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벌판에 농장 차린 스님, 그곳에 숨겨진 진짜 목적

이완우 2026. 8. 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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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전북 장수군의 현충 시설인 장안산 죽림정사(竹林精舍)를 방문하였다. 죽림정사는 백두대간에 이웃하는 장안산(長安山, 1,237m)을 대표하는 가람이다. 장안산의 덕산계곡과 지지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죽림정사 옆을 지나고 번암면 소재지를 거쳐서 남원 요천으로 흘러간다.

장안산 죽림정사는 3.1독립선언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인 백용성(白龍城, 1864~1940) 조사가 출생한 장소에 세운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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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장수 장안산 죽림정사에서 되새긴 백용성 조사의 호국 정신

[이완우 기자]

 장안산 죽림정사 범종법고루
ⓒ 이완우
지난 10일, 전북 장수군의 현충 시설인 장안산 죽림정사(竹林精舍)를 방문하였다. 죽림정사는 백두대간에 이웃하는 장안산(長安山, 1,237m)을 대표하는 가람이다. 장안산의 덕산계곡과 지지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죽림정사 옆을 지나고 번암면 소재지를 거쳐서 남원 요천으로 흘러간다.

'호국' 도량 장안산 죽림정사

장안산 죽림정사는 3.1독립선언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인 백용성(白龍城, 1864~1940) 조사가 출생한 장소에 세운 사찰이다. 1993년, '백용성 조사 생가복원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대웅보전, 교육관, 기념관 등이 9년여에 걸쳐 건립됐다. 장안산 죽림정사는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민족의 혼과 근대 불교를 중흥하고자 했던 백용성 조사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사찰 도량이다.

장안산 죽림정사의 정문은 이층 누정인 범종법고루다. 1층은 커다란 석조 기둥 12개가 서 있는 개방된 공간이고, 이층에는 법고(북), 범종과 목어가 매달려 있다. '충의원통문(忠義圓通門)'이라는 현판이 호국 도량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장안산 죽림정사 연못의 석조 태극기
ⓒ 이완우
장안산 죽림정사 법고루를 지나서, 잔잔한 연못 앞에서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수면 위로는 둥근 수련잎들이 여유롭게 떠 있고, 물가를 따라 길게 뻗은 푸른 수초와 다듬어진 관목들이 초록으로 싱그럽다.
연못 건너편 기와를 얹은 낮은 흙돌담을 배경으로 비스듬히 세워진 널찍한 화강암 위에는 붉고 푸른 태극 문양과 건곤감리 사괘가 또렷한 커다란 석조 태극기 있다. 사찰 마당 앞에 굳건히 자리 잡은 이 석조 태극기가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했던 백용성 조사의 현충 시설임을 암시하고 있다.
 장안산 죽림정사 석교의 삼태극 문양
ⓒ 이완우
법당 앞 가람 마당으로 건너가는 길목에 놓인 이 석교가 연못에 놓였다. 널찍한 화강암 판석을 이어 붙여 만든 완만한 아치형의 돌다리였다.
다리 양옆을 지켜주는 난간의 끝인 엄지기둥에는 북처럼 둥근 머릿돌이 얹혀 있다. 그 둥근 돌의 측면에는 하늘, 땅, 사람(천·지·인)의 우주적 조화를 상징하는 '삼태극(三太極)'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장안산 죽림정사 용성기념관
ⓒ 이완우
정면 5칸 규모에 단아한 기와지붕을 얹은 용성기념관. 중앙의 꽃창살 출입문을 중심으로 양옆에는 백용성 조사의 진영(초상화)이 걸려 있어 방문객의 발길을 이끌었다.
용성교육관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웅장한 팔작지붕 건물이었다. 처마 아래와 공포 부분에 화려한 전통 단청이 채색되어 있으며, 건물 앞쪽으로는 계단과 함께 석조 조형물(해태상 등)이 세워져 있었다.
 장안산 죽림정사 용성교육관
ⓒ 이완우
 장안산 죽림정사 용성교육관 백용성 조사 일대기 벽화
ⓒ 이완우
용성교육관 외벽에는 백용성 조사의 생애를 담은 10여 편의 '일대기 벽화(조사 행적도)'가 펼쳐져 있었다. 그중 네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3.1 만세운동 민족대표 33인 벽화]
: 1919년 3월 1일, 백용성 조사는 일제강점기 3.1 만세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했다. 그림 속에는 독립을 주장하며, 일제 경찰들에게 결박되어 끌려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모진 탄압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조사의 평온한 표정에는 불교계의 항일 운동을 이끌었던 굳은 신념이 어려 있었다.

