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언니여, 도망가라

온 세상에 군불을 땐 것 같은 여름날, 엉뚱하게도 나는 군불을 지핀 옛집의 뜨듯한 방바닥을 떠올리며 누군가를 추억한다. 어릴 적 우리 집엔 부지런한 식모 언니가 있었다. 그 시절 어머니는 아버지 일을 돕느라 늘 바빴고 나는 언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성장했다. 식모라는 말이 신분 차별적인 단어라 해서 가정부 등으로 바뀌었지만, 사실 식모라는 이름은 먹을 것을 만들어주는 엄마 같은 존재, 참 푸근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언니는 이쁘지는 않아도 음식을 참 잘했다. 나는 지금도 어딘가 아플 때면 언니가 해준 음식을 먹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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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볕더위에 생각나는 식모 언니
불행한 남편 만나 평생 맞고 살아
날은 덥고 인생은 너무 금방 가고
」
![[그림 황주리]](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8/11/joongang/20260811000740829ljqq.jpg)
언니가 결혼할 나이가 되어 어머니는 성실하지만 좀 못생긴 동네의 구두 고치는 청년과 지금은 흔적도 없는 내수동 한옥의 식물들을 가끔 돌보아주던 나무 청년 중 고르라 했다. 언니는 둘 중 잘생긴 나무 청년을 택해 결혼했다. 잘생긴 남자와 결혼한 언니는 평생 맞고 살았다. 술만 먹지 않으면 멀쩡한 나무 청년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술만 먹으면 아내를 때리는 그는 하는 일마다 잘 안 되었다. 과수원을 하면 불이 나고 나무를 심으면 병충해가 들어 다 죽었다. 그게 다 재수 없는 아내 탓이라고 불평하며 술만 먹으면 때렸다. 드디어 맞다가 고막이 터진 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았고, 잘 못 듣는다고 때리면 우리 집으로 도망쳐 오곤 했다. 사람은 늘 같은 행동을 하며 살다 죽는 존재다. 만일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은 낙관주의자다. 어느 날은 기르던 개를 뚜드려 패서 거꾸로 매달아 그을려 먹는 남편에 정떨어져 집을 나온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언니를 구슬려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요즘 본 드라마의 대사가 갑자기 떠오른다. “언제까지 불쌍하게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불쌍한 사람끼리는 괜찮지 않을까요?”
둘 다 부모 없이 자란 언니와 남편도 그런 마음으로 결혼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두들겨 맞고 친정이랍시고 찾아온 언니에게 구두 고치는 사람이랑 결혼할 걸 그랬다고 습관적으로 중얼거리셨다. 누구의 삶인들 그렇지 않으랴. 길에서 아무나 만나서 살아도 그보다는 나을 사람과 결혼해서 죽을 때까지 산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으랴. 어릴 적 텔레비전 주말의 명화에서 본 뒤 몇십 년 만에 영화 ‘가스등’을 다시 보았다. 런던의 안개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흑백 영상을 나이 들어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그 영화에서 유래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참 오래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익숙한 것들로부터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며 살아간다. 청각이 떨어지면 치매 확률이 높아진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소리를 듣는 것처럼 소통에 중요한 게 있을까? 세상에는 혼자 떠드는 자와 듣는 척하는 자가 있을 뿐,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는 일은 드물고 귀한 순간일지 모른다. 너는 정상이 아니니 내 말만 들어야 안전하다고 아내를 세뇌하는 남편, 영화 속에서는 아내가 아니라 남편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개인적인 가정 폭력의 역사, 나아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세뇌하는 독재의 역사는 고장 난 축음기처럼 계속 반복되기도 한다.
새벽에 누군가 보내준 처음 듣는 노래가 뇌 속에 들어와 박힌다. “너무 더워 너무 더워 죽을 것 같애.” 반복되는 가사를 들으며 꾼 얕은 꿈속에서 언니가 그 노래를 부른다. “죽을 것 같아”를 되풀이해 부른다. 놀라서 눈을 뜨니 내 눈이 젖어있다. 치매가 시작되었다는 언니 소식을 들은 지도 한참이다. “갈 데가 여기밖에 없어”하며 집에 온 언니에게 “도망쳐라, 언니” 했던 내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때 내가 준 노랑과 초록의 원피스를 입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집으로 돌아가던 언니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어머니가 택시 타고 가라고 준 돈은 주머니에 넣고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언니, ‘가스등’ 영화 속의 마지막 장면, 주인공을 구해준 고마운 타인의 말이 같이 떠오른다. “아침에 해가 뜨면 밤이 있었다는 사실은 잊어버리죠.”
평생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비겁한 나는 그저 속으로만 “언니여, 도망가라” 외쳐댔다. 그리고 한 생은 너무 금방 간다.
황주리 화가·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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