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 대신 한국 왔다”…멕시코서 온 독립운동가 증손녀 소원

“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고국에서 한국인으로 인정받길 바랐던 듯해요.”
멕시코에서 온 독립유공자 후손 다이아나 라우라 안 레혼(31)은 빛바랜 흑백사진을 어루만지며 5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사진 속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안 레혼의 조부 안재명(1909~1972ㆍ추정) 선생은 증조부 안순필(1868~1947) 선생과 함께 일제강점기 쿠바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광복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타지에 묻혔다.
안 레혼은 “증조부가 뒤늦게 할아버지의 출생신고를 하면서 ‘우리는 한국 출신이고 아들을 한국인으로 등록하고 싶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들었다”며 “결국 돌아오지 못한 선조들을 대신해 한국 땅을 밟게 돼 뭉클하다”고 말했다. 국가보훈부의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행사 참석차 방한한 안 레혼을 지난 11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만났다.

안 레혼은 증조부와 조부를 생전에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알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어린 시절 친척들에게 사진과 함께 전해 들은 정도였다. 이후 대학생 때 멕시코 메리다의 한국이민사박물관을 방문하고, 2023년 독립운동가를 조사하던 고(故) 김재기 전남대 교수를 만나면서 증조부 일가의 독립운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고 한다.
안순필 선생은 1905년 이민 브로커의 광고를 보고 조선을 떠나 멕시코로 향했다. 1921년 쿠바 아바나로 이주해 용설란 농장에서 일했다. 사실상 강제노역과 다름없는 고된 생활 속에서도 고국에 대한 마음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안 선생은 대한인국민회 쿠바 아바나지방회장으로 활동하며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냈다. 아바나의 중국은행을 통해 홍콩으로 송금한 뒤 중국 본토의 임시정부로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둘째 아들 안재명 선생도 아바나지방회 소속으로 1935년부터 1941년까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안 레혼은 “증조부가 세상을 떠난 뒤 가족들은 멕시코와 미국 등지로 흩어졌고 끝내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며 “힘든 현실에 굴하지 않고 고국에 힘을 보탰다는 데 경외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보훈부는 미주 지역 독립운동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안 선생 일가의 기록을 발굴했다. 딸 안옥희 선생이 2021년 대통령표창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안순필 선생이 2023년 건국포장을, 부인 김원경 여사와 안재명 선생 등이 지난해 대통령표창을 받으면서 일가족 8명이 모두 독립유공자로 인정됐다. 2024년 한국과 쿠바가 수교한 뒤 현지 기록 발굴이 수월해졌다는 게 보훈부의 설명이다. 안 레혼은 “증조부와 조부가 자신들이 한국사의 일원이 됐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기뻐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레혼은 “증조부와 조부의 유해가 한국으로 봉환되기를 바란다”는 소망도 밝혔다. 안순필 선생의 묘는 쿠바 아바나에, 안재명 선생은 멕시코 체투말 묘지에 안장돼 있다. 한때 안순필 선생의 묘비가 소실돼 지난해 쿠바한인회가 기금을 모아 다시 세우기도 했다. 안 레혼은 “할아버지들의 활동은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며 “생전에 이루지 못한 꿈이 늦게나마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보훈부는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김구 선생의 부인 최준례 여사(애족장) 등 283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이날 밝혔다. 최 여사는 김구 선생이 투옥된 뒤 4년간 옥바라지를 하는 한편 안신여학교 교사로서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20년 중국 상해로 망명한 뒤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인 남편의 활동을 지원해 일본으로부터 ‘불온한 조선인’으로 지목돼 감시를 받기도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총장을 지낸 김규식 선생의 처조카 김덕린 선생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배후에서 지원하고 1930년대 다수의 항일영화에 출연하는 등 한ㆍ중 독립운동 연대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됐다. 1919년 충남 천안 직산 광산에서 광부로 일하던 중 일제에 맞선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순국한 김영호 선생(건국훈장 애국장) 등도 명단에 포함됐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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