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하는 남편, 사진작가 아내의 속사정

김상목 2026. 8. 1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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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리'는 직장에 다니며 틈틈이 음악을 만든다.

마이코가 추구하는 예술, 그녀의 삶을 대하는 태도, 얼핏 서로 어울릴지 의심되는 모리와 마이코가 어떤 점에서 공명하는지를 사진이 해설해 주는 셈.

모리와 아사코의 만남은 색안경 끼고 보면 지금의 아내와 다툼이 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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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고양이를 놓아줘>

[김상목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리'는 직장에 다니며 틈틈이 음악을 만든다. 아내인 '마이코'는 사진작가다. 마이코는 개인전을 열고 사진도 팔리며 성공적인 경력을 쌓는 중이다. 하지만 모리는 권태에 빠진 상태다. 그는 여유를 찾기 위해 직장을 쉬고 있지만, 창작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답답하기만 하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타박하거나 하지 않고 천천히 회복되길 기다리지만, 둘 사이엔 조금씩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는 중이다. 양쪽 다 뚜렷하게 인식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다.

사진전 마지막 날인데 아직 들르지 않은 게 마음이 쓰여 작은 선물을 준비하려 한다. 케이크 가게에서 그는 과거에 내밀한 인연을 맺은 '아사코'와 몇 년 만에 재회한다. 공원을 함께 산책하며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을 복기한다. 되살아난 떨림은 지금의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로 작동한다. 아사코에게도 작은 파문이 일어난 듯하다. 둘은 다시 두근거리는 심장을 간직한 채 각자 일상으로 돌아간다. 모리는 갤러리에서 마이코를 찾고 귀가해 함께 시간을 보낸다.

잠깐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고양이를 놓아줘> 스틸
ⓒ 안다미로
<고양이를 놓아줘>에는 실체로서 고양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슬로우 시네마라 분류되기 좋은 작업이지만, 그저 속도감을 고의로 떨어뜨린 답습과도 동떨어져 있다. '일상물'이라고 규격화된 형식에 가두는 것도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든다. 우리가 영화를 만나기 전, 종종 당연한 절차처럼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 영화의 기본 개요나 전문가와 주변의 품평을 통해 가상의 이미지를 머리에 넣어두고 대결에 나서듯 극장으로 향하는 태도를 당황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확실히 영화가 느릿하게 진행되는 편이긴 하다. 분명히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영화 속 풍경과 사람들의 동선은 쫓기지 않는 한가함으로 넘실거린다. 그러나 겉으론 심각한 문제가 아닐지언정 셋의 현재 삶은 만족과는 한참 멀다. 조금만 기운을 내면 해결될 것처럼 보여도, 그들과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이들이라면 때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게 천근만근 무게로 자신을 짓누를 수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 테다. 그들 역시 여러 사정으로 딱 그 상태다.

각박한 시절을 살아가는 관객은 종종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지만, 타인의 고통엔 애써 외면하거나 위악적으로 냉혹해지기 일쑤다. 이 양면성은 종이 한 장 차이로 겹친다. 인정하기 싫어도 그 어느 때보다 '내로남불'이 만연한 데다 눈치 보지 않는 세태에서 <고양이를 놓아줘> 속 잔잔한 일상의 파문은 주의 깊게 집중하지 않으면 그냥 흘려보내고 말 것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놓친다면 모리가 문득 되찾은 기억처럼 오래도록 생각나며 스스로를 괴롭힐 법하다.

영화에는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처럼 출렁이는 굴곡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인물의 내면에선 소용돌이가 일지만, 그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지 않으면 놓치기 딱 좋다. 한 번 놓치면 다시 시간을 되돌려 경험할 수 없다. 스크린을 경계로 작중 인물과 객석의 관객이 구분되지 않고 마치 전염되듯 화면 속에서 그들을 관찰하는 경로에 진입해야만 공감하며 이해할 구석이 많다. 복잡하게 설명할 것 없이 그냥 그들 곁에서 몰래 훔쳐보면 된다는 이야기.

