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역사' 이석규 지사 별세... 생전 모습을 그리지 못했다는 후회

주환선 2026. 8. 1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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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규 애국지사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석규 지사의 별세로 이제 국내에 생존해 있는 애국지사는 단 세 명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석규 지사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도 직접 빈소를 찾아뵙지 못한다.

어쩌면 지금 이석규 지사의 별세 소식이 유난히 크게 다가오는 것도 광복절 이틀전 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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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애국지사는 3명뿐

[주환선 기자]

이석규 애국지사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광복절을 불과 이틀 앞둔 8월 13일이었다. 향년 100세(만 99세). 한 세기를 살아온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마음이 무거웠지만, 내가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석규 지사의 별세로 이제 국내에 생존해 있는 애국지사는 단 세 명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김영관, 오성규, 강태선 지사. 일제강점기를 직접 겪었고, 그 시대에 독립을 위해 행동했던 사람들이 이제 세 분만 남았다.
▲ 이석규 지사 독립운동가 이석규 애국지사의 그림을 이제야 그린다. 이 그림을 후손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주환선
이석규 지사는 1943년 광주사범학교 재학 중 동급생들과 함께 무등독서회를 조직했다.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을 위해 활동했으며, 연합군이 한반도에 상륙하면 봉기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활동이 발각되면서 체포됐고 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그 공훈을 인정해 201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우리는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생몰연도를 알고, 어떤 일을 했는지 책과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배운다. 그렇게 한 사람은 기록 속의 인물이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면 직접 물어볼 수 있다. 그 사람의 목소리로 답을 들을 수도 있다. 이제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단 세 명밖에 남지 않았다.
▲ 이제 생존해있는 애국지사는 3명뿐 김영관 애국지사, 강태선 애국지사 오성규 애국지사
ⓒ 주환선
일제강점기를 직접 경험한 세대가 사라지고 있고, 독립운동을 자신의 기억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다. 책과 사진으로 남은 역사가 아니라, "내가 그때 그곳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늘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누군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의 삶을 다시 찾아보고, 사진을 꺼내보고, 인터뷰를 찾아본다.

이것은 다른 역사적 피해의 생존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도 현재 다섯 분뿐이다. 기록은 남는다. 사진도 남고 책도 남는다. 하지만 기록과 사진이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나에게는 안타까움보다 조금 더 큰 감정이 있다. 죄책감이다. 왜 조금 더 일찍 이석규 지사를 그리지 못했을까. 조금만 더 일찍 그렸다면 이석규 지사가 살아 계실 때 내 그림을 한 번쯤 눈에 담으실 수 있지 않았을까.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그림 한 장으로라도 말씀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 미국에 있다. 이석규 지사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도 직접 빈소를 찾아뵙지 못한다. 영전에 그림 한 점을 올려놓지도 못한다. 그래서 마음이 더 무겁다.

이석규 지사의 빈자리는 이제 채울 수 없다. 언젠가 남아 있는 세 분의 자리도 비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석규 지사의 별세 소식이 유난히 크게 다가오는 것도 광복절 이틀전 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지금 우리 사회가 역사를 둘러싼 여러 논쟁으로 시끄럽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의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그 역사를 직접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역사에 조금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닐까. 한쪽으로 치우친 시선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왜 독립을 위해 싸웠는지, 어떤 희생을 감수했는지를 제대로 기억하는 것.

무엇보다 그분들이 살아 계실 때는 물론,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분들의 삶이 왜곡되고 폄훼되어 또다시 치욕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조금 더 일찍 이석규 지사를 그리지 못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그리고 기록하려 한다.

독립운동가들이 더 이상 역사 앞에서 치욕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이석규 지사에게 드릴 수 있는, 너무 늦어버린 조문일 것이다.

진심으로 이석규지사의 명복을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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