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교회 곁을 지킨 5년…“평신도가 할 일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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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만(65) 인천함께가는교회 안수집사는 5년 동안 아내 고정심 권사와 농촌교회 60여곳을 방문했다. 지난 10일 인천 부평구 함께가는교회(우관영 목사)에서 만난 조 집사는 "농촌교회는 찾으며 오히려 우리 부부의 신앙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목회자가 직접 돌보며 생활하는 모습이 마음에 남아 교회를 방문해 음식을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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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만(65) 인천함께가는교회 안수집사는 5년 동안 아내 고정심 권사와 농촌교회 60여곳을 방문했다.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한 목회자만 47명이다. 지난 10일 인천 부평구 함께가는교회(우관영 목사)에서 만난 조 집사는 “농촌교회는 찾으며 오히려 우리 부부의 신앙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부부가 처음 찾아간 곳은 기독교방송에서 접한 전북 진안 옥토교회(최인석 목사)였다.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목회자가 직접 돌보며 생활하는 모습이 마음에 남아 교회를 방문해 음식을 대접했다. 당시 비염 때문에 귀촌지를 알아보러 전국을 다니던 부부는 이 날 이후 섬길 작은 교회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발걸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목회를 포기하려던 목회자가 있는 교회에는 3년 가까이 오가며 식탁을 차렸다. 이를 본 성도들도 교회 시설을 고치고 필요한 물품을 마련하는 데 나섰고 15명 남짓이던 예배 인원은 40명을 넘어섰다. 다른 교회에서는 갈등으로 대화가 끊긴 목회자와 성도들을 위해 식사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전국의 적지 않은 교회를 다니면서 그의 관심은 ‘한 끼를 어떻게 대접할까’에서 ‘작은 교회가 어떻게 살아갈까’로 넓어졌다. 농촌교회 상당수가 70~80대 성도 중심인 현실을 본 그는 귀촌교육 200시간을 이수한 경험을 살려 도시의 귀촌 희망자가 농촌교회를 거점으로 정착하는 방안도 목회자들에게 제안했다.

그에게 신앙이 처음부터 삶의 중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아내가 18년간 전도했지만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던 조 집사는 지인의 채권 문제에 휘말려 경찰의 눈을 피해 다녔다. 1999년 말 아내를 따라 처음 교회에 나갔지만 당시엔 “붙잡히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수준이었다. 검거 된 뒤 수감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출소한 뒤 나를 위한 신앙에서 나누는 신앙으로 삶이 바뀌었다.
그 뒤로 하나님께 무엇을 받을지보다 자신이 왜 복음을 알게 됐는지를 묻게 됐다. 조 집사는 “아직 내 생명을 이어주시는 것은 나를 통해 하실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부부의 섬김을 본 한 성도가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이 우리 같은 사람도 사용해 영혼을 깨우시는 걸 보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오랜 심장기형 수술을 여섯 차례나 받은 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은혜”라는 감사가 더 깊어졌다. 자신이 가진 물질도 ‘내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며 “하나님이 필요할 만큼 주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섬기고 나눈다”고 했다.
지난 5월에는 인천 부평구에 사비 1억원을 들여 함께가는교회 예배 공간을 마련했다. 말레이시아에서 10여년간 선교사로 사역한 뒤 귀국해 국내 목회지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던 우관영 목사도 담임목사로 청빙했다.
조 집사는 평신도도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봤다. “성도가 있어야 목회자도 있는 것 아닙니까. 평신도가 깨어나야 교회가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인천=글·사진 김연우 기자 y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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