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발자국이 그대로...영화 '호프' 촬영지 가봤더니

이돈삼 2026. 8. 1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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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땅끝, 해남군 북평면 남창마을이 올여름 핫플이다.

남창(南倉)은 해남 끝자락, 완도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바닷가 마을이다.

해남 남창은 완도와 육지를 잇는 그저 그런 길목처럼 보인다. 조선에서 근현대까지 시공간을 뛰어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바닷가 마을, 남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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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옛 물류 중심지였던 해남군 북평면 남창마을

[이돈삼 기자]

 영화 ‘호프’에서 종횡무진 달린 경찰차. 같은 차종과 도색으로 남창마을에 전시돼 있다.
ⓒ 이돈삼
한반도 땅끝, 해남군 북평면 남창마을이 올여름 핫플이다. 여름휴가를 맞춘 가족단위 여행객과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 방문객이 사는 곳도 해남 외 다른 지역이 대부분이다. 이들을 남창으로 불러들인 것이 영화 <호프>(HOPE)다.
지난 10일, 남창에서 발걸음을 떼는 곳마다 거대한 발자국이 그려져 있다. 언뜻 공룡의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외계인 바미기르의 발자국이다. 부서진 간판을 단 '금복정육점식당' 앞에도 발걸음이 멈춘다. 옛 모습 그대로의 호포파출소의 책상과 전화기도 눈길을 끈다.
 영화 속 거리로 나온 남창마을. 실제 70~80년대 풍경 그대로다.
ⓒ 이돈삼
 영화 ‘호프’ 속 촬영지인 ‘금복정육점식당’. 영화에서처럼 부서진 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다.
ⓒ 이돈삼
거리에는 이발소와 전파상, 철물점, 농약사, 건강원이 줄지어 있다. 저마다 빛바랜 옛날식 간판을 달고 있다. 물건을 도로변에 내놓은 구멍가게도 정겹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 하나의 거대한 촬영 세트장이다.
방문객들은 70~80년대 감성을 찾아다니며 추억을 남긴다. 나도 그 대열에 끼어들었다. 스크린에서 느꼈던 긴장감은 없지만, 영화 속 장면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금방이라도 골목에서 총을 든 파출소장 범석(황정민)과 순경 성애(정호연)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나도 범석과 성애처럼 뛰어다녀야 하나?
 부서진 간판을 단 ‘금복정육점식당’ 앞 거리. 영화 '호프' 속 풍경 그대로다.
ⓒ 이돈삼
 해월루 앞 사진 촬영 지점. 달량진 앞바다를 배경으로 세워져 있다.
ⓒ 이돈삼
남창(南倉)은 해남 끝자락, 완도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바닷가 마을이다. 지명은 '남쪽 창고'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나라에 세금으로 바치는 곡식(세곡)을 보관한 창고를 가리킨다. 마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반전이 숨어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다.

시곗바늘을 1555년(명종 10년)으로 돌린다. 조선을 뒤흔든 '을묘왜변'이 이곳(당시 달량진)에서 일어났다. 왜구 수천 명이 기습했다. 조선의 방어선은 허망하게 뚫렸다. 전라병마절도사와 장흥부사가 이끄는 군사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을묘왜변 이후 조정에서 대책을 내놓았다. 왜구 방어와 군량 비축을 위해 이곳에 창고를 지었다. '남창'의 탄생이다. 남창에는 해남 인근은 물론 제주에서 거둔 세곡까지 쌓였다. 뭍에서 제주로 보내는 물자 보관 창고로도 쓰였다. 물류의 중심이었다.
 달량진성으로 가는 해안 데크 길. 시원한 바다를 보며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 이돈삼
 팽나무와 어우러지는 달량진성. 한낮의 더위를 피할 수 있어 더 좋다.
ⓒ 이돈삼
1483년과 1552년, 1555년 세 차례 침탈을 겪은 달량진(達梁鎭)은 1406년(태종 6년) 이전 설치된 것으로 추정한다. 진성에는 수군만호가 배치돼 배와 군사를 거느렸다. 달량진성은 을묘왜변 때 폐허가 됐다.

달량진성(達梁鎭城)의 동쪽과 북쪽 벽 일부가 남아 있다. 성벽은 마을의 담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옛 성돌은 돌담과 주택의 주춧돌에 들어갔다. 일부 성벽은 복원됐다. 성벽 주변에 줄지어 선 오래된 팽나무가 한낮 태양을 피하는 그늘을 만들어준다.

묵직한 역사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바닷가로 옮긴다. 멋진 누각이 하나 서 있다. 해월루(海月樓)다. 조선시대 달량진성을 지킨 수군만호가 머물던 곳이다. 뭍과 제주를 오가는 사신의 객사로도 쓰였다.

역사의 무게감이 전해지는 성벽과 해월루에서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듣는다. 푸른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다. 가슴 속까지 후련해진다. 옛사람들이 목숨 걸고 지킨 바다가 오늘 우리에게 선물한 힐링이다. 해 질 무렵 붉게 물드는 노을도 환상경이겠다.
 복원된 해월루. 달량진성의 수군만호가 머물던 곳이다.
ⓒ 이돈삼
 북평용줄다리기를 주제로 한 골목 벽그림. 벽그림은 남창마을의 역사와 특산물을 알려준다.
ⓒ 이돈삼
발길을 마을 안쪽으로 옮기면 동화 속 풍경을 만난다. 골목에 그려진 벽그림이 아기자기하다. 벽그림은 달량진성과 을묘왜변, 조선수군 재건과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랜 전통의 북평용줄다리기의 고장이 남창이란 사실도 알려준다. 전국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해남배추 등 지역특산물도 자랑한다. 골목을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 <호프>에 나온 남창 오일장의 규모도 컸다. 옛 남창은 물류의 가온누리였다. 섬(완도)과 뭍의 물산이 다 모였다. 매 2일과 7일 열리는 장에는 싱싱한 해산물이 쏟아졌다. 왁자지껄한 정과 바다의 맛이 버무려진 보물 같은 공간이다.
 북평용줄다리기 홍보관. 남창마을에 있다.
ⓒ 이돈삼
 영화에 나온 남창오일장. 영화 속 장면을 엿볼 수 있다.
ⓒ 이돈삼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북평용줄다리기도 빼놓을 수 없다. 옛날 남창 앞바다와 들녘은 가뭄이 잦고 파도가 거칠었다. 주민 삶이 고달팠다. 수호신인 용(龍)에 제사를 지내고, 거대한 짚으로 용을 만들어 당기는 놀이를 했다.

놀이는 동부와 서부로 나눠 치열하게 승부를 겨뤘다. 동부가 이기면 풍년 들고, 서부가 이기면 만선을 이룬다고 믿었다. 어느 한쪽이 이기는 승부가 아니다. 마을주민 모두에게 복이 돌아가는 화합의 마당이었다.

축제 날에는 '영차∼ 영차∼' 함성이 마을을 뒤덮었다. 진짜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마을은 거대한 에너지로 넘실댔다. 용줄다리기는 지금도 지역문화로 살아 숨 쉬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북평용줄다리기 홍보관이 마을에 있다.

해남 남창은 완도와 육지를 잇는 그저 그런 길목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조선에서 근현대까지 시공간을 뛰어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바닷가 마을, 남창이다.
 영화 ‘호프’ 촬영지를 알려주는 조형물. 남창 거리에 세워져 있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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