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다이브] 레이저 대신 마이크로LED…AI 데이터센터 ‘빛의 길’ 바뀐다

고성현 기자 2026. 8.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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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고성현기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연산 성능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이를 뒷받침할 데이터 이동 기술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AI 가속기 자체의 성능뿐 아니라 칩과 칩, 보드와 보드, 서버와 서버 사이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주고받느냐가 AI 인프라 성능을 좌우하기 시작하면서죠.

반도체와 서버 사이에서 데이터를 이동시키는 수단은 크게 전기 신호와 광신호로 나뉩니다. 전기 신호는 구리 배선을 통해 데이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구조가 단순하고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아 칩과 보드 내부 등 짧은 거리의 연결에 폭넓게 활용돼 왔죠. 반면 광통신은 전기 신호를 빛으로 변환해 광섬유를 통해 전달하는 만큼 먼 거리에서도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보내는 데 유리합니다.

이 때문에 광통신은 전통적으로 통신사업자의 백본망이나 해저케이블처럼 수십km에서 수천km에 이르는 장거리 통신망을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데이터센터에서도 센터 간 연결이나 네트워크 스위치, 서버 랙과 랙 사이처럼 상대적으로 먼 구간에서는 광통신이 널리 활용돼 왔습니다. 반대로 하나의 서버나 보드 안에서는 짧은 거리를 연결하면 됐던 만큼 구리 기반 전기 배선이 주로 활용됐죠.

AI 시대에는 이 경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GPU와 AI 가속기의 데이터 처리량이 급증하면서 수cm에서 수m에 불과한 짧은 거리에서도 기존 전기 배선이 감당해야 할 데이터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전기 신호는 속도가 높아질수록 신호 손실과 소비전력이 증가하고 이를 보정하기 위한 회로도 복잡해집니다. 과거에는 데이터센터 바깥이나 랙 사이에서 주로 활용했던 '빛의 길'을 이제 서버와 보드, 궁극적으로는 반도체 가까이까지 끌어와야 할 필요성이 커진 셈입니다.

이 과정에서 주목받는 기술이 코패키지드옵틱스(CPO: Co-Packaged Optics)입니다. 기존 데이터센터에서는 스위치 반도체에서 나온 전기 신호가 인쇄회로기판(PCB)을 거쳐 광트랜시버로 이동한 뒤 광신호로 변환됩니다. CPO는 광신호를 만드는 광엔진을 스위치 반도체 가까이에 배치해 이 전기 신호의 이동 거리를 최대한 줄이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기존에는 반도체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전기로 이동한 뒤 빛으로 바꿨다면, CPO는 빛으로 바꾸는 지점을 반도체 바로 옆까지 당기는 기술입니다. 새로운 광통신 원리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 광통신 기술을 반도체 패키징 영역으로 끌어들여 AI 시대의 데이터 이동량에 대응하는 구조적 변화에 가깝습니다.

통상 광통신의 광원으로는 레이저가 활용됩니다. 레이저는 빠른 속도로 빛을 켜고 끌 수 있어 하나의 광채널에서도 높은 데이터 전송속도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죠. 대신 여러 개의 병렬 전기 신호를 소수의 초고속 채널로 묶어 전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데이터를 직렬화하고 다시 병렬화하는 서데스(SerDes)와 디지털신호처리장치(DSP) 등이 활용됩니다.

이는 여러 차선에서 동시에 달리던 차량을 몇 개의 초고속 차선으로 모아 한 줄로 빠르게 보내는 것과도 유사합니다. 광원 하나가 워낙 빠른 만큼 적은 수의 레이저만으로도 높은 대역폭을 구현할 수 있지만, 데이터 속도가 높아질수록 이를 직렬화하고 처리하는 회로의 전력 소모와 설계 난도 역시 함께 높아지겠죠. 이처럼 고속 직렬화와 신호처리에 필요한 전력 부담은 기존 레이저 기반 광링크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힙니다.

AI 인프라에서 마이크로LED가 새로운 광원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마이크로LED는 개별 소자의 동작 속도만 놓고 보면 레이저보다 느리지만, 수㎛ 수준까지 크기를 줄일 수 있어 하나의 면적에 수백개의 광원을 동시에 배치할 수 있습니다.

발상의 방향도 기존 레이저와 정반대입니다. 몇개의 광원을 극도로 빠르게 동작시키는 대신, 상대적으로 느린 광원을 수백개 배치해 병렬로 데이터를 보내는 방식입니다. 이른바 '와이드 앤 슬로우(Wide-and-Slow)'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마이크로LED 채널이 2Gbps 속도를 낸다면 400개를 병렬로 구성해 총 800Gbps의 대역폭을 확보하는 식입니다. 병렬로 들어온 전기 신호를 소수의 초고속 신호로 직렬화할 필요가 줄어드는 만큼 고속 SerDes와 DSP가 담당하던 처리 과정도 단순화할 여지가 생기죠. AI 데이터센터에서 중요도가 커진 전력 효율 측면에서 마이크로LED가 관심을 받는 이유입니다.

마이크로LED는 크기가 작아질수록 광통신용으로 활용하기에도 유리합니다. LED 내부에는 전기 신호가 바뀔 때마다 일정량의 전하가 쌓였다 빠지는 특성이 있는데, 소자가 작아지면 이 과정에서 처리해야 할 전하량도 줄어듭니다. 그만큼 빛을 켜고 끄는 속도를 높이기 쉬워지죠. 동시에 같은 면적에 더 많은 마이크로LED를 배치할 수 있어 병렬로 활용할 수 있는 광채널 수도 늘릴 수 있습니다.

