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입고 웃던 할머니들... 희움이 남긴 건 증언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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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안 계시면 이 운동이 끝날 것이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니요. 우리는 증언의 증언자라고 불러요. 이 희움 역사관에 다녀간 사람들, 그리고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한 대구시민모임에 같이 한 사람들,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어요. 기억을 잇는 사람들이에요. 이곳, 희움은 그 인연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공간이에요."
"'위안소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정책이었고 어디에서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대구·경북의 피해자들은 어땠는가'를 증언에서 풀어내는 거예요. 증언을 하셨던 문옥주 할머니도 미군이 작성한 자료에 포로로 잡혀 있었던 것들이 다 밝혀졌거든요."
피해자들이 증언할 수 없었던 시대에서 피해 당사자뿐만이 아닌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과거를 드러낼 수 있었던 것처럼 이 문제 해결에 나서 같이 해왔던 피해자와 그걸 지원했던 시민들, 그리고 국경을 넘어 일본에서 자국이 가해국이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했던 일본 시민들까지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던 이야기를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담아내고 있어요.
희움이 그 기억이 다음 사람에게 닿을 수 있도록 피해자들의 삶과 그들과 함께한 시간을 기록하는 역사관으로 시민들의 관심 속의 대구에 오래도록 자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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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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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얼굴의 계단'에서 이령경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사가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
| ⓒ 김은지 |
희망을 꽃피움
2015년, 지금으로부터 약 11년 전 시민들의 힘으로 '희움' 역사관이 문을 열었다. 시민의 소중한 마음과 심달연 할머니, 김순악 할머니의 손에서 탄생한 희망의 꽃, 압화 작품은 브랜드가 되어 희움 역사관 개관에 힘을 보탰다.
개관에 약 13억 원이 소요됐으며 12억 원은 시민에 의해 모금됐다. 그러나 11년이 지난 현재 희움 역사관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운영난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희움은 무엇을 기록하고 있으며 피해자가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8월 14일 위안부 기림의 날을 앞두고 희움 역사관을 찾았다.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령경 이사를 만나 역사관의 의미와 시민모임이 피해자들과 함께 만들어온 시간, 그 인연을 기록하고 이어가는 일의 중요성을 들었다.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희움 역사관을 건립하고 운영해 온 주체로 피해자들의 곁을 지키며 역사관에 그 시간과 인연을 기록해 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을 해오면서 우리가 이렇게 만나고 인연을 가졌던 이분들의 얘기를 담을 수 있는, 같이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게 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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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만든 사람들. |
| ⓒ 김은지 |
희움은 위안소를 재현하는 방식보다 피해자들의 증언과 이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보여준다. 역사 속 비극으로 존재했던 사건을 대구·경북 피해자의 목소리와 구체적인 증언을 통해 바라보고 위안소 생활뿐만 아니라 그 이후 피해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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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관 내부. |
| ⓒ 김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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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내부 모습. |
| ⓒ 김은지 |
이 이사는 "왜 이것밖에 듣지 못했는가. 신원을 밝힐 수 없었는가"라며 증언으로 남겨진 것뿐만 아니라 말하지 못했던 이유까지 지역의 역사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일본군 '위안부' 증언집을 5권 발간했다. 그동안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들어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피해자들의 곁에 머물며 일상을 함께했기에 가능했던 성과이기도 했다.
'가족이 되는 것'에서 시작된 기록
시민모임의 활동은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피해자와 일상을 함께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저희에게 남아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분노하고 우시는 모습이 아니에요. 일상 속의 할머니 모습이에요. 문제해결 운동도 있지만 이분들의 가족이 되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상적인 케어, 병원, 장례식까지도 이런 부분들을 전부 다 해왔어요."
대구시민모임은 할머니들과 꾸준히 교류했고, 피해자들끼리도 함께할 기회를 만들었다. 생일을 함께 보내고 노래를 부르고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 이사는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얼굴의 계단'에서 이러한 순간들이 생생히 기록돼 있다고 설명했다.
"할머니들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죠? 저희는 그때 준비하면서도 이해 못 했었어요. 그만큼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던 게 할머니들의 꿈이었던 거예요. 가족이 되어 같이 상쾌하고 보살피는 게 이런 거예요. 간병을 하고 한때를 보내기도 하지만 같이 생신을 보내기도, 노래 부르기도 하고 제주도 여행을 가기도 하고요."
