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담 아니었다…놀런이 다시 쓴 고전
![영화 ‘오디세이’ 속 오디세우스(왼쪽)와 조반니 안드레아 시라니 그림 속 오디세우스(오른쪽).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각색 과정에서 트로이 목마 해석을 달리했고, 아테나 등도 다른 방식으로 등장시켰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구글 아트프로젝트]](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8/10/joongang/20260810000738423orgi.jpg)
지난 5일 개봉해 나흘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오디세이’는 호메로스 『오뒷세이아』의 얼개를 따르지만, 이야기를 추동하는 정서는 전혀 다르다.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의 야심은 원전과 각색의 그 간극 속에 담겨 있다. 요컨대 영웅 귀환의 서사를 죄의식과 성찰의 서사로 다시 써보려는 야심이다.
◆ 지략 대 회한 = 전체 24권으로 이뤄진 『오뒷세이아』에 트로이 목마는 4권과 8권 두 번 등장한다. 4권은 오디세우스가 목마 안에서 소리치려는 전사의 입을 막아 모두를 살린 이야기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구했소, 모든 아카이아인들을”이라며 오디세우스의 업적을 전한다. 8권은 오디세우스가 시인 데모도코스에게 자신이 목마를 이용해 트로이를 함락한 이야기를 노래로 불러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이다. 트로이 목마는 위대한 지략이자 자랑거리다.
영화 ‘오디세이’에서 트로이 목마 사건은 3번 다뤄진다. 원전과의 결정적 차이는 세 번째 장면이다. 이타카로 귀환한 오디세우스(맷 데이먼)는 페넬로페(앤 헤서웨이)에게 트로이 전쟁을 설명한다. 승리의 고양감 대신 오디세우스의 마음에 가득 찬 건 자신의 행위에 대한 회한이다. 목마를 선물로 위장해 트로이를 속였고, 이는 환대(크세니아)라는 ‘제우스의 법’을 어긴 것이라고 회고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트로이에서 승리의 포효가 아니라 살육의 선혈(鮮血)이다.
◆ 죄의식의 여정 = 귀환의 시작점이었던 트로이 목마에 대한 해석이 달랐기에, 이후 10년간 귀환 여정에 대한 해석도 다르다. 『오뒷세이아』가 모험담이라면, ‘오디세이’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성찰하는 여정이다.
오디세우스를 향한 칼립소(샤를리즈 테론)의 요청도 다르다. 원전에서 칼립소는 “(이타카를) 잊으라”고 하지만, 영화에선 “(트로이를) 기억하라”고 한다.
영화 첫 장면에 나오는 시논도 오디세우스 여정에서 죄책감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리스 병사 시논은 『오뒷세이아』에선 등장하지 않고, 이탈리아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나온다. 그는 목마가 속임수라는 걸 알고 트로이를 속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시논은 목마가 정말 제물인 줄 알았다. 완벽한 작전을 위해 오디세우스가 시논을 속인 것이다. 시논은 망자의 해변에서 원혼으로 등장해 오디세우스를 원망한다.
영화 속 오디세우스가 괴로울 때 환영처럼 등장하는 아테나(젠데이아 콜먼)도 오디세우스의 죄의식 그 자체다.
![영화 ‘오디세이’에서 트로이군이 그리스군이 안에 들어 있는 목마를 끌고 가는 모습.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8/10/joongang/20260810000738675eaks.jpg)
◆ 다시 시작된 여행 = 그런 여정을 거쳐 돌아온 이타카는 과거의 그곳이 아니다. 108명의 구혼자들이 점령하고 이미 ‘제우스의 법’이 무너진 곳. 오디세우스는 그들을 처단한다.
『오뒷세이아』 마지막 장면은 아테나의 “멈춰라, 그만둬라, 대등한 전쟁의 다툼을”이라는 종전 선언이다. 오디세우스는 복종했고, 평화가 찾아왔고, 그는 다시 왕권을 되찾는다. 반면 영화에서 오디세우스는 왕위를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에게 넘긴다. 그리고 전쟁에서 잃은 동료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페넬로페와 서쪽으로 떠난다. 결국 원전이 제 자리로 돌아오는 이야기라면, 영화는 자신의 새로운 임무를 깨닫는 이야기다. 『오뒷세이아』가 수평적 귀환의 서사라면, ‘오디세이’는 수직적 성장의 서사가 된다.
놀런의 각색은 근대적이다. 문학 비평가 게오르크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1916)에서 고대 서사시와 비교한 근대 소설의 특징을 ‘(돌아갈) 선험적 고향의 상실’로 설명했다. 근대 소설 속 인물들은 방황하거나 다시 떠났다. 기존 질서가 무너진 시대였다. 지금 트럼프의 미국과 세계 질서도 그렇다. ‘제우스의 법’이 무너진 시대다. 세계 경찰의 부재(‘다크나이트’), 자본주의 불안(‘다크나이트 라이즈’), 불가역적 세계(‘오펜하이머’) 등 9·11 이후의 세계 모습을 근심했던 놀런의 시선은 고대 서사시를 빌렸지만 여전히 현재를 향해 있다.
윤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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