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면 체력 0"…설거지·빨래·쓰레기까지 다 맡긴다 [Now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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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마주해야 할 일을 피한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집안일 앞에서는 이 말도 번번이 힘을 잃는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직장생활과 자녀 돌봄을 병행하면서 쓰레기를 버릴 시간과 체력이 부족해 정기적인 쓰레기 수거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화장실 청소처럼 기계로 대체하기 어려운 일만 따로 맡긴다는 사례가 확인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 가사노동을 외주화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조금 양상이 달라졌다"며 "요즘 2030세대는 자신이 잘 못하는 일은 잘하는 사람에게 시키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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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1인가구, 몇만원 내고 반복되는 가사노동 아웃소싱
시간보다 체력을 아끼려는 '체력 회피' 소비 확산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마주해야 할 일을 피한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집안일 앞에서는 이 말도 번번이 힘을 잃는다. 그릇 탑이 쌓인 개수대, 발 디딜 틈 없는 바닥, 사흘째 버티는 쓰레기봉투.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중요한 건 도망치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도망치느냐다. 과거에는 침대로 도망쳐도 눈앞의 그릇 탑과 쓰레기봉투는 그대로였다.
지금은 다르다. 스마트폰을 몇 번 클릭하면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있다. 제대로 된 곳으로 도망치면 작은 낙원이 기다린다.
서울에서 혼자 사는 20대 직장인 정 모씨도 그런 '도망자' 중 하나다. 퇴근하고 나면 손 하나 까딱하기 싫다. 정씨는 필요할 때마다 생활서비스 플랫폼을 찾는다. 음식물쓰레기 버리기에 1만원, 청소에 5만원, 이사 후 정리정돈에 30만원을 냈다.
정씨는 "직접 하면 시간은 똑같이 걸리는데 몸이 아예 안 움직여진다. 클릭 몇 번이면 알아서 되는 게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회피하면 해피(happy)"…집안일서 도망치는 청년들
정씨가 찾은 곳은 생활서비스 전문가를 연결하는 ‘숨고’와 지역 기반 중고거래에서 동네생활·생활서비스로 영역을 넓힌 ‘당근’이었다. 음식물쓰레기 배출처럼 간단한 일은 당근에서 사람을 구했고 청소와 정리정돈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일은 숨고를 통해 맡겼다.
짧게는 5분, 길게는 5시간 정도 걸리는 일이었다. 특히 음식물쓰레기 배출은 직접 해도 걸리는 시간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비위가 상하고 더러운 것을 만지는 게 싫어서 돈을 냈다. 청소와 정리정돈은 직접 하면 최소 두 배의 시간이 들 것으로 봤다.
정씨는 "일을 다니면서 따로 시간을 내서 하려면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며 "직접 하려면 시간과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게 들고 그 기회비용이 서비스 비용보다 크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정씨 만의 얘기는 아니다. 집안일을 돈을 주고 맡기는 수요는 실제 결제 데이터에서도 늘고 있다. 우리카드가 2023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결제 데이터를 비교한 결과, 가사도우미 서비스 결제액은 2023년 대비 25.7%, 세탁대행 서비스 결제액은 9.4% 증가했다. 우리카드는 이들 서비스를 반복적인 집안일을 대신 맡기는 '시간 절약형 서비스'로 분석했다.
이용자도 늘었다. 국내 청소 플랫폼 미소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올해 1월 21만3586명으로 2021년 3월 9만7965명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모바일인덱스가 집계한 2024년 8월부터 2025년 8월까지 미소 사용자 구성에서는 20대와 30대가 각각 약 34%, 31%로 전체의 약 65%를 차지했다. 청소연구소도 지난해 10월 기준 이용자의 45%가 2030세대였고 원룸청소 신청은 전년 대비 80% 급증했다고 밝혔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용이 확산하는 가운데 반복 이용도 뚜렷하다. 미소는 누적 주문 1000만건 이상을 기록했고 전체 고객의 75%가 정기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밝혔다. 한 번 청소를 맡기는 것을 넘어 반복되는 가사노동 자체를 외주화하는 소비가 생겨난 셈이다.
