 혼인신고를 굳이 그 시점에 했던 이유였다. 아이를 낳을지에 대한 생각이 확실하지도 않았고, 지금 체크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남편과 2세에 대한 합의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서류를 쓰는 그 짧은 시간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그 항목에 표시하지 않은 채 우리의 혼인신고가 끝났다. 며칠이 지났을까, 문자 한 통이 왔다.

"혼인신고가 완료되었습니다."

남편은 성능 좋은 암막 커튼 같은 사람이었다. 둘이 있으면 내 불안이 햇빛처럼 쉽게 들어오지 못했다. 안전한 실내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때부터 임신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석 달째 되던 어느 밤에 임신 사실을 확인했다. 확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시도한 임신이었는데 막상 두 줄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아이의 '성' 문제를 꺼낸 건 그때였다.

"근데 이 아이 누구 성 따라? 내 성으로 해도 돼?"

나에게는 뭐랄까, 함께 아이를 낳으려면 너에게 그 정도 각오는 필요하다는 느낌이기도 했다. 실제로 내 성을 따르는 과정까지는 둘째치더라도, 남편 입에서 먼저 동의의 의미가 나와야 했다. 남편은 몇 초간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그래, 알겠어. 네 성을 따르자."

나는 그제야 이 사람과 더 아이를 낳고 싶어졌다. 내 뱃속에 있는 아이이고 내 아이였지만, 생각을 정리하며 완전히 내 아이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나는 우리 아빠의 성을 버리고 엄마의 성을 따르고 싶다는 생각을 어린 시절 수백 차례 해왔기 때문에. 왜 나는 당연하게 아빠 성을 따르는지에 대한 의문을 모래사장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이 해봤기 때문에.

그렇게 알게 된 현실

뱃속의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의 성씨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남편은 두 사람이 합의하면 혼인신고를 이미 마친 이후에도 모의 성을 따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알아본 바는 달랐다. 민법 제781조에 따르면 자녀는 원칙적으로 아빠의 성과 본을 따르고, 엄마의 성을 따르려면 혼인신고 당시 부부가 그렇게 협의했다는 사실을 신고서에 남겨야 한다. 우리는 그 항목에 표시하지 않았으므로, 태어날 아이에게 내 성을 따르게 하려면 출생신고 후 별도로 가정법원에 '자의 성과 본의 변경 허가'를 청구해야 했다.

알아보니 실제로 엄마의 성을 따르도록 합의한 부부들이 있었다. 친구의 소개로 그런 부부들의 단체대화방에도 들어가게 됐다. 나는 임신 중이라고 밝히고, 태어날 아이에게 내 성을 따르게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더라도, 필요하면 그렇게 할 거라는 각오를 다지면서. 일부 갈등 상황을 전해 듣고 한편으로는 '굳이?' 라는 마음도 일었다.

태어날 아이에게 무언가 귀찮은 일을 만든다는 게 꺼림칙했다. 그래도, 그게 전부가 아니지 않나. 편견에 맞서 싸우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세상에 맞서 싸울 게 얼마나 많은데 꼭 이걸로 싸워야 하나 싶기도 했다. 아이에게 내 성을 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혼자만의 고민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국 내 성도 아버지의 성이고, 아버지의 성도 할아버지의 성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엄마의 성을 주기로 하는 건, 엄마 그 자체의 성을 준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두 개의 성
▲ 아이의 성이 결정되던 순간. 병원에서 아기수첩에 아이의 혈액형을 적어 주었다.
ⓒ 본인
출산일이 다가오자 남편이 말했다.

"그래서 누구 성으로 할 거야? 나는 사실… 내 성으로 하고 싶기도 해."

머뭇거리던 남편의 표정이 아직 선하다. 아이를 가진 후 내 성으로 하자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내 고민이 깊다는 걸 남편도 알고 있었다. 애초에 구두 약속은 확고한 합의가 아니었고, 제도상의 불편함과 사회적 인식이 모두 마음에 걸렸다. 옳은 길이라는 확신이 들면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그렇게 했을 텐데, 내 선택의 결과를 아이가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에 계속 걸렸다.

아이의 이름을 두 가지 버전으로 생각해 보았다. 하나는 내 성을 따르는 이름이었고, 다른 하나는 남편의 성을 따르는 이름이었다. 내 10대와 20대를 지켜준 '달(moon)'이 들어간 이름들이었다. 지어 놓고 보니 남편 성을 딴 이름도 참 마음에 들어서, 그냥 그렇게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내 성씨를 좋아했다. 어느 이름을 붙여도 서정적으로 느껴지는 성씨라 생각하면서.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붙여 보며 내 성 하나, 남편 성 하나를 놓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 자체로 다행이고, 좋은 기분이었다.