시민모임과 함께한 시간은 피해자들에게 사회로 다시 발을 내딛는 시간이기도 했다. 무서웠던 사회에 발을 내딛고 함께 살아가는 과정은 치유로 이어졌다. 그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피해자와 만난 시민들의 삶 역시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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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의 계단’ 벽면에 전시된 사진. |
| ⓒ 김은지 |
"누군가를 그렇게 바꿔 나갈 수 있는 만남과 시간이 시민모임을 통해 있었고 희움은 그걸 보전하고 기록하고 전달하는 역할들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운동해 와야지만 가능한 거죠.지역 역사관으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고요.
피해자들이 증언할 수 없었던 시대에서 피해 당사자뿐만이 아닌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과거를 드러낼 수 있었던 것처럼 이 문제 해결에 나서 같이 해왔던 피해자와 그걸 지원했던 시민들, 그리고 국경을 넘어 일본에서 자국이 가해국이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했던 일본 시민들까지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던 이야기를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담아내고 있어요. 그 과정을 배우는 것이 교육이라고 보고 있어요."
일본군 '위안부' 여성인권 운동이 시작된 지 20여 년이 지났다. 피해자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러나 이 이사는 피해자의 부재가 곧 운동의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저는 증언의 증언자라고 이야기해요. 얼마나 많은 이들을 만나고 인연을 만들어왔을까요. 다음 세대를 잇는 이들은 우리를 통해서 다시 인식해요. 할머니를 만나서 삶이 바뀌었던 그 사람들이 할머니에 대한 증언을 하는 거예요. 증언을 들은 사람이 증언자가 되는 거죠. 그래서 피해자가 남아계시지 않는 상황이 오더라도 끝나지 않는 거예요."
피해자의 증언을 들은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에서 증언은 이어진다. 희움이 기록하는 것은 피해자의 증언만이 아니라 그 증언을 듣고 움직였던 시민들의 인연과 변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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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내부 모습. |
| ⓒ 김은지 |
"그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관한 많은 사안이 악마 사냥이었다는 것이 재판에서 드러났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 자체에 대해 '피해자들을 거의 이용했다'라는 식의 왜곡된 이미지들이 생겨났죠.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았어요. 그 긴 시간 동안 운동에 같이 해왔던 사람들이 남긴 인연, 많은 기적 같은 일들이 부정당하면서 시민들도 많이 떠났어요. 정부, 지자체에서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주지도 않았던 상황들이 겹치면서 지역에서 계속 이어가는 게 쉽지 않아요."
이 같은 영향은 관람객 감소로 이어졌다. 기존에는 학교 단체 관람이 많았지만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학교 측 단체 관람도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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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전경. |
| ⓒ 김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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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그대가 남긴 봄' 전시 |
| ⓒ 김은지 |
"정부, 지자체가 희움을 교육 현장으로서 지원할 방안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순회 전시는 물론 학교를 찾아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이요. 대구근대박물관은 대구사를 다루는 거잖아요. 그런데 대구시에 이분들이 거쳐 갔던 역사는 없어요. 대구시에 문화해설사가 있는 것처럼 대구시에서 위안부 문제 역사도 지속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체계를 지원해 줬으면 좋겠어요"
이 이사가 강조한 '증언의 증언자'에는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다. 피해자를 직접 만났던 사람도, 희움에서 이야기를 접한 사람도, 그 역사를 기억하고 관심을 갖게 된 사람도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뒤 그 의미를 잊지 않고 이어가는 것에서부터 증언은 다시 시작된다.
피해자가 떠난 뒤에도 그들의 삶과 목소리가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희움이 그 기억이 다음 사람에게 닿을 수 있도록 피해자들의 삶과 그들과 함께한 시간을 기록하는 역사관으로 시민들의 관심 속의 대구에 오래도록 자리하길 바란다.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홈페이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립니다.이 글이 읽는 이들의 마음에 닿기를 바랍니다. 증언의 증언자가 되어주세요. 대구은행 505-10-144298-1 (사)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후원 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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