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늘 있어왔던 것들을 신박하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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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참 빠르게 변한다.
오히려 여전히 우리에게 있어왔던 것들을 소환해서 하나씩 들여다 본다.
김기태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원래부터 있었기에 그냥 그러하다고 생각하거나, 그것 아닌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세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추억 같은 것, 우리가 이미 공유하면서 살아갔던 것, 절절한 사랑 아니어도 그냥 "친한 사이"(두 사람의 인터네셔널, 142쪽)로 함께 그 하나하나의 시간들을 반추하면서,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엄청난 시대에 우리가 통속적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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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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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태 소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들을 신박하게 다룬다. 다수의 문학상을 한꺼번에 수상하며 주목받는 소설가이다. |
| ⓒ 문학동네 |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한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이미 진부해졌다. AI 시대와 그 산업 기반을 뒷받침하는 반도체, 자율주행, 로봇, 우주의 시대가 자본의 무한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주식 시장의 기세를 타고 활활 타오를 기세다.
그런데 김기태의 소설 어디에도 이런 시대 변화는 감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전히 우리에게 있어왔던 것들을 소환해서 하나씩 들여다 본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학벌지상주의(「보편 교양」)와 출세주의(「전조등」)에 머물러 있고, 이주 노동자와 비정규직 문제(「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는 해결하지 못하는 아픈 손가락이다. 꿈을 꾸고 그걸 이루어가는 것도(「무겁고 높은」), 결혼 한 번 하는 것도 쉽지 않고(「롤링 선더 러브」), 잘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끝없이 물어도 답이 없다.(「팍스 아토미카」) 여전히 자본주의의 외형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스타덤은 강력하게 우리를 환호하게 한다.(「세상의 모든 바다」, 「로나, 우리의 별」)
김기태는 이런 세태를 부정하지 않고,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그야말로 풍속소설, 세태소설이라 할만하다. 다만 세태를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갈 방법을 따뜻하게 궁리한다. 늘 있어왔던 것들을 다루지만 그의 소설은, 신박하다!
통속적인 멜로는 옳다
김기태는 옳은 이야기를 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하게 한다.
그들은 아름다웠고, 유능했고, 심지어 옳았다. (「세상의 모든 바다」, 23쪽)
이럴 수 있다면, 이런 세상에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화려하지만 중심을 잃지 않고, 소박하지만 그것을 성취하는 과정이 의미 있다는.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사랑하는 사람 만나 예쁜 아기 낳고 잘 살아보겠다는 꿈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이 통속적인 멜로가 얼마나 보편적인 사실인지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어떤 것들은 예고될 수 없으며 호명될 뿐"(「전조등」, 107쪽)이지만, 그렇게 호명된 아들, 아빠, 사위, 장인, 할아버지 또한 가장 단순명료한 삶의 존재 이유일지도 모른다.
맛집 중에서도 청국장같이 냄새나고 소대창만큼 기름을 튀기는데 등뼈찜처럼 손가락을 빨게 만드는, 우아하지도 산뜻하지도 않지만 그래서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봐도 부끄럽지 않은 프로그램(「롤링 선더 러브」, 53쪽)
이런 데이팅 예능 <솔로농장>에 출연한 「롤링 선더 러브」의 맹희는 지극히 평범하다. 간헐적으로 포스팅을 했지만 삶의 소박한 장면들을 놓치지 않았고, 누구처럼 사랑도 하고 이별도 했다. "나쁘지 않았어. 적극적이었어. 제법 날았어. 그렇긴 그런데…… 날아가서 맞혀야 할 과녁을 모르겠네."(「롤링 선더 러브」, 56쪽)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도 있지만, 그래도 좋았다. 사랑마저 능력이나 실력이 되는 세상에서 사랑을 선택받기 위한 그런 사랑은 진정성이 없는 것임을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도 그것을 시청하는 이도 잘 안다.
사람들은 나이와 직업과 외모를 초월한 사랑이 더 진실하다 여기면서도 정말 그것들을 초월하려고 시도하면 자격을 물었다. 인생을 반도 안 산 사람에게 어떻게 '도태'되었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지, 596명이나 거기에 추천을 누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의아했다.(...) 어째서 이렇게나 많은 남자가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을, 무엇을 속이거나 팔아넘기겠다는 말로 번역해서 들을까. (「롤링 선더 러브」, 70쪽)
맹희는 그 프로그램 참여자가 아니라, 그 장면을 촬영하는 피디에게 더 매력을 느낀다. 역시 사랑은 끌림이다.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또한 그런대로 괜찮다. 대부분의 사랑은 늘 그렇다.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맹희는 앞으로도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많은 노래에 기대며. 많은 노래에 속으며.
