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레이니 전 美대사 별세… 감리교 목사로 한반도 평화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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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성사시켜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튼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국대사가 13일(현지시간) 별세했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미국의 대북 군사 타격이 거론되던 상황에서, 그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설득하고 에모리대 총장 시절 친분을 쌓은 카터 전 대통령을 대북 특사로 파견할 것을 강력히 권고해 북미 대화의 물꼬를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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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세계 감리교 평화상 수상… “화평케 하는 자로 한반도 위해 기도하자” 당부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성사시켜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튼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국대사가 13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8세. 감리교 목사이자 한국 선교사 출신인 고인은 평생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에 기여한 ‘한국의 벗’이었다.
14일 미국 에모리대에 따르면 레이니 전 대사는 전날 조지아주 애틀랜타 자택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1927년 미 아칸소주에서 태어난 그는 예일대 재학 중이던 1947년 미 육군 방첩대(CIC) 요원으로 파병되며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군 복무 후 미국으로 돌아가 신학을 전공하고 미국연합감리회(UMC)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1959년 선교사 파송을 받아 가족과 함께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고인은 선교사 시절 연세대 신학과에서 기독교 윤리학을 강의하며 청년들의 신앙 훈련에 힘썼다. 기독 학생 동아리 ‘아가페’를 조직하고,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을 결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강원용, 문익환, 박형규 목사 등 국내 교계 지도자들으르 비롯해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민주화 인사들과도 교류를 나눴다.

1977년부터 16년간 미 에모리대 총장을 역임한 그는 1993년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했다. 당시 1994년 한반도를 휩쓴 1차 북핵 위기의 평화적 타결을 성사해냈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미국의 대북 군사 타격이 거론되던 상황에서, 그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설득하고 에모리대 총장 시절 친분을 쌓은 카터 전 대통령을 대북 특사로 파견할 것을 강력히 권고해 북미 대화의 물꼬를 텄다.
대사직에서 물러난 직후인 1997년 7월에도 미 대통령 대북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북한 지도부에 4자회담의 유용성을 설득하고 대북 식량 지원 등을 논의하며 한반도 정세 안정에 기여했다.
한반도 평화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고인은 2019년 세계감리교협의회(WMC)가 수여하는 ‘세계 감리교 평화상’을 받았다. 수상자는 아시아인 최초 WMC 회장인 박종천 목사였다. 당시 수상식에서 고인은 “6·25전쟁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큰 상처를 남겼고, 다시는 되풀이돼선 안 될 일”이라며 마태복음 5장의 구절을 인용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모두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일하고 기도하자”고 당부했다.
고인의 추모식은 오는 21일 애틀랜타에서 열린다. 카터 센터는 성명을 내고 “레이니 전 대사는 생전 카터 전 대통령과 함께 평화 증진, 민주주의 수호, 인권 향상에 기여했다”며 애도를 표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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