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당 계산대 앞에서 내가 꺼내든 것... 직원도 잠시 당황했다

김효숙 2026. 8. 1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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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성심당 창업주는 한국전쟁 당시 흥남부두에서 간신히 배에 올라 남쪽으로 내려왔다.

우리는 그중 한 군데 자리를 잡고 주섬주섬 용기를 꺼내 들었다. 비닐과 빵 봉투를 꺼내려던 직원들이 잠깐 당황한 눈빛을 보였지만 흔쾌히 빵을 용기에 담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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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친환경 생활] 비닐봉지 대신 용기에 빵을 담아왔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효숙 기자]

▲ 용기 가득한 빵 성심당에서 용기 내서 사온 빵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채웠다.
ⓒ 김효숙
"이번 여름휴가는 어디로 갈까?"

세상일은 자신이 다 해야 하는 줄 아는 남편은 주 4일 아니 주 5일 근무는커녕 일주일에 하루도 간신히 쉰다. 쉬는 날에도 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런 남편이 식탁에서 휴가 이야기를 꺼내자 온 식구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갈 준비로 바쁜 아이들과 시간을 맞추기는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다. 서로 날짜를 맞추다 보니 여행은커녕 하루를 같이 보내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동남아에서 시작된 우리의 계획은 일본과 중국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다시 제주도와 강원도로 길을 잃고 헤맸다. 나는 "관두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한 박자 쉬고 말을 꺼냈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날짜를 맞추다 지친 식구들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2차전이 시작되었다. '어디서 무얼 먹을까?' 요즘 인기 있는 요리사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유명 셰프들의 음식을 맛보려면 1년은 기다려야 했다. 입맛만 다시던 내 머릿속에 버스에서 만난 지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이는 이번 휴가길에 '빵의 성지'로 알려진 대전 성심당에 다녀왔다고 했다. 이 뜨거운 여름에 '오픈런'을 하겠다고 길게 늘어선 사람들 틈에 끼어 30분 넘게 기다렸지만 그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사람들이 지치지 않도록 양산을 빌려주고 또 늘어선 사람들 때문에 행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애쓰는 직원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성심당 사람들

성심당 빵 이야기는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들었다. 하지만 밀가루 음식보다 밥을 좋아하는 내게 빵집 이야기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출장길에 동료가 대전 KTX 역에서 튀김 소보로를 집을 때도 나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빵이 거기서 거기지'라는 게 내 지론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겨울 시사 프로그램 <손석희의 질문들>에 나온 유흥식 추기경 이야기는 내 마음을 흔들었다.
▲ 성심당 사람들과 유흥식 추기경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소개한 성심당과 유흥식 추기경의 인연
ⓒ mbc
성심당 창업주는 한국전쟁 당시 흥남부두에서 간신히 배에 올라 남쪽으로 내려왔다. 대전에 자리 잡은 그이는 한 신부님에게 밀가루를 얻어 빵을 만들어 팔았다. 배고픈 이들이 많았던 시절이기에 빵을 크게 만들었다. 당일 만든 빵은 그날 다 소비하고 남으면 주변에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었다. 명성을 얻고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서울에 지점을 내라는 유혹이 빗발쳤다. 하지만 돈보다는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대전에 뿌리내렸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성심당 빵 이야기는 바티칸에도 전해졌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시절 007 작전 수행하듯 아침마다 KTX로 갓 구운 빵을 전달했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교황이 드셨다는 빵들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인기 메뉴다.

우리도 오픈런!

지난겨울 딸아이가 친구들과 대전에 다녀오면서 성심당 빵을 한 아름 사 왔다. 봉지가 터지도록 가득 담긴 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남겨서 버리는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이것도 많이 참은 거야."

딸의 말대로 빵은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빵을 다 먹고는 아쉬워서 봉지를 탈탈 털기도 했다.

딸이 사 온 빵은 다 맛있었지만, 비닐봉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엔 '용기' 가득하게 성심당 순례를 다녀오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커다란 밀폐 용기를 준비하고 더운 날씨를 대비해 아이스박스도 챙겼다.

출근족과 엉키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로 올빼미족인 아이들이 새벽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기적처럼 5시 반에 집을 나섰다. 그 시간에도 도로에는 차가 가득했다. 대한민국은 역시 '바빠 공화국'이다. 오늘 음악 담당은 딸이다. 90년대부터 최신의 인기곡까지 아우르는 노래 모음집을 펼쳐 놓았다. 잔뜩 긴장했던 남편이 자신이 즐겨듣던 옛노래가 나오자, 콧노래를 흥얼댔다. 다들 마음이 가벼워졌다. 저마다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니 대전 요금소를 지났다. 8시가 가까웠다.

