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줄인 美, 묘수없는 韓…北은 북미회담 여지 남겼다 [view]

이유정, 정영교 2026. 8. 20.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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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김여정 노동당 부장 명의의 입장 발표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브콜에 대한 첫 반응을 내놨다. 북·미 지도자 간 소통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면서도 “두 지도자의 관계는 의연 훌륭하다”고 인정하면서다.

다만 트럼프의 한·미 연합훈련 축소 지시에 대해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고 일축하면서 “훈련의 규모나 기일이 줄어든다고 해서 도발적, 공격적 성격의 군사연습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트럼프의 연합훈련 축소 결정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북·미 정상 간의 회동 가능성에는 일정 부분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한ㆍ미 군 당국은 이날 을지자유의방패(UFS) 연합연습 기간을 당초의 절반으로 줄인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에 “(미) 국방장관에게 연합연습 축소를 지시했다”고 밝힌 지 만 이틀 만이다.

한ㆍ미 군 당국 간 사전 합의를 거쳐 이미 시행에 들어간 연합연습을 도중에 중단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정부가 한ㆍ미 관계의 추가 악화를 막기 위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위태로운 양국 관계를 반영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초유의 UFS 조기 종료


한미연합훈련인 '을지 자유의 방패'(을지프리덤실드UFS) 연습 첫날인 17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주한미군 장병들이 아파치 헬기를 점검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미측의 제안으로 현재 시행 중인 2026 UFS 연습 기간을 17일부터 21일까지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당초 한ㆍ미가 발표했던 17~27일 일정이 사실상 반토막 난 것이다.

연합연습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지휘소연습(CPX)과 이와 연계된 야외기동훈련(FTX)으로 나뉜다. CPX는 1부 ‘방어’와 2부 ‘반격’으로 구성되는데, 일정 단축에 따라 북한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해온 2부 연습은 아예 진행하지 않게 됐다. FTX도 기존 대대급 14건 가운데 일부를 한ㆍ미가 각자 실시하는 훈련으로 바꿔 진행하는 등 10건 미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미 국방부(전쟁부)도 같은 날 “미 대통령과 전쟁부 장관의 지침에 따라 UFS 연습은 당초 계획보다 일주일 앞당겨진 21일 종료될 예정”이라며 “일부 훈련은 취소되거나 시뮬레이션으로 전환됐다”고 확인했다.

한ㆍ미 군 당국이 장기간 협의와 승인 절차를 거쳐 확정한 연습 계획이 트럼프 대통령의 SNS 메시지 하나로 뒤집혔다는 점에서 후폭풍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 출석해 트럼프 대통령의 연합연습 축소 지시에 대해 “한ㆍ미 당국자가 (사전에) 아무도 몰랐다”고 답했다. 한국 정부에도 사전 통보가 없었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대화 재개를 염두에 두고 한국과 사전 조율 없이 연합훈련 축소 카드를 던진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사실상 그대로 수용한 데는 다른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는 현실적 고려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대미 투자 지연 문제와 쿠팡 사태 등을 둘러싸고 한ㆍ미 관계가 악화한 상황에서 트럼프의 공개적인 요구까지 거부할 경우 양국 관계가 관리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피스메이커(미국)-페이스메이커(한국)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미 행정부의 사전 정지 작업에 한국도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통했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SNS 메시지를 통해 북ㆍ미 정상 간의 우호적인 관계가 의미 있는 북ㆍ미 대화로 이어졌으면 좋겠다”(18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고 청와대의 반응도 그렇다.


뒷전으로 밀리는 대북 억제력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진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문제는 연합연습의 시행 여부와 규모가 한ㆍ미 양측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잇따라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자유의 방패(FS) 연합연습을 앞두고는 한국 측이 대북 유화 분위기 조성을 이유로 야외기동훈련을 하지 말자고 미측에 제안했다. 하지만 연습 시작을 불과 2주 앞두고 계획을 바꾸자는 한국 측 요구에 미국이 강하게 반대하면서 훈련은 원안대로 진행됐다. 반대로 이번 UFS에서는 미국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지시로 연습 자체가 중도에 대폭 축소됐다.

한ㆍ미 어느 쪽이든 정치적 필요에 따라 안보 사안을 쉽게 ‘옵션’으로 삼는 선례를 남기면서 안보 이슈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정부가 추진하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의 임기 내 전환과 맞물릴 경우, 주한미군의 대북 방어 역할이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경주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군사 대비 태세가 정치적 결단에 의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다는 시그널이 한ㆍ미 양쪽에서 나올수록 북한의 오판 가능성을 키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트럼프 구애에 만남 여지 내비친 김정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9기 제1차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한ㆍ미가 연합연습 조기 종료라는 이례적인 조치를 내놓자 최근 트럼프의 잇따른 대화 메시지에 사실상 무응답으로 일관하던 북한도 움직였다. ‘김정은의 입’ 역할을 하는 김여정 노동당 부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서다.

김여정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입장에서 북·미 정상 간 소통에 대해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며 “아마도 우리 최고지도부의 대외정책과 관련하여 내가 알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사안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국가수반이 트럼프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좋은 추억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며 “두 지도자의 관계는 의연 훌륭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여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은 변하지 않아 왔고 미국과 그 추종 무리들은 오늘 현재 이 순간도 적대적인 대조선 군사활동을 맹렬히 벌이고 있다”며 “마찬가지로 조미(북·미) 두 나라 지도자들 사이의 훌륭한 관계와는 무관하게 우리가 자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 취해 나가는 주권적 행사들은 매우 상식적이고 적중하며 필수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미 연합훈련 축소에 대해서도 “훈련의 규모나 기일이 줄어든다고 해서 도발적, 공격적 성격의 군사연습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북한의 전형적인 ‘길들이기’ 수법으로, 대화의 문턱 자체를 높여 협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이 때문에 연내 북·미 정상 간 회동이 이뤄지더라도 비핵화의 큰 틀보다는 핵 군축과 제재 완화를 맞교환하는 식의 제한적 합의, 이른바 ‘스몰딜’에 그칠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실질적인 협상보다는 북ㆍ미 정상 간 친분을 확인하는 일회성 만남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며 “올해 시진핑과 푸틴에 이어 트럼프까지 독대하게 된다면 김정은에게는 그 자체로 정치적 승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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