[만주 대각사 농장 벽화] : 백용성 조사는 1920년대, 만주 연길 명월촌과 봉녕촌에 대규모 농장을 설립하였다. 선농당을 세우고 대각사 농장을 개척하여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마련했다. 백용성 조사는 승려들도 땀 흘려 일하며 수행해야 한다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철학을 척박한 만주 땅에서 직접 실천했다. 농장을 통해 거둔 귀한 수확물들은 훗날 굶주린 동포들의 식량이 되었고, 만주 지역 독립군의 든든한 군자금으로 쓰였다.
 장안산 죽림정사 용성교육관 벽화
ⓒ 이완우
[찬불가 풍금 연주 벽화] : 백용성 조사는 1920년대 초반부터 풍금을 연주하며 어린이들에게 찬불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927년에는 직접 작사한 '왕생가', '권세가' 등의 찬불가 악보가 수록된 불교 의식집 <대각교의식>을 공식 출판하여 널리 보급했다. 불교의 대중화를 꿈꿨던 조사는 어려운 한문 불경 대신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우리말 찬불가를 직접 작사하며 포교에 힘썼다. 음악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은 물론 민족의 주체성까지 널리 알리고자 했던 선각자의 구체적 실천이었다.
[북청 금광 벽화] : 1913년부터 1916년까지, 함경도 북청 지역에서 금광을 직접 경영하며 험난한 자금 조달에 나섰다. 조사가 세속의 금광 사업에 뛰어든 것은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장안산 죽림정사 대웅보전
ⓒ 이완우
널찍한 화강암 돌계단을 층층이 올라서 대웅보전으로 향하였다. 이 장엄한 넓은 계단을 한 걸음씩 오르다 보면 세속의 번뇌를 잊을 듯하였다. 대웅보전은 정면 5칸 규모의 다포 양식 공포와 화사한 녹색 빛의 단청이 웅장한 장안산 계곡과 잘 어울렸다. 법당 문짝의 정교한 솟을꽃살문과 연꽃 궁판 조각들이 눈길을 끌었다.
 장안산 죽림정사 대웅보전 문짝의 꽃창살 솟을꽃살문
ⓒ 이완우
빗살 바탕에 꽃을 수놓은 '솟을꽃살문'에 눈길이 멈추었다. 문살의 교차점마다 연꽃과 모란 꽃송이가 피어났다. 꽃송이를 푸른 잎사귀들이 서로 이어주어 문짝 전체에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청, 적, 황, 백 등 화려한 단청 옷을 입은 꽃송이에서 꽃잎이 겹겹이 피어났다. 꽃잎의 부드러운 색감과 바림(채색을 한쪽은 진하게 하고 점점 엷게 하여 흐리게 하는 일)이 어우러진 전통 목공예의 화사한 꽃창살은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촘촘하게 엮인 문살 안쪽의 한지는 은은한 자연광을 끌어들여 법당을 아늑하게 품어주었다.
 장안산 죽림정사 대웅보전 문짝의 궁판
ⓒ 이완우
대웅보전의 문짝 아래쪽을 장식한 '궁판'에는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연꽃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푸른 물결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황금빛 연꽃 안에는 또 다른 작은 연꽃들이 겹겹이 피어났다. 중앙의 연꽃 좌우로 다채로운 색감의 연꽃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만다라가 되었다.
큰 연꽃잎 하나하나가 각자의 우주를 품고 만물이 서로 다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세계관을 기하학적인 '만다라'처럼 펼쳐낸 듯하였다. 발걸음을 멈추고 문짝 아래에 피어난 고요한 연꽃 우주를 오래도록 마음에 담고 있는데, 여름 매미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장안산 죽림정사 복원된 백용성 조사 생가
ⓒ 이완우
백용성 조사 생가에서 떠올린 독립운동사

대웅보전 뒤쪽의 장안산 자락에 백용성 조사의 복원된 생가가 있었다. 생가 바로 뒤편 산자락에서 짙푸른 대나무 숲이 바람에 일렁였다. 백용성 조사가 16세에 출가하기 전까지 집안에서 사용하던 본명은 백상규(白相奎)다. 승려로서의 법명은 진종(震鍾)이고, 법호(法號)는 용성(龍城)이다. 백용성 조사가 태어난 생가의 지명이 대나무 숲을 뜻하는 '죽림리(竹林里)'이고, 이곳에 같은 이름의 '죽림정사'가 세워졌다.

장수 죽림정사가 있는 전북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는 1864년(고종 1년)에는 전라도 남원도호부(남원부) 하번암면 죽림리였다. 백용성 조사의 법호인 '용성'은 남원부의 별호이기도 하다. '용성(龍城)'은 고려시대 역사서인 <고려사> 지리지에도 등장한다. 남원의 옛 읍지 이름 역시 <용성지(龍城誌)>일 정도로 '용성'은 남원 지역을 상징하는 옛 이름이다.

해방 후 귀국한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30여 명은 1945년 12월 12일 서울 종로의 대각사를 찾아 백용성 조사의 영전에 참배했다. 김구 선생은 용성 스님이 독립운동 자금을 계속 보내주어 광복에 크게 이바지하였고, 윤봉길 의사를 상하이로 보내 독립운동의 사표가 되게 하였음에 깊이 감사하고 추모했다고 한다.

윤봉길 의사는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 백용성 조사가 건립한 대각사에 머물렀다. 이곳에서 윤봉길 의사는 백용성 조사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교에 귀의하였고, 조사로부터 "나라에 목숨을 바쳐 충성하라"는 내용 등이 담긴 세속오계를 수여 받았다고 한다.

▲ 장안산 물길 계곡의 노랑물봉선과 개미ⓒ 이완우

장안산의 맑은 물길을 따라 싱그럽게 피어난 노랑물봉선에 개미 한 마리가 찾아 들었다. 산골짜기 자연 속에서 피어난 야생화와 그 향기와 꿀에 이끌려 찾아든 작은 생명의 몸짓이 노랗고 검은 보색으로 선명하게 어우러졌다.

백두대간에 인접한 장안산은 금남호남정맥의 마루금으로서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 된다. 죽림정사 옆을 흐르는 장안산 덕산계곡과 지지계곡의 물길은 섬진강의 상류로서 남원 요천으로 흐른다.

장안산 죽림정사를 떠나서 남원 요천으로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 19번 국도(요천로)를 타고 약 20km 이동하면 남원 광한루원에 도착한다. 남원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백용성 조사,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역사적 일화를 묵직하게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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