3인 3색, 음악과 사진, 미술로 채우는 영화의 여백
 <고양이를 놓아줘> 스틸
ⓒ 안다미로
언뜻 다만 미세한 감정의 교차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연속으로 보이는 전개에 스며드는 건 세 등장인물이 열정을 품은 문화예술의 존재감이다. 모리는 싱어송라이터 활동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음향 작업 전문 회사에 다닌다. 마이코는 디지털카메라가 대세인 요즘 시절에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카메라로 독창적인 사진 미학을 구축하려 정진한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가며 붓을 놓았던 아사코는 여전히 품고 있던 그림 작업을 떠올리며 물감을 찾는다.

각자 분신과도 같은 예술은 그저 캐릭터 개성을 위해 동원되는 장치를 가뿐히 초월한다. 우리가 '예술가'에 관해 부정적인 인식을 품을 때 종종 언급하는 '괴팍함'과는 달리 크게 모난 데 없는 인물들이지만, 지금의 삶을 언제든 포기하고 창작에 매진할 이들임은 분명하다. 허물없이 모리와 마이코는 평범하게 누리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기꺼이 작업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지 문답을 나눈다. 그들이 영화 속에서 선보이는 면모와 밀접한 관련이 됨은 자명하다.

그들의 작업은 그들을 저절로 떠올리게 해준다. 모리는 '멈춤' 상태다. 직장을 휴직하고 집에 틀어박혀 음악 작업에 몰두하려 해도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속 좁게 한창 잘나가는 아내를 시기하거나 자기혐오에 빠져 혼자 열등감에 몸부림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다만 지금의 정체가 10년쯤 지나면 해소되려나 막연히 기다릴 뿐, 그러다 잠잠한 수면 아래 거센 해류가 충돌하듯 심경이 흔들리면 조용히 수첩에 자신을 투영한 노래를 작사한다.

마이코의 사진전 표제는 '홀로 무언가를 모으고 있다'다. 그녀의 개인전은 사진계에선 작게나마 반향을 불러오는 듯하다. 특유의 스타일이 이목을 끈 덕분. 마이코는 '카메라 옵스큐라' 원리를 설명할 때 교보재로 선보이곤 하는 일명 '바늘구멍(핀홀) 카메라'로 작업한다. 이 원시적 카메라에는 렌즈가 없다. 오직 우직하게 바늘구멍으로 빛을 받아들여 필름에 명암을 새기는 방식을 취한다. 이 점 때문에 디지털은커녕, 셔터 눌러 촬영할 때마다 기본 10분씩 걸린다.

그런 특성으로 인해 자연스레 촬영 대상과 환경엔 제약이 따른다. 역동적인 스포츠 대결이나 정신없는 도시의 속도감은 절대로 피사체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 대척점에 있는 존재를 표현하는 데에는 기이한 위력을 발산한다. 렌즈가 삭제된 덕분에 거리가 어떻든 차이가 없고 고유의 질감을 필름에 새길 수 있다. 마이코가 추구하는 예술, 그녀의 삶을 대하는 태도, 얼핏 서로 어울릴지 의심되는 모리와 마이코가 어떤 점에서 공명하는지를 사진이 해설해 주는 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
 <고양이를 놓아줘> 스틸
ⓒ 안다미로
창작을 이어가는 모리, 마이코와 달리 아사코는 작업 '멈춤' 상태다. 그녀는 옛 연인과 대화에서 물감조차 버렸다고 말한다. 둘 사이의 과거가 플래시백으로 교차한다. 헤어진 연인 사이 뜻밖의 재회는 흔히 상상하는 불온한 이면으로 향하는 대신, 다시 캔버스 앞에 선 그녀의 새 작업에서 추가되는 요소로 작용한다. 과거가 어떻게 내일에 보탬이 되는지 물 흐르듯 구구절절 설명 없이도 수행하는 기능이다. 속세를 벗어난 듯 펼쳐진 목적지 없는 산책의 결실.

