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의원이 의도한 '빅 픽처'였을까

서부원 2026. 8. 1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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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과 5.18 민주화운동은 요즘 아이들에게 대표적인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다.

그런데 적어도 5.18이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된 이유를 이제야 알 것도 같다.

며칠 전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의 도서관에서 '5.18의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행사를 공동 주최한 새역사국민운동의 공동대표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5.18을 '열흘간의 소요 사태'로 규정하며, "좌파 정치세력이 독점하고 있는 5.18 문화 권력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고 부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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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일상화한 조롱과 혐오 현상을 부추긴 '5.18 재조명 포럼'

[서부원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과 5.18 민주화운동은 요즘 아이들에게 대표적인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다. 노무현의 노자만 나와도, 5.18이라는 숫자만 봐도 다들 무언가에 홀린 듯 낄낄댄다. 사자명예훼손이나 역사 왜곡이라는 사실엔 아랑곳없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오락의 소재다.

그 시작은 국가정보원이 '댓글 부대'를 운영했던 이명박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활개를 치는 걸 보면 그 '생명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백 보 양보해서, 조롱과 혐오를 일삼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 눙친다 해도, 줄곧 특정 인물과 사건만 조리돌리는 건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데 적어도 5.18이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된 이유를 이제야 알 것도 같다. 역사적 평가와 사법적 판단이 이미 끝난 데다,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폄훼하면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막말을 퍼붓는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극우 정치인들이 뒷배 노릇을 넘어 그들을 선동하고 있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과 새역사국민운동(공동대표 이영훈)이 공동 주최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공개포럼'이 13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진숙 의원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며칠 전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의 도서관에서 '5.18의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학술 토론회를 빙자한 이 행사에서 그는 "5.18 유공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업적이 있는지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5.18 유공자를 공개하라는 극우 세력들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행사를 공동 주최한 새역사국민운동의 공동대표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5.18을 '열흘간의 소요 사태'로 규정하며, "좌파 정치세력이 독점하고 있는 5.18 문화 권력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고 부르댔다. 그는 자타공인 뉴라이트 계열을 대표하는 인사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일제의 강제 동원이나 종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반일 종족주의>를 출간하여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행사에 초청된 토론자들도 눈에 띈다. 우선, 주동식 전 국민의힘 광주 서구 당협위원장이 '5.18이 1987 체제의 오염과 타락의 주범'이라는 내용으로 주제 발표에 나섰다. 그는 지난 2020년 총선에서 "광주는 5.18에 사로잡혀 생산 대신 제사에 매달리는 도시로 추락했다"며 5.18을 폄훼하는 망언을 쏟아낸 전력이 있다.

주대환 민주화운동 동지회 의장의 발언도 상식선을 한참 넘어섰다. 5.18을 두고 "이전의 대한민국에 없던 정신, 사상, 대의, 이념, 가치를 보지 못했다"며,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반대했다. 5.18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변곡점이라는 보편적인 인식과는 사뭇 동떨어진 주장이다.

그들의 행태는 몇 해 전 5.18을 왜곡하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형사 처벌까지 받았던 극우 논객 지만원을 능가한다. 이들이 모여 '재조명'한다는 5.18은 '안 봐도 비디오'다. 학술 토론회라는 표현으로 교묘하게 현행법을 피해 가려는 꼼수마저 엿보여 실소를 자아낸다.

이념적 양극화가 몰고 온 야만적인 풍경

예상대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강력히 반발하며 행사를 주최한 이진숙 의원의 제명을 추진하겠다고 나섰고, 국민의힘에서는 당의 입장과는 관련 없는 개인 행사라며 선을 그었다. 말싸움에 그친 여야 의원들과는 달리, 행사장에서는 방청객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됐다.

어쩌면 이는 이진숙 의원이 의도한 '빅 픽처'일지도 모른다. 여야가 대립하고 찬반이 격렬하게 부딪힐수록 해당 정치인에 대한 지지가 강고해지는 건 후진적인 우리 정치의 오랜 '공식'이다. 퇴행적인 모습일지언정 한 표가 아쉬운 정치인에겐 이른바 '코어 지지층'에 기대는 게 '남는 장사'일 테다.

말 꺼내기가 조심스럽지만, 난 이진숙 의원의 '양식'을 믿고 있다. 한때 전쟁터를 누비던 공중파 방송의 종군 기자였고, 지역 방송을 책임진 경영자였던 그가 삼척동자도 다 아는 5.18의 진실을 모를 리 없다. 나아가 그를 두둔하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 역시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들이 5.18 왜곡과 폄훼를 서슴지 않는 건 진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5월도 아닌 지금, 생뚱맞게 5.18 관련 행사를 여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정치인은 지지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생존을 모색한다. 더욱이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면, 온 국민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무명'보다 '악명'이 차라리 낫다는 건 정치인에겐 불문율이다.

