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갑산 산마루에 '콩밭 매는 아낙네'가 울려 퍼질 때

김지영 2026. 8. 1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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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지열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고, 찌는 듯한 더위가 온몸을 감싸안는 날이었다.

충남 청양의 천장호와 칠갑산 일대를 거닐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국민가요 '칠갑산'에 담긴 이야기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배적삼이 흠뻑 젖는다..."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는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옛 아낙네의 눈물과 땀방울이 녹아 있던 칠갑산 자락은 이제 고단한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휴식을 건네는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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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천장호 출렁다리, 아득한 향수와 삶의 애환을 잇다

[김지영 기자]

지난 13일 오후,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지열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고, 찌는 듯한 더위가 온몸을 감싸안는 날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면 가을이 머지않았음을 시위라도 하듯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기분 좋게 맑았다. 도심의 텁텁한 공기를 뒤로하고 찾아간 곳은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에 위치한 칠갑산 자락, 바로 천장호 출렁다리였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호수로 이어지는 진입로에 들어서자 짙은 녹음이 만들어낸 그늘이 반가웠다. 머리 위를 가려주는 오솔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울창한 숲 너머로 거짓말처럼 수려한 호수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칠갑산의 크고 작은 능선들이 호수를 온통 초록빛으로 품어 안고 있었고, 맑은 하늘과 구름은 호수라는 거대한 거울 위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천장호 산책로와 캐릭터 인형
ⓒ 김지영
세계에서 제일 큰 고추'가 품은 뜻밖의 위트와 아찔한 스릴

천장호 출렁다리 입구에 다다르면 누구라도 절로 작은 미소를 짓게 된다. 다리의 중심을 받치고 있는 거대한 주탑이 청양의 대표 특산물인 붉은 고추와 구기자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무려 16m에 달하는 빨간 고추 주탑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고추·구기자'라는 정겨운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자칫 딱딱하고 밋밋할 수 있는 교량 구조물에 지역의 해학적인 특색을 입힌 위트가 돋보였다.

고추 터널 형상의 아치를 지나 다리 위로 발을 디뎠다. 길이 207m, 폭 1.5m의 목재 상판 다리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좌우로 아찔하게 출렁거렸다. '흔들'하고 다리가 휘청일 때마다 함께 걸어가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짧은 비명과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리 중간쯤에 다다르자 탁 트인 호수 바람이 얼굴에 와닿으며 찌는 듯한 더위를 단숨에 식혀주었다.
 청양의 상징인 고추와 구기자로 장식된 거대한 주탑.
ⓒ 김지영

출렁다리 한가운데 서서 호수 건너편 칠갑산 능선을 올려다보았다. 이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사실 우리네 부모님 세대의 눈물겹도록 고단했던 삶이 녹아 있다. 충남 청양의 천장호와 칠갑산 일대를 거닐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국민가요 '칠갑산'에 담긴 이야기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배적삼이 흠뻑 젖는다..."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는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가난하고 척박했던 시절, 그늘 하나 없는 땡볕 아래서 자식들 먹이고 공부시키려 묵묵히 밭을 매던 어머니의 삼베옷(배적삼)은 땀과 눈물로 늘 젖어 있었다. 그리고 정든 고향과 홀로 남겨질 어머니를 두고 떠나야 했던 어린 딸의 마음은 또 얼마나 참담하고 애절했을까. 칠갑산 산새 소리를 뒤로하고 가마에 올랐을 시골 딸의 쓸쓸한 사연이 잔잔한 천장호 물결 위에 아련히 겹쳐 보였다.
  '콩밭 매는 아낙네상'. 뜨거운 햇볕 아래 이마의 땀을 훔치며 호미를 든 모습
ⓒ 김지영
다리를 건너며 깨닫는 인연의 무게와 삶의 성찰

출렁다리를 사이에 두고 걷는 이 길은 단지 관광지를 한 바퀴 도는 여정이 아니었다. 출렁거리는 다리 위에서 휘청일 때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난간을 잡거나 곁에 있는 이의 손을 꼭 쥐게 된다. 삶이라는 것 역시 혼자서 곧게 걸어갈 수 있는 평탄한 도로가 아님을, 때로는 휘청이고 흔들리며 서로에게 의지해야만 건널 수 있는 '출렁다리' 같은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출렁다리를 건너 반대편에 이르면 칠갑산 자락을 따라 호반 데크 산책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잘 정비된 데크 길을 따라 가볍게 걸으며 호수를 바라보았다. 멀리서 바라본 출렁다리는 수면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조용히 호수의 양 끝을 이어주고 있었다. 시집간 딸과 홀어머니의 끊어질 듯 아픈 인연을 이어주듯, 과거의 슬픔을 현재의 평화로운 휴식으로 이어주듯 말이다.
 출렁다리의 모습. 탁 트인 호수 전경과 푸른 하늘이 아찔함과 아늑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 김지영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출렁다리를 건너 돌아오는 길. 들어설 때 느꼈던 생소함과 아찔함은 어느새 편안함으로 변해 있었다. 무더운 8월의 햇살은 여전히 강렬했지만,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칠갑산이 내어주는 그늘 덕분에 마음은 한결 느긋해졌다.

우리는 흔히 삶의 안정을 바란다. 하지만 정지해 있는 물은 이내 썩기 마련이고, 흔들리지 않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천장호 출렁다리가 수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스릴 때문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단단히 중심을 잡고 반대편으로 무사히 건너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옛 아낙네의 눈물과 땀방울이 녹아 있던 칠갑산 자락은 이제 고단한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휴식을 건네는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었다. 호숫가에 남겨둔 아련한 향수를 뒤로하고, 다시 내가 지켜내야 할 일상이라는 이름의 현장으로 담담히 발걸음을 돌린다.
 다각도에서 바라본 천장호와 출렁다리의 풍경 모음.
ⓒ 김지영

덧붙이는 글 | 충남 청양 천장호 출렁다리는 입장료와 주차비가 무료로 운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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