(「롤링 선더 러브」, 76쪽)
김기태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원래부터 있었기에 그냥 그러하다고 생각하거나, 그것 아닌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세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추억 같은 것, 우리가 이미 공유하면서 살아갔던 것, 절절한 사랑 아니어도 그냥 "친한 사이"(「두 사람의 인터네셔널」, 142쪽)로 함께 그 하나하나의 시간들을 반추하면서,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엄청난 시대에 우리가 통속적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전쟁보다 더 지독한 것
먼 나라의 전쟁 소식은 일주일 남짓만 뉴스의 대미를 장식하다 사라졌다. 그보나 먼저 일어나 수년 간 계속되는 전쟁 소식은 방위 산업을 얼마나 성장시켰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수렴되었던 것처럼, 중동 전쟁은 유가와 금리와 주식 시장이라는 수치로 수렴되었다. 거기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가보다 내 주식이 얼마나 떨어지느냐가 관심사였다. 역시 우리는 여전히 지독하다.
퇴직금이 입금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정확하고 깔끔한 자본주의의 맛. 마트를 운영하는 대기업 회장은 소셜미디어에 이런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난 공산당이 싫어요."(「두 사람의 인터네셔널」, 136쪽)
'마트를 운영하는 대기업 회장'이라는 역설이 조금 통쾌하지만, 영 찜찜한 훗입맛을 다시게 된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콩 상당히 싫어요."였던 그 말은, 모 커피회사의 마케팅 논란과 오버랩되면서, 다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마트 회사의 주가는 다시 고공행진했다.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보일러를 아껴 트는 겨울,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 서로의 등을 보면 봄날의 교무실이 떠올랐다.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두 사람의 인터네셔널」, 143쪽)
우리가 다시 노동자들과 어깨동무하고 인터내셔널가를 다시 부르는 날이 온다 해도 좀 머쓱하지 않을까?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 추억이나 우정 따위. 존경, 배려, 수용, 인내 따위의 고리타분한 단어들. 이런 단어들이 오히려 신선해지는 그런 역설의 시대를 우리는 살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지금 여기서 살아가기
그래도 여전히 위안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내가 무엇을 남들보다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노력해도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해 보는 것.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는 그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기의 시간을 다독일 줄 아는 사람이다.
단편 「무겁고 높은」에서 역도대회 우승자 '안경'은 고등부 동체급 최고기록을 세우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운다. 그렇게 늘 불행한 승자도 있다. 어차피 승자의 자리는 정해져 있지만 삶의 무게에는 승자 따위가 없다. 우리 인생의 무게와 가치 또한 승패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좋으면 해보는 거다. 거기에 굳이 의미를 붙일 필요가 없다. 그저 "그냥"(「무겁고 높은」, 245쪽)이라고 말할 수 있어도 된다.
들지 못하던 것을 들면 물론 기뻤다. 하지만 버리는 기분은 더 좋았다. 더 무거운 것을 버릴수록 더 좋았다. 온몸의 무게가 일시에 사라지는 느낌. 아주 잠깐, 두 발이 떠오르는 것 같은. (……) 버리려면 들어야 했다. 버리는 것과 떨어뜨리는 것은 아주 달랐다. (「무겁고 높은」, 249-250쪽)
김기태의 소설들을 읽으며 인생이 좀더 그럴듯해졌다. 마치 사진첩을 뒤지듯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것들은 조심스럽게 끄집어내서 잔잔히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나와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인정하게 한다. 위로라는 단어를 써도 좋을 듯하다.
어쩌면 새들의 지저귐보다 시끄럽고 갓 구운 빵보다 뜨거우며 조카의 해맑은 웃음보다 슬픈 무엇, 스크린도어도 없던 시절,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1호선의 굉음. 열차를 일부러 떠나보내며 나누는 입술. 한강을 건너는 택시와 차창 밖의 쏜살같은 불빛들. 까맣게 꺼진 휴대전화 액정과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식어버린 찻잔. 여지없이 비가 쏟아지면 뛰다가 걷다가 고가도로 아래에 서서 젖은 몸으로 스스로를 비웃기. 바보 같지만 가끔 되풀이하고 싶은 소란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까.(...) 사랑은 새들보다 가깝고 빵보다 단단하며 조카보다 듬직한 무엇일지도. 퇴근하고 나니 비워져 있는 휴지통. 소화제를 먹을 때 옆에서 따라주는 더운 물 한 컵. 늙은 부모의 터무니없는 세계관을 함께 끄덕이며 흘려듣다가 주차장에 내려와 시동을 걸기 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뱉는 안도의 한숨. 물티슈와 수세미, 파스와 보행기. 암 보험과 노령연금과 장례 토털 케어 서비스 카탈로그를 함께 뒤적거리기(「롤링 선더 러브」, 50-51쪽)
일상의 행복은 먼 데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여기'. 내 안과 밖에서 나를 있게 한 모든 따뜻한 것들이 우리에게 있었다. 어떤 모습이든, 어느 순간 나와 함께 있는 그 누군가와 우리는 "기립하시오!"를 외치며, 우리만의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단지 생존하기 위해 그렇게나 일하는 데에 지쳤다면, 더 많은 삶을 사랑하고 창조하는 데에 쓰고 싶다면, 자신이 자유로운 인간인지 의심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우리다.(「로나, 우리의 별」, 205쪽)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 마음 닿는 곳에 있는 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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