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송전망만 13년…中은 전기·물 먼저 깔고 ‘팹 10개월 완공’
대만 TSMC가 일본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건 2021년 10월이다. 같은 해 11월 구마모토 공장 건설을 공식화하자 구마모토현은 불과 9일 만에 ‘반도체 산업 집적 강화 추진본부’를 꾸렸다. 착공부터 공장 완공, 양산까지 3년짜리 로드맵을 짰고 실제 2024년 말 양산을 시작했다. 부지·전력·용수·도로를 따로 준비한 게 아니라 공장 건설과 같은 시간표에 올려놓은 인프라 속도전의 결과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를 두고 “일본 구마모토에 못지않은 속도”를 주문한 배경이다. 문제는 한국의 인프라 시간표다. 반도체 팹은 3년 안팎이면 지을 수 있지만 대규모 산업단지에 전기를 공급하는 송전망은 계획부터 준공까지 평균 13년이 걸린다. 첨단산업 투자 속도를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이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가 산업 경쟁력의 병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중국은 전력망과 용수관 등 기반시설을 먼저 확보한 뒤 반도체 팹을 입지시키는 방식으로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허페이 Fab A는 2017년 3월 착공해 이듬해 1월 1단계 공장 건물을 완성했다. 착공한 후 불과 10개월 만이다.
한국의 사정은 일본·중국과 달랐다. SK하이닉스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계획을 공개한 것은 2019년 2월이다. 당시에는 부지 조성을 마치는 2022년 이후 팹 건설에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실제 첫 팹 착공은 2025년 2월에야 이뤄졌다. 첫 클린룸 개방 목표는 2027년 2월로 계획 발표부터 8년이 소요됐다.
공장 자체보다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 확보 과정에서 시간이 더 걸렸다. 환경영향평가와 토지 보상이 장기화했고 용수 확보를 놓고 지역 간 갈등도 불거졌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21년 5월 용수공급시설 인허가를 신청했지만 취수 지점을 관할하는 여주시가 반대하면서 2022년 11월에야 협의가 마무리됐다.

송전망의 시간표는 더 길다. 한국은 345㎸ 송전선로를 기준으로 계획부터 준공까지 평균 약 13년이 걸린다. 현재 추진 중인 송전망도 곳곳에서 병목을 겪고 있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연계된 주요 송·변전망 사업 54개 가운데 20개가 지연되고 있다. 주민 민원과 지방자치단체 인허가 등이 주된 원인이다.
반면 중국은 국가 주도로 대규모 송전망을 빠르게 구축한다. 초고압직류송전(UHVDC) 주요 사업은 2~3년 안팎에 공사를 마친다. 일본 역시 대형 송전망 구축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구마모토는 공장 유치 직후 전력 공급망을 용수·교통 등 다른 기반시설과 함께 추진한 데다, 기존 전력망 등을 활용할 수 있어 속도전이 가능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CXMT나 양쯔메모리(YMTC)의 팹 증설 속도는 팹이 들어서는 순간 이미 변전소와 용수관이 대기하고 있는 선행 건설이 핵심”이라며 “반도체는 타이밍 산업인데 팹은 3년이면 짓고 송전망은 10년이 걸리는 한국의 상황이 지속되면 시장 경쟁력 상실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프라 건설이 가뜩이나 지연되는 가운데 반도체와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전력·용수 규모는 기존 수요 예측마저 뛰어넘고 있다.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반도체 팹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에 대규모 전력이 필요하다. 신규 반도체 산단에 필요한 산업용수만 하루 65만t으로 추산된다. 현재 광주지역에 하루 공급되는 생활용수 규모를 웃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관계자는 “과거에는 인구 변화 등을 중심으로 전력과 용수 수요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지만 데이터센터나 반도체처럼 특정 지역에서 한꺼번에 대규모 수요가 발생하는 것은 과거에 없던 문제”라고 말했다.

과거보다 정교하고 일관된 계획이 필요하지만 이를 수행할 주체는 부처별로 쪼개져 있다. 국가산업단지 지정과 도로·철도 등 교통망은 국토교통부가 담당하고 전력과 생활·공업용수는 기후부가 맡는다. 기후부 출범으로 전력과 용수가 한 부처에 들어왔지만 전력은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장기 송·변전설비계획, 용수는 수도·수자원 관련 계획 등 서로 다른 체계로 움직인다.
물 안에서도 ‘칸막이’가 있다. 국내 물 이용량의 63.1%를 차지하는 농업용수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담당하고 생활·공업용수는 기후부가 맡는다. 첨단산업에 갑자기 대규모 용수가 필요해져도 국가 전체 수자원을 한데 놓고 용도 전환이나 공급 우선순위를 조정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국가물관리위원회에 참여했던 박준홍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물 문제도 기후부와 농식품부 등에 칸막이가 쳐져 있어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처럼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대형 프로젝트는 범부처 협의를 통해 부지와 전력·용수 공급 시기를 맞출 수 있다. 정부도 전력·용수·부지 적극 공급을 범부처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형 사업이 생길 때마다 대통령이나 범정부 회의를 통한 개별 조정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급증하는 첨단산업 수요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 교수는 “지금처럼 전력망과 도로·철도·산업단지 계획이 따로 움직이면 도로를 먼저 깔아놓고 나중에 다시 땅을 파 송전망을 넣는 식의 이중·삼중 투자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산업 입지와 전력·용수·도로·철도 등 주요 인프라 계획을 처음부터 하나의 시간표에 올리고 수십 년 단위의 투자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국가 차원의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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