모리와 아사코의 만남은 색안경 끼고 보면 지금의 아내와 다툼이 될 사안이다. 물론 들키진 않는다. 모리는 옛 연인과의 재회를 굳이 마이코에게 고백하지 않을 듯하다.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길 게 뻔하다. 작은 떨림의 순간이 분명히 돌아왔으나 반나절이 지나 그들은 현재의 삶으로 귀환한다. 우연으로 셋이 대면할 뻔 아슬아슬 찰나에 관객은 짓궂게 기대할 테지만, 통속 전개는 감독의 계획에 포함되지 않는다. 은밀한 욕망은 누구에게나 깃들 수 있으니.

대신에 잠깐 되찾은 과거의 애틋한 감정은 메말라 있던 엔진을 구동하는 첨가제가 되어준다. 누구나 몇 번은 찾아들 윤리 경계선, 가책과 흥분의 교차점을 영화는 단죄하지 않고 권태로운 삶의 자극으로 전용한다. 모리는 발걸음을 옮겨 아내의 사진전에 당도한다. 남편의 참석을 체념하던 마이코는 놀람과 기쁨, 그리고 당혹감이 교차한다. 그리고 어쩌면 영화 속 가장 큰 진폭의 순간이 도래한다. 마이코는 결단을 내리고 남편과 함께 모종의 일탈을 감행한다.

겉으론 지친 남편 돌보는 사려 깊은 현모양처에다 성공적 경력을 향하는 마이코에게도 불안은 잠재한 상태다. 그래서 남편이 자신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을 발견하며 짓는 그녀의 표정은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누구나 완전무결한 성인일 수 없고, 그걸 알기에 우리는 비범하고 초월적인 성인을 경외하는 이유다. 다만 유혹에 선을 넘지 않고 자신을 제어하며 경험에서 지혜를 얻는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마이코의 결단은 자신과 남편을 더불어 구조한다.

눈으로 보는 도회풍 소설처럼 다가오는 영화의 매력
 <고양이를 놓아줘> 스틸
ⓒ 안다미로
그렇게 이야기가 천천히 흐르며 분신과도 같은 예술을 촉매로 삼아 그들의 본색과 지향이 소리 없이 형체를 갖춰나간다. 정신없이 앞만 보며 쫓기는 삶에선 놓칠 수밖에 없는 '일단 멈춤'과 '돌아봄'의 효능이다. 내성적이라 속내를 펼쳐놓길 주저하는 그들이지만, 타인과의 연결을 포기하지도, 쓸모가 없다며 부정하지도 않는다. 진통은 겪을지언정 서로가 연결해 이룰 수 있는 것들에 발걸음이 더뎌도 돌고 돌아 닿을 수 있다는 신뢰는 거두지 않을 때 나오는 태도다.

기이하게 처음엔 인물 구분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모리와 아사코의 과거 회상 부분 역시 현재와 헷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건 감독의 명확한 의도다. 시간의 덧없음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만, 그것이 체념과 수동성으로 끝나진 않으려는 작은 의지다. 시간의 혼재는 서로 다른 차원을 연결하는 통로처럼 기능하며 작은 우주를 구축한다. 마침내 모두가 존재는 몰라도 순환 구조로 이어진 화면 속 세계의 전모, 모래처럼 보이던 개인의 삶이 형체를 띤다.

감독은 7년 전 단편의 등장인물들의 세월이 흘렀을 모양새를 상상하며 첫 장편을 완성해 내놓았다. 무심코 어깨를 스치며 동네에서 지나칠 법한 이들, 그들의 한길 내심과 갈망,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뚜벅뚜벅 이어지는 일상성을 마이코의 핀홀 카메라 촬영 본뜬 것 같다. 남들은 대수롭잖게 흘려보내는 존재들에 대한 연민과 관찰이 화면 곳곳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작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속 '도시남녀'의 속사정을 엿보는 암실로 관객을 이끈다.

<작품정보>

고양이를 놓아줘
猫を放つ, Leave the cat alone
2026 일본 드라마
2026.08.26. 개봉 102분 12세 관람가
감독/각본 시가야 다이스케
출연 후지이 소마(모리 역), 무라카미 유키노(아사코 역), 타니구치 란(마이코 역)
수입/배급 ㈜안다미로
제공 케이제이앤투자파트너스(유)
 <고양이를 놓아줘> 포스터
ⓒ 안다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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