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지금 이 여왕에 빠져있다

김영주 2026. 8. 2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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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성 400m 계주 우승 직후 손가락으로 4관왕 달성을 자랑하는 헌트. [로이터=연합뉴스]

여성 스프린터 에이미 헌트(24)가 영국인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파리올림픽 여자 400m(4×100m) 계주와 지난해 세계선수권 여자 200m에서 은메달에 머물렀던 헌트는 지난 16일 막을 내린 유럽육상선수권대회 100m와 200m, 400m 계주, 혼성 400(4×100m) 계주 등 출전한 4개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냈다.

헌트는 팬들이 좋아할 요소를 두루 갖췄다. 10대 시절 보그로부터 “시대를 정의할 얼굴”이라는 천재 유망주로 꼽혔으나 2022년 대퇴사두근 힘줄이 완전히 파열돼 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샤워실도 나오지 못하고 목발을 짚어야 했던 절망적인 시기를 겪었다. 그런 헌트가 다시 일어나 유럽선수권 최초의 4관왕이라는 전설을 쓴 건 한 편의 드라마다.

4관왕 이후 “실패하지 않는다면 이길 수 없다”, “인생은 짧다. 왜 야심을 가져서는 안 되나”, “내가 보여주는 모습, 메시지와 철학은 모두 대담해지는 것”이라고 말해 팬들을 감동시켰다.

이렇게 말을 잘 하는 건 뇌섹녀이기 때문이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헌트는 중세 영국의 시인이자 작가 제프리 초서 등 고전문학에 관심을 보여왔다. 훈련지인 이탈리아에서 매달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을 찾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을 깊이 탐닉한다.

우승 세리머니는 경기 퍼포먼스 못지 않다. 200m 우승 직후 중계 카메라를 향해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명대사 “즐겁지 아니한가?(Are you not entertained?)”를 포효해 관중을 열광시켰다. 자신의 캐릭터까지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선수다.

영국 에이미 헌트가 16일(현지시간) 열린 유럽육상선수권대회 혼성 400m 계주 결승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외모와 패션도 빼놓을 수 없다. 또렷한 이목구비와 훤칠한 체격, 귀걸이와 팔찌, 화려한 네일을 한 채 트랙을 질주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모델 제의를 받은 적이 있고 나이키가 계약했다.

영국 가디언은 “금메달의 소녀”로, 텔레그래프는 “이번 대회에서 단연 돋보이는 스타”라고 했다. 더 타임스는 “공부와 운동의 신”, “트랙의 여신”이라고 전했다. 그가 4관왕을 달성한 후 “KFC로 자축연을 열었다”는 소식도 전했다.

가디언은 헌트가 지난달 육상 1마일 기록을 새로 쓴 조시 커(29), 월드컵에서 활약한 축구 스타 해리 케인(33)과 주드 벨링엄(23)을 제치고 올해의 스포츠인상 유력 후보라고 했다.

그러나 기록만 놓고 보면 아직 세계 최정상이라고 하기엔 이르다. 헌트의 이번 유럽선수권 100m 우승 기록은 11초00. 올해 시즌 최고 기록인 아데자 호지(10초63)와 0.37초 차이다. 200m 결승 기록도 22초19로 올해 시즌 베스트 기록인 줄리언 알프레드(21초51)보다 0.68초 늦다. 그의 개인 최고기록 역시 100m 10초97, 200m 22초08을 기록 중이다. 세계 정상급 선수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세계적인 수퍼스타’라는 평가를 받기에는 넘어야 할 벽이 있다.

더 타임스는 4관왕 직후 “이제 에이미 헌트가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을 달았다. 헌트가 정말 세계를 정복하려면 유럽선수권의 왕관만으로는 부족하고 주 종목인 200m에서 21초대, 100m에서는 10초대 중반으로 기록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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