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100개 준비하라, 하나는 내 것” 中 ‘철혈재상’ 주룽지 별세
중국의 3세대 지도자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성사시켰던 철혈재상 주룽지(朱鎔基) 전 국무원 총리가 12일 베이징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98세.

주룽지 총리는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역경을 이기고 14억 중국인의 사랑을 받는 국가지도자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1928년 후난성 창사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그는 10세 때 모친마저 사망, 백부의 집에서 자랐다. 유년 시절 『수호지(水滸誌)』를 좋아해 등장인물 108명의 이름과 호를 모두 외울 정도로 의협심이 강했다.
1947년 칭화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으며, 공산당 산하의 신민주주의 청년연맹에 가입한 뒤 1949년 공산당에 입당했다고 관영 신화사는 전했다. 1957년 반우파투쟁 당시 우파로 몰려 당적이 박탈당했으며 문화대혁명 때는 5년간 농촌의 ‘5·7 간부학교’로 하방돼 노동하는 등 정치적 시련을 겪었다.
문혁이 끝난 뒤 복권에 성공했으며, 1985년 자오쯔양 총리의 의뢰로 덩샤오핑에게 경제 문제를 보고하며 덩의 인정을 받았다. 이후 1987년에는 상하이 시장이 됐으며,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군을 투입하지 않고 TV 연설로 현지 학생들을 자제시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1년 국무원 부총리로 승진해 1·3·5 개혁을 추진했다. 경제성장 확보가 1이요, 국유기업·금융체제·정부기구 정상화가 3이며, 식량유통·투자융자·부동산제도·의료제도·재정세제 개혁이 5였다. 특히 ‘삼각부채’로 불리던 고질적인 국영기업간 상호 부채 문제를 해결했다. 1993년에는 중국인민은행 총재를 겸임하며 경제개혁에 착수, 20% 수준이던 인플레이션을 3%대로 끌어내렸다.
이 당시 그의 거시경제 정책에 반발하는 지방 제후에게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 99개는 탐관의 것이고, 한 개는 내 것”이라며 비장하게 개혁의 칼을 휘둘렀다. 1998년 3월에는 저우언라이·화궈펑·자오쯔양·리펑에 이어 중국 제5대 총리에 올라 국유기업·금융·정부기구의 3대 개혁을 추진했다.

주 총리는 2000년 10월 본지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남북한의 노력이 종국엔 평화 통일에 이르길 진심으로 바란다”며 “중국 정부는 남북한의 노력을 성심성의껏 지지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한 다 할 것”이라고 한반도 통일을 지지했다. 이어, 2001년 총리 기자회견에서는 은퇴 후 계획을 묻는 본지 질의에 “온 힘을 다 바쳐 죽는 날까지 나랏일에 힘쓰겠다(鞠躬盡瘁 死而後已·국궁진췌 사이후이)”고 대답했다. 제갈량의 출사표를 인용한 그의 여덟자 답변은 친민(親民)총리의 어록으로 지금도 인용된다.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와 엄격한 일처리로 ‘포청천’ ‘경제 차르’ 등으로 불렸다. 퇴임 후에는 전통악기 얼후(二胡) 연주와 경극에 심취했다. 2017년 19차 당 대회에 참석해선 정치 보고를 마친 시진핑 주석의 인사에 박수를 치지 않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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