광섬유와의 연결에서도 이점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LED 기반 광인터커넥트에서는 하나의 이미징 파이버(수천개의 작은 빛길을 묶어놓은 광섬유) 내부에 수많은 미세 광경로를 두고 마이크로LED마다 일정 영역의 코어를 할당하는 방식이 활용될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LED 하나에서 나온 빛을 복수의 미세 코어가 받아 하나의 데이터 채널을 형성하는 구조인 셈이죠. 광원이 작을수록 제한된 면적 안에서 이러한 채널을 더 많이 구성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마이크로LED를 작게 만드는 것만으로 광통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LED는 빛이 일정한 각도로 퍼지는 특성이 있어 일부 빛이 옆 채널의 코어 영역까지 넘어갈 수 있어서죠. 이렇게 한 채널의 빛이 인접 채널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광학적 크로스토크라고 하는데요. 채널 수가 많아지고 간격이 좁아질수록 이러한 간섭을 줄이기 위한 광학 설계와 정밀한 패키징 기술이 중요해집니다.

또 다른 문제도 있죠. 광원은 작을수록 유리하지만 이를 구동하는 반도체의 설계 난도는 오히려 높아진다는 점 때문입니다.

수백개의 마이크로LED를 각각 하나의 광채널로 활용하려면 이를 켜고 끄는 전기 신호도 동시에 수백개를 처리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들어온 데이터 신호를 각각의 마이크로LED에 나눠 전달하고, 각 LED가 이에 맞춰 독립적으로 빛을 내도록 제어해야 하는 것이죠. 이 역할을 CMOS 기반 전자집적회로(EIC)가 담당합니다. 결국 이 작은 반도체 안에서 수백개의 수Gbps급 신호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배선이 촘촘해질수록 하나의 전기 신호가 인접 배선에 영향을 주는 전기적 크로스토크를 억제하기 어려워집니다. 각 채널의 신호 도착시간을 맞추는 동기화와 전력 공급, 발열 관리도 함께 해결해야 합니다. 기존 레이저 방식의 난제가 소수의 채널을 극도로 빠르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마이크로LED 방식에서는 수백개의 채널을 동시에 정확하게 제어하는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죠.

이러한 가능성을 구체적인 시스템 구조로 제시한 사례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MOSAIC'입니다. MS 연구진은 기존 광통신의 소수 고속 채널 구조에서 벗어나 다수의 저속 마이크로LED 채널을 병렬로 활용하는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마이크로LED와 이미징 파이버, 광검출기를 연결하고 고속 직렬화·신호처리 과정의 부담을 낮춰 데이터센터 광링크의 소비전력을 줄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를 토대로 상용화를 향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 아비세나(Avicena)는 수백개의 질화갈륨(GaN) 마이크로LED와 실리콘 광검출기를 병렬로 연결하는 '라이트번들(LightBundle)'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공개 자료에 따르면 초기 링크는 약 300개의 광채널을 채널당 4Gbps로 구동해 1.2Tbps 수준의 처리량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전송거리는 10m 이내의 단거리 연결을 겨냥하며 소비전력은 1pJ/bit 미만을 제시하고 있죠.

이러한 마이크로LED 광인터커넥트의 핵심 기술을 국산화하려는 국내 기업도 있습니다.

AI 글래스용 디스플레이 패널인 LEDoS(LED on Silicon)의 CMOS 백플레인을 개발해온 사피엔반도체가 대표적이죠. 사피엔반도체는 마이크로LED의 CMOS 백플레인을 설계한 경험을 광인터커넥트용 EIC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디스플레이에서는 CMOS 백플레인이 수많은 마이크로LED 픽셀을 개별적으로 구동합니다. 이를 광통신에 적용하면 픽셀 대신 각각의 마이크로LED를 하나의 데이터 전송 채널로 활용할 수 있겠죠. 수백개의 병렬 전기 신호를 개별 광채널에 대응시키고, 이를 동시에 구동하면서 채널 간 크로스토크와 타이밍 문제를 제어하는 것이 핵심이 될 겁니다.

사피엔반도체는 완성형 광모듈보다 마이크로LED를 구동하는 EIC와 CMOS 백플레인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개발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광통신용으로는 약 5~10㎛ 수준의 마이크로LED 활용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기존 디스플레이용 백플레인보다 훨씬 빠른 신호를 처리할 수 있도록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사피엔반도체는 올해 안에 광인터커넥트용 시스템 아키텍처를 확정하고, 내년부터 실제 구현에 나설 계획입니다.

반도체 업계 내에서는 마이크로LED 기반 CPO가 갈 길은 아직 먼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기존 레이저 기반 CPO조차 아직 시장에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데다, 마이크로LED 구조에 맞춘 표준과 공급망도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특히 자체 규격을 중심으로 생태계를 구축해 온 엔비디아 진영과 개방형 표준을 중심으로 광통신 사업을 확대해 온 시스코·마벨·브로드컴 등 기존 네트워크 진영의 접근법도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AI로 급증한 데이터와 전력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AI 가속기의 성능이 높아질수록 칩 자체의 연산 능력뿐 아니라 이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과 데이터 병목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결국 AI 시대 광통신의 경쟁은 하나의 광원을 얼마나 빠르게 구동하느냐를 넘어, 얼마나 많은 광채널을 낮은 전력으로 동시에 구동할 수 있느냐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아직 표준과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초기 단계이지만, 마이크로LED가 디스플레이를 넘어 AI 인프라의 데이터 이동을 담당하는 새로운 광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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