전 세계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K-민주주의'의 모델로 평가받는 5.18이 일부 극우 정치인들에 의해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건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저항한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고, 가짜 희생자를 색출해야 한다는 등의 '2차 가해'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이념적 양극화가 몰고 온 야만적인 풍경이다.

희생자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국립 5.18 민주 묘지나 5.18 기념 공원 등에서 언제든 열람할 수 있다고 답하면, 인터넷에 공개하라며 생떼를 쓴다. 개인 정보 보호법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하다 하다 이젠 유공자들의 업적까지 공개하라며 '조롱과 혐오의 전선'을 넓히고 있다.

그들의 억지 주장과 요구는 극우 유튜브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며,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인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빠르게 장악해 나가고 있다. 알고리즘을 통해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역사적 진실과 거짓, 상식과 몰상식을 마구 혼동하는 현실이다. 아이들의 입에서조차 희생자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게 뭐가 문제냐는 질문이 튀어나온다.

뉴스에선 온통 비난 일색이었지만, 극소수일지언정 아이들의 분위기는 달랐다. 명색이 국회의원과 서울대 교수까지 지냈던 분이 설마 헛소리를 지껄이겠느냐며 짐짓 두둔하는 아이가 있었다. 민주화운동 동지회라는 단체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의 쓴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게 5.18정신이라고 둘러대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큰 죄를 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균택 원내부대표와 이주희 원내대변인이 14일 '5.18 왜곡폄훼' 이진숙 국회의원 제명 촉구 결의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지지층에 존재감을 드러내며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할지는 몰라도 그들은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큰 죄를 짓고 있다. 역사를 버젓이 왜곡하고 광주 시민을 욕보이는 몰상식한 행태가 요즘 아이들에게 일상화한 조롱과 혐오 현상에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쏘냐는 되바라진 아이들에게 뭐라고 답할 텐가.

5.18을 재조명하자는 건, 초중고 교과서의 내용을 통째로 바꾸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5.18 유공자의 업적을 따져보자는 건 학술 토론의 대상이 아니며, 민주화운동을 소요 사태로 명명하는 게 표현의 자유일 수 없다. 5.18 희생자의 관을 두고 '홍어 택배'라고 비아냥대는 일베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둬도 좋은지, 행사를 주최한 이진숙 의원은 답해보라.

이 의원을 비롯해 이번 행사 때 망언을 일삼은 이들은 5.18 왜곡 처벌법을 통해 단죄되어야 마땅하다. 이는 법 제정의 취지에 부합할뿐더러, 무엇보다 아이들을 가짜 뉴스에 휘둘리지 않는 올곧은 시민으로 길러내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자면 지난해 여야가 합의한 대로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게 우선일 테다.

사족. 이번 행사 때 나온 발언들은 하나같이 '수위'가 높다. 공교롭게도, 연사들 대부분이 전향한 인물들이다. 이영훈 전 교수는 엄혹했던 유신 정권 시절 이름조차 생소했던 위장 취업을 감행한 극렬 좌파 운동권 대학생이었다. 1990년대 초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자, 우파로 전향해 뉴라이트 운동의 대부가 됐다.

주동식 전 국민의힘 당협위원장도 그에 못지않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등 대표적인 좌파 운동권 단체에서 활동했다. 사노맹은 노동자 계급의 무장봉기로 대한민국 정부를 타도하고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지하에서 활동한 반국가 단체였다.

그의 전향 과정은 흡사 철새 정치인을 연상시킨다. 지금의 여당이 야당이었던 시절, 이른바 '친노' 세력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탈당했고, 이후 호남의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선 좌파 이념을 탈피해야 한다며 우파 정당에 가입했다. 민중당에서 국민의힘에 이르기까지 그가 몸담았던 정당의 숫자만 해도, 당명이 변경된 걸 제외하더라도 여섯 곳이나 된다.

주대환 민주화운동동지회 의장도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에서 활동한 골수 운동권이었다. 이후 좌파 정당인 민주노동당의 당직을 맡으며 진보 정치를 이끌어 오다 낡은 운동권 이념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저해한다며 우파로 전향했다. 이후 운동권 세력의 기득권화를 비판하며 '운동권 청산론'을 설파하고 있다.

동서고금에 전향한 이들이 더 무서운 법이다. 그들은 한때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동지들의 등에 비수를 꽂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이 5.18의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악담에 가까운 저주를 퍼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항생제의 내성과도 같아서 표현마저 나날이 거칠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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