카페가 있는 성심당 문화원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는데, 길거리에는 벌써 빵 냄새가 구수하게 퍼져있었다. 사람들은 손에 손에 빵 봉투를 들고 다녔다. 처음 가는 곳이었지만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지도 앱을 켜지 않아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빵의 성지에서 용기를 내밀었더니

"오, 아직 줄을 서지 않았네!"

가벼운 마음으로 본점에 들어선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가게 안에는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쟁반 위에 담긴 빵들이 사라지자마자 직원들이 채워놓기 바빴다. 난생처음 빵집에서 사람들에 휩쓸려 다녔다. 잘못하면 인파에 휘말려 입구로 밀려날 판이었다. 우리는 저마다 쟁반을 챙겨 들고 마음에 드는 빵을 골라 잽싸게 담았다.

아들은 성심당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튀김 소보로, 딸은 지난번 먹지 못해 아쉬웠다며 찹쌀 주먹밥을 담았다. 나는 바삭하고 고소한 패스 추리, 남편은 달콤한 크림빵과 무화과 깜빠뉴를 골랐다. 쟁반을 가득 채웠는데도 72시간 숙성했다는 초대형 호밀 사워브레드에 자꾸 눈길이 갔다. 남편도 나처럼 그 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또 언제 오랴 싶어서 눈을 질끈 감고 또 다른 쟁반을 채웠다.

"그래 좋아, 당분간 아침마다 빵이다!"

대형 빵집답게 계산대도 많았다. 우리는 그중 한 군데 자리를 잡고 주섬주섬 용기를 꺼내 들었다. 비닐과 빵 봉투를 꺼내려던 직원들이 잠깐 당황한 눈빛을 보였지만 흔쾌히 빵을 용기에 담아주었다. 모양과 크기, 재료가 다른 빵을 처음 보는 용기에 담으려니 난감했을 텐데, 차분하게 응대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빵집을 나오니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거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 사람들 틈에서 미어캣처럼 고개를 쑥 내밀고 차례를 기다리며 무더위를 견디고 있었으리라. 우리는 성심당 문화원 카페로 갔다. 빵을 사 들고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서 오세요!" 하며 직원들이 웃으며 반겼다. 카페 입구 선반에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환경을 위해 깨끗한 쇼핑백 모아 주세요"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빵 봉투를 보면서, '종이 가방 대신 장바구니를 쓰면 어떨까?' 속으로 되뇌었던 내 모습이 떠올라 흐뭇해졌다.
▲ 성심당의 쇼핑백 재사용 카페안에 마련된 쇼핑백 재사용 독려 선반
ⓒ 김효숙
우리는 저마다 취향대로 커피, 홍차, 셰이크를 주문하고 카페를 구경했다. 성심당을 상징하는 배지와 인형, 수건, 책자가 선반마다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살까 말까 고민하는데 음료를 찾아가라는 신호가 왔다. 우리는 빵이 담긴 용기를 자랑스레 꺼내놓고 찬찬히 빵 냄새를 맡았다. 전쟁터 같은 빵집에서 이 정도 노획물을 건졌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새벽 단잠을 마다하고 오픈런에 성공한 우리는 잔을 부딪치며 자축했다. 남편은 그 복잡한 와중에 매의 눈으로 빵을 골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들은 시그니처인 튀김 소보로를 드디어 먹을 수 있다며 헤벌쭉 웃었다. 나는 속이 약한 엄마를 위해 참치 주먹밥을 골랐다는 딸의 말에 물개 박수를 보냈다. 우리는 입가에 크림이 묻는 줄도 모르고 깔깔거리며 아침을 즐겼다.

차를 다 마시고 직원에게 물을 달라고 하니 급수대를 가리켰다. 급수대에는 커다란 물통과 스테인리스 컵이 쌓여 있었다. 갈수록 종이컵이 늘어나는 시대에 귀찮음을 마다하고 스테인리스 컵을 사용하는 마음이 고마웠다.
▲ 성심당급수대 스테인리스 컵이 마련된 성심당문화원 카페 급수대
ⓒ 김효숙
성심당은 그저 대전의 유명한 빵집이 아니었다. '빵의 성지'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돈만 벌기보다 함께 나누며 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성심당 사람들의 모습이 용기를 가져간 내 마음과 닿아 있는 것 같아 울컥했다. 배만 부른 게 아니라 마음도 든든하게 채워주니 '바로 이곳이 성지구나' 싶었다. 이곳에 온 이들이 그 깊은 마음을 새겨 널리 퍼뜨려 주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카카오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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