"청소는 싫고 빨래는 더 싫고"…내가 하기 싫은 일만 맡긴다
그렇다고 집안일을 통째로 남에게 맡기는 것은 아니다. 유독 하기 싫거나 직접 하기 버거운 일만 골라 돈을 내고 없앤다.
서울에 사는 30대 이모씨는 2~3개월에 한 번 3만원 정도를 내고 이불처럼 큰 빨래만 런드리고에 맡긴다. 집 앞에 세탁물을 내놓으면 수거부터 세탁·건조·배송까지 알아서 해주는 비대면 세탁 서비스라 좁은 자취방에서 이불을 빨고 말리는 수고를 통째로 덜 수 있다. 런드리고는 지난해 9월 누적 회원 100만가구를 넘어섰다.
이씨는 "자취방 세탁기가 이불 빨기엔 작고 건조공간도 좁다. 빨래방까지 들고 오가는 게 무겁고 귀찮아서 아예 맡긴다"고 했다.
30대 김 모씨는 청소 전문가를 연결해 정기·일회성 청소를 제공하는 청소연구소와 비대면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를 함께 이용한다. 청소는 1회 5만~6만원을 내고 2~3개월에 한 번 맡기며 드라이클리닝이 필요한 옷도 런드리고에 보낸다.
김씨가 청소를 맡기는 이유는 단순한 귀찮음보다 전문성에 가깝다. 김씨는 "아무리 청소기를 돌려도 바닥이 꺼끌꺼끌한 건 안 없어지더라. 전문가 손이 닿으면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자신이 집에 없어도 가사일을 해놓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다만 "매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든다"고 했다.

같은 30대 홍 모씨는 세탁물을 수거해 세탁·건조한 뒤 배송하는 세탁특공대를 매주 이용한다. 자취방 세탁기에서 쉰내가 가시지 않아 세제를 바꿔봐도 소용없자 아예 세탁을 통째로 맡기는 쪽을 택했다. 계절과 공간 특성상 실내 건조가 어려운 것도 이유였다.
홍씨에게 가장 큰 장점은 시간이다. 직접 세탁하고 말리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없애면서 반복되는 빨래를 자신의 일상에서 떼어냈다.
세탁특공대는 대용량 생활세탁 서비스 '빨래방'을 출시 3개월 만에 누적성장률 200%를 기록했다. 월간활성이용자수는 15만명 수준이다.
가사대행의 범위는 맞벌이·육아 가구로도 넓어진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직장생활과 자녀 돌봄을 병행하면서 쓰레기를 버릴 시간과 체력이 부족해 정기적인 쓰레기 수거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화장실 청소처럼 기계로 대체하기 어려운 일만 따로 맡긴다는 사례가 확인된다.
반려동물 관련 카페에서도 비슷한 글을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야근이나 출장으로 반려견 산책을 챙기기 어려워 도그워커나 방문 펫시터에게 산책·식사·배변 관리를 맡겼다는 후기다. 인기 맛집이나 팝업스토어, 한정판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오랜 시간 줄을 서야 할 때 대신 줄을 서주는 '줄서기 대행'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렇듯 체력과 관련된 다양한 영역에서 이용자들이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서비스를 다시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몇만원을 내고 체력과 시간을 사는 셈이다. 그렇게 돈을 내고 사는 것은 깨끗한 집만이 아니다. 퇴근 후 소파에 누워 온전히 쉴 수 있는 저녁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 가사노동을 외주화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조금 양상이 달라졌다"며 "요즘 2030세대는 자신이 잘 못하는 일은 잘하는 사람에게 시키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1인가구 증가도 이런 소비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과거에는 가족이 2인, 3인, 4인이면 식구 중에 누군가가 같이 도와서 했지만 지금은 혼자 사는 경우가 많다"며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면 돈을 주고 맡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인터넷과 플랫폼의 등장으로 서비스 이용 장벽도 낮아졌다고 봤다. 이 교수는 "인터넷 때문에 전문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매칭이 가능해졌다"며 "옛날보다 수월해졌기 때문에 전문적인 서비스 위주로 맡기고 수탁받는 것들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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