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엄미새’와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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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Z세대 사이에서 '엄미새'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고 한다. '엄마에 미친 사람'을 줄인 비속어로 연인이나 친구가 아닌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를 가리킨다. 엄마라는 안전지대를 넘어 최근에는 AI 챗봇에 몰입하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엄마와 AI 챗봇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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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Z세대 사이에서 ‘엄미새’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고 한다. ‘엄마에 미친 사람’을 줄인 비속어로 연인이나 친구가 아닌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를 가리킨다. 타인과의 복잡하고 불편한 관계 맺기를 주저하는 청년세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엄마라는 안전지대를 넘어 최근에는 AI 챗봇에 몰입하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나를 이해해주는 챗봇과 대화하다 눈물을 쏟았다”거나 AI에게 다정한 이름을 지어주고 이성에게서 느끼는 설렘을 경험했다는 후기가 수시로 올라온다.
엄마와 AI 챗봇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나를 무조건 받아주는 존재’라는 점이다. 엄마는 철없는 자식이라도 쉽게 버리지 않는다. 취업에 실패하고 제 앞가림을 못해도 따뜻한 밥상은 차려주니까. AI는 한술 더 떠서 새벽 3시에 투정을 부려도 내 기분을 맞춰주며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답변을 내놓는다. 반면 현실의 타인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이성과는 별것 아닌 일로 다투고, 다투고 나면 자존심을 굽혀 풀어야 한다. 보기 싫은 직장 동료라도 아침이면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내 의도와 달리 오해를 받거나 기대만큼 상대가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 일도 태반이다. 타인과의 관계에는 언제나 불확실성과 피로함, 그리고 상처받을 위험이 따라붙는다.
그래서인지 관계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최근 한 언론사가 한국·중국·일본·미국·스페인 등 5개국의 18~39세 청년 8242명을 조사한 결과 한국 청년의 55.4%가 연애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조사 대상 5개국 중 가장 높은 수치로 일본(54.2%), 미국(35.8%), 스페인(29.2%), 중국(24.7%)보다 높은 수치다. 이쯤 되니 청년들이 단순히 이성을 기피하는 게 아니라는 걱정이 든다. 타인과 부딪히며 생기는 감정적 에너지 소모를 극도로 경계하고, 언제나 날 받아주는 ‘무해한 관계’로 도피하려는 건 아닐까.
물론 엄마에게 기대거나 AI에게서 정서적 위안을 얻는 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이런 ‘수용적 관계’가 내 삶의 유일한 관계망이 될 때 커진다. 엄마와 AI 덕분에 나약해진 마음은 인생에서 꼭 거쳐야 할 불편한 관계를 견디는 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오직 나를 맞춰주는 존재와만 소통하다 보면 내 생각이 틀렸다는 타인의 지적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나와 다른 궤적으로 살아가는 타인을 견디는 힘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관계의 피로를 피하면 피할수록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아를 확장하고 성장시킬 기회를 스스로 버리게 된다.
사람은 타인이라는 불편한 거울을 통해 성장한다. 내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과 대화하면서 타인의 세계를 헤아리는 법을 배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와 협업하며 타협점을 찾는 지혜를 얻고, 때로는 내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며 타인과 화해하는 법을 익힌다. 이것은 알고리즘이나 조건 없는 모성이 결코 대신해 줄 수 없는, 오직 현실의 ‘불편한 인간관계’에서만 터득할 수 있다. 엄마와 AI가 나를 완벽하게 받아주는 세상은 다정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완벽할 순 없다. 때로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소통해야 하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AI가 나를 나보다 더 잘 이해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진 않는다. 현실에서 살아가려면 상처받을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건 상처받지 않는 법이 아니라, 상처받고도 다시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김상기 디지털뉴스부 선임기자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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