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언제까지 ‘용감한 피해자’를 기다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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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이라는 수식어는 '피해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2019년부터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끔찍한 스토킹을 당했던 그는 가해자를 고소한 뒤 수사와 기소, 재판을 거치며 형사사법제도가 피해자에게 얼마나 냉담한지를 온몸으로 겪었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는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경우가 많았지만 그는 달랐다. 직업이 기자였기에 자기 사건을 낱낱이 기록하며 고통의 시간을 버텼고, 그 생생한 증언을 '탁월한 피해자'라는 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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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이라는 수식어는 ‘피해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좀처럼 나란히 세우기 어려운 두 단어를 자신의 호칭으로 삼은 그를 최근 한 모임에서 만났다. 2019년부터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끔찍한 스토킹을 당했던 그는 가해자를 고소한 뒤 수사와 기소, 재판을 거치며 형사사법제도가 피해자에게 얼마나 냉담한지를 온몸으로 겪었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는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경우가 많았지만 그는 달랐다. 직업이 기자였기에 자기 사건을 낱낱이 기록하며 고통의 시간을 버텼고, 그 생생한 증언을 ‘탁월한 피해자’라는 책에 담았다.
‘밝고 유쾌한’이라는 형용사 역시 ‘피해자’ 앞에 붙이기 어려운 수식어다. 하지만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김진주씨를 만나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그렇게 묘사했다. 그런 성격 덕분에 범죄 피해자라는 무게에 질식하는 대신 살아남았고, 씩씩하게 피해자 연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두 사람은 우리 사회가 규정해놓은 ‘피해자다움’이란 낡은 인식에 도전하며 목소리를 내는 용감한 피해자들이다. 이들을 통해 범죄 피해자가 형사사건의 ‘당사자’로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가해자보다 더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다시금 보게 됐다. 인권지킴이어야 할 수사기관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2차 가해, 재판 중 판사는 물론 피고인 측 변호사의 태도에서 느끼는 무력감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경험한 것은, 국가는 피해자인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좌절과 공포였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앞두고 정치권에선 앞다퉈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물론 한동훈 의원과 국민의힘 의원도 이들을 초청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보완수사권 폐지를 공개 반대한 홍기원 등 13명의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도 이들은 참석했다. 피해자가 기댈 장치가 사라진다는 호소에도 결과는 아는 대로다. 민주당은 당론으로 보완수사권 폐지를 밀어붙였다.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의원 중 본회의장에서 반대표를 던진 이는 곽상언 의원뿐이었고, 이소영 의원은 기권했다.
검찰이 반드시 보완수사권을 가져야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보완수사권이 있을 때에도 억울하고 답답한 피해자들은 많았다. 검찰과 경찰 중 누가 더 잘할까의 문제도 아니다. 이번 법 개정으로 확실해진 건, 경찰 수사에 허점이 생겼을 때 피해자들이 기댈 수 있었던 국가 차원의 검증, 견제 장치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면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오롯이 피해자 몫이 돼 버렸다. 이제 수사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피해자는 직접 수사 증거를 찾고, 혐의 입증을 위해 법률 지식을 공부해야 한다.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력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비용 감당이 어려운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제도적 허점이 드러날 때마다 한국 정치는 피해자에게 기대어 왔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눈물로 특별법이 마련됐고, 아동학대나 스토킹 범죄 피해자 유족의 절규가 입법의 동력이 됐다. 하지만 피해자가 탁월해져야만 자신을 지킬 수 있고, 피해자의 용기에 기대어 대책을 마련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피해자는 탁월하지 않아도, 용감하지 않아도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보완수사권 폐지 후 이재명 대통령도, 법무부 장관도 “신속한 보완”을 언급했다. 경찰 수사결과에 대한 피해자의 이의신청 절차가 형식적 절차에 그치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수사 초기부터 피해자에게 사건 진행 상황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법률지원도 해야 한다. 이는 피해자가 아니라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언제까지 또 다른 ‘용감한 피해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것인가.
김나래 디지털뉴스센터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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