태어난 아이가 내 얼굴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듯, 내 것을 하나라도 더 물려주고 싶었던 걸까. 어쨌든 자식에게 본인 성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은 나나 남편 두 사람 모두에게 자연스러웠다. 누가 더 정당하다 할 것 없이, 남편은 제 성을 주고 싶고 나는 내 성을 주고 싶었다. 이렇게 팽팽하다면, 차라리 '가위바위보'로 깔끔하게 결정되는 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진짜 가위바위보로 결정할 수는 없으니, 남편이 아이디어를 냈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 혈액형 검사를 했을 때, 남편의 혈액형인 B형이 나오거나 AB형이 나오면 남편 성을 따르고, 내 혈액형인 A형이 나오거나 O형이 나오면 내 성을 따르기로 했다. 대화로 정하면 결국 누군가 지는 느낌이 들 것 같아, 그렇게 정하면 깔끔하겠다 싶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고, B형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남편의 성을 따르게 되었다.

둘째가 생기고 아이의 이름을 지을 시기가 되면서, 그때 그랬었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자매를 다른 성으로 하기에도 그렇고, 첫째는 이미 자기의 이름에 대한 정체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라고 나서 본인이 이름을 바꾼다면 그건 본인의 마음이겠지만, 여기까지가 우리 부부가 줄 수 있는 선인 것 같다.

한창 고민하던 때, 남편의 친구는 우리 이야기를 듣더니, 그래도 세상의 편견이 그렇게 녹록지 않은데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떠냐고 조언한 적이 있다. 나는 기분이 나빴고, 남편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본인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겠지만, 어쨌든 나에게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결정된 게 깔끔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그게 전부는 아니다.

'기본값' 앞에서 고민해 볼 것들
 혼인신고서 양식.
ⓒ 본인
혼인신고를 하는 부부 중에는 아직 아이를 낳을지조차 결정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아이를 낳더라도 '누구의 성을 따르게 할지'까지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호주제의 위헌성이 문제가 된 뒤 민법은 2005년 개정됐고, 2008년부터는 부모가 혼인신고 시 협의하면 자녀가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게 됐다.

법적으로는 선택지가 생긴 셈이다. 하지만 지금도 법의 기본값은 아버지의 성이다. 부모가 따로 협의하지 않으면 아이는 아버지의 성을 따른다. 이미 혼인신고에서 모의 성·본에 대한 합의를 하지 않았다면, 이후 자녀의 성을 엄마 성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가장 큰 기준은 '자녀의 복리'다. 부모가 원하고 서로 동의한다고 해서 곧바로 허가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자녀의 나이와 의사, 가족관계, 현재의 성을 유지하거나 변경했을 때 생길 불이익, 가족 구성원 사이의 관계와 정체성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변경이 자녀에게 이로운지 판단한다. 이런 상황에서, '혈액형으로 결정하기'에서 결론이 나왔을 때 마음 한편으론 안도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임을 고백한다. 아이에게 남들과 다른 선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있었다.

물론 몇 개월 간의 대화 덕분에 딸이 "내 성은 왜 아빠 성이야?" 물었을 때 대답할 시나리오는 생겼다.

"응, 그건 엄마가 '혈액형 가위바위보'에서 졌기 때문이야. 이겼더라면 너는 엄마 성을 물려받았을 텐데."

그러나 딸이 자라면 현실을 알게 될 것이다. 30년 후에도 법이 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사회가 아직 어머니 성을 낯설어하는데, 법까지 그 선택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빠 성을 선택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엄마 성을 선택하려면 혼인신고 때 미리 합의해야 하고, 그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는 아이의 복리를 법원에 설명해야 한다. 부모가 똑같이 아이에게 자신의 성을 주고 싶어 하는 상황에서도, 출발선은 같지 않다.

우리는 50대 50인 줄 알고 '혈액형 가위바위보'를 했지만, 돌이켜보면 게임판 자체가 그리 평평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아빠의 성을 물려받았지만, 그 시절 우리 부부가 나눈 대화는 분명 의미가 있었다. 대부분 당연하게 아빠 성을 따르는 세상에서, 잠시나마 멈춰 섰다. 아이의 이름 안에는 엄마의 권리와 정체성을 동등하게 존중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했던 평등한 합의 과정이 담겨 있다고 믿고 싶다.

앞으로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는 부부들에게 말하고 싶다. 혼인신고서의 '그 문구' 앞에서 무심코 펜을 넘기기 전, 한 번쯤은 멈춰서 고민해 보라고. 세상이 정해준 '기본값' 대신, 두 사람의 선택으로 아이의 이름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상의 모든 문화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