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와중에 중동 바다 삼킨 ‘검은 재앙’…보름만에 100배 불었다
이란전쟁이 6개월째 이어지면서 중동 바다까지 고통받고 있다. 오만 앞바다에서는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띠가 보름여 만에 일부 위성사진 추정치 기준 최대 100배로 불어나 2000㎢를 넘어섰다. 전쟁과 제재가 얽히면서 방제 작업마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2일(현지시간) 비영리 환경감시단체 스카이트루스(SkyTruth)가 최신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오만 앞바다에서 기름띠가 2000㎢ 이상을 뒤덮은 것으로 추산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AP통신은 8월 초 위성사진 분석을 토대로 불과 일주일 전 기름띠 면적이 약 20㎢였다고 전했다. 분석기관과 관측 시점이 다른 수치를 단순 비교하면 최대 100배가량 불어난 규모다. 실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도 “(피해 면적이) 7월 말 약 45㎢에서 8월 초 150㎢, 4~5일에는 600㎢로 빠르게 확대됐다”고 밝혔다.
기름이 흘러나온 곳은, 러시아산 원유 약 80만 배럴을 싣고 인도로 향하던 25년 된 유조선 ‘캐롤라인 베젠지(Caroline Bezengi)’다. 러시아산 원유를 운송하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 소속으로, 지난 6월 오만 앞바다 키블리야섬 주변에서 좌초했다. 해운 전문매체 트레이드윈즈에 따르면 당시 선원들은 무선통신으로 폭탄 공격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보안 전문가들은 흡착기뢰 공격 가능성을 제기한 상태다. 우크라이나 측 공작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공격 주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 배가 지나온 항로에는 두 전쟁이 겹쳐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의 주요 거점인 흑해 노보로시스크에서 출항해 수에즈운하를 거쳐 친이란 후티의 선박 공격이 이어지는 예멘 앞바다를 지났다. 로이터가 캐롤라인 베젠지의 항로를 두고 “두 개의 서로 다른 전쟁을 지나고 있었다”고 표현한 이유다.
기름은 이미 오만 해안까지 밀려왔다. 오만 환경당국은 라스 마드라카와 마시라섬 일대 등 최대 40㎞의 해안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인근 해양 자연보호구역에는 아라비아해 혹등고래와 소코트라가마우지 등이 서식한다. 선체가 계속 파손돼 원유가 모두 유출되면 4000만~5000만 갤런에 달해 1989년 미국 알래스카의 엑손 발데즈 원유 유출 사고와 맞먹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사고 수습도 쉽지 않다.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Funds)은 “(이번 사고가) 단순 해난사고가 아닌 ‘전쟁 행위(act of war)’로 취급돼 방제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로이터에 밝혔다. 해당 선박이 서방의 공인 보험사에 가입돼 있지 않아 “최악의 상황을 막을 적절한 대응책이 없다”는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중동 해역의 기름 유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 사우스플로리다대(USF) 연구진에 따르면 이란전쟁이 시작된 이후 지난 3월 페르시아만의 기름 오염 면적은 전년 동월의 약 4배로 늘었다. 지난 3월 6일 미군 공격을 받은 이란 드론모함 ‘샤히드 바게리’에서 흘러나온 중유가 호르무즈해협 인근 하라 생물권보전지역을 위협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철새와 멸종위기 거북 등이 서식하는 대규모 맹그로브 숲이다.

바다가 회복할 틈도 없이 전쟁은 장기전 양상이다. 로이터는 12일 이란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6월 마련된 임시 평화 합의를 되살리기 위한 미·이란 협상에서 전혀 진전이 없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재개방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이란은 미국이 항구 봉쇄 해제와 동결자산 반환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미국이 호르무즈해협을 “완전히 통제(total control)”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하루 통항 선박은 14척으로, 전쟁 전 130척 이상의 약 10분의 1에 그쳤다.
전쟁이 길어지자 미국 정부는 중동 외교공관의 장기 축소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CNN은 이날 “국무부가 중동 지역 대사관들에 소수 인력으로 운영을 지속할 계획을 마련하도록 요청했다”고 전했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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