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사·콜롬비아 목사, 지진 속 빛난 ‘동반자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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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남쪽으로 80㎞ 떨어진 소도시 푸사가수가. 김혜정(63) 선교사가 선교적 교회를 지향하면서 세운 바울선교교회에서는 생수와 대형 수건을 묶은 구호품 300세트가 준비되고 있다.
구스타보 목사가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사역에 합류하겠다고 나섰을 때 김 선교사는 "하루아침에 수입이 끊기면 현실을 견디기 어렵다"며 오히려 만류했다.
안수식에는 김 선교사 등 한국 선교사와 콜롬비아 목회자 5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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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이양 통해 자립 선교 정착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남쪽으로 80㎞ 떨어진 소도시 푸사가수가. 김혜정(63) 선교사가 선교적 교회를 지향하면서 세운 바울선교교회에서는 생수와 대형 수건을 묶은 구호품 300세트가 준비되고 있다. 목적지는 최근 규모 7.4의 강진으로 25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전해진 재난지역 페레이라다. 구호품 마련부터 수송 동선까지 챙기며 긴급구호를 총괄하는 이는 한국인이 아니다. 콜롬비아 현지인 구스타보 마르케스(42) 목사를 비롯해 디멜사 발렌시아(44) 전도사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18일 서울 강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선교사는 “20일 밤 콜롬비아에 도착해 주일예배를 마친 뒤 곧바로 피해 현장으로 떠난다”고 했다. 김 선교사는 현장에서 지시하지 않는다. 그는 “경험이 많은 구스타보 목사에게 구호 실무를 전적으로 맡기고 나는 조력자로 동행할 뿐”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페레이라로 향하는 또 다른 목적은 그곳에 흩어져 사는 6·25 참전용사와 유가족 6가정의 생사 확인이다.
콜롬비아는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6·25전쟁에 전투부대 약 5100명을 파병하고 피를 흘린 나라다. 당시 200여명이 전사하고 6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김 선교사는 생존 참전용사를 100여명으로 파악한다. 상당수가 전쟁의 상흔과 생활고를 안고 산다. 술만 마시면 “적군이 온다”며 총을 쏘던 한 참전용사는 몸에 총알이 박힌 채 살다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딸은 그것이 전쟁 트라우마인 줄 모르고 아버지의 술버릇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전 참전용사 사역의 첫걸음은 2017년 기아대책을 통한 후원자의 일회성 지원이었다. 김 선교사는 형편이 열악한 지방을 찾자고 제안해 카르타헤나의 10가정을 방문했다. 프로젝트가 끝나자 당시 청년사역자였던 구스타보가 나섰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귀한 분들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지원금이 끊겨도 계속 돕고 싶습니다.” 김 선교사는 “경비가 만만치 않다”며 만류했지만 뜻이 확고했다. 이후 두 사람은 후원금이 생길 때마다 참전용사 가정을 찾아갔고, 코로나19로 여럿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배우자까지 돌보고 있다.
구스타보 목사가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사역에 합류하겠다고 나섰을 때 김 선교사는 “하루아침에 수입이 끊기면 현실을 견디기 어렵다”며 오히려 만류했다. 함께 길을 나선 뒤에도 김 선교사는 “내 주머니도 비었으니 선교사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당부를 건넸다. 작은 임대방에서 시작한 어린이 사역은 교회가 설립된 뒤 한 지붕 아래 사는 공동체가 됐고, 지금도 네 사람이 교회에서 함께 산다.
김 선교사가 현지 청년들과 스스럼없이 부대끼며 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개인사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때 회계사였던 부친이 간질환으로 별세하며 유복했던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그는 “힘든 시절을 지나고 나니 웬만한 어려움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대학시절 예수를 영접한 그는 1990년대 후반 중국에서 조선족·탈북 청년들과 ‘공부방’ 공동생활을 하며 사역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후 40년 전통의 바울선교회에서 파송받아 2001년 연고 없는 콜롬비아에 들어갔다. 후원자를 모집하지 않고 떠나는 선교회 원칙대로 개인 후원자가 없었고, 목회자였던 어머니조차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며 딸에게 후원금을 보내지 않았다.
무급으로 동고동락한 시간을 지나 구스타보는 수년 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안수식에는 김 선교사 등 한국 선교사와 콜롬비아 목회자 5명이 참여했다. 현지인 목회자가 서자 김 선교사는 뒤로 물러났다. 마을 유일의 개신교회인 바울선교교회를 세운 뒤 강단에 선 것은 한 달뿐이었다. 예배와 설교를 20대이던 구스타보에게 넘기며 이렇게 말했다. “모르겠으면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네가 해라.” 학부모 상담에서도 손을 뗐다.
2006년 푸사가수가에 정착해 어린이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그는 이양할 자리를 준비했다. 2008년부터 기아대책과 협력해 어린이개발사업 센터를 15년간 운영하면서도 주도권은 현지인들에게 넘겼다. 김 선교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제가 전면에 나서면 열매가 많지 않습니다. 이 동역자들이 분명히 나보다 큰일을 할 겁니다. 자기 땅에서 자기 민족과 함께하니까요.”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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