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러시아판 아마존’ 공습…고려인 CEO 8조 날렸다

하수영 2026. 8. 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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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주 일렉트로스탈의 와일드베리스 창고에서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 이후 연기가 치솟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가 고려인 출신 여성이 세운 러시아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와일드베리스’ 를 집중 공습해 막대한 재산 및 인명 피해를 냈다. 러시아군의 물자 공급망을 흔드는 동시에 전쟁에 대한 부담을 러시아 국민들이 느끼게 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와일드베리스는 지난달부터 이어진 우크라이나의 공습으로 러시아 전역의 시설 최소 23곳이 피해를 입었다. 이로 인해 전체 창고 공간의 3분의 1을 잃었다. 불에 타 사라진 상품 가치만 최대 59억 달러(약 8조2600억원)에 달한다. 직원도 9명이나 숨지며 와일드베리스가 최대 경영 위기에 처했다고 NYT는 전했다.

지난 6월 5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29회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 총회에 와일드베리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타티야나 김이 참석한 모습. EPA=연합뉴스


‘러시아판 아마존’으로 불리는 와일드베리스는 러시아 소매 판매의 약 8.5%를 차지하는 핵심 유통기업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 기업이 철수하며 존재감이 더욱 커졌다. 러시아 전역에 상품 수령 지점 약 9만5000개를 두고 있다. NYT는 “러시아 국민의 절반 이상이 매달 최소 한 번은 와일드베리스를 이용한다”고 전했다. 고려인 출신으로 2004년 회사를 창업해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타티아나 김(51)은 러시아 최고의 여성 부호로 꼽힌다.

러시아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와일드베리스는 자사 규정에서 “무기와 군수품의 판매를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와일드베리스는 홈페이지에서 FPV(1인칭 시점) 드론과 조종·영상 장비 등을 판매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와일드베리스 홈페이지 캡처

우크라이나는 와일드베리스가 러시아군에 군용·이중용도 물자를 공급하고 있다는 점을 공격의 근거로 들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와일드베리스를 처음 공격한 지난달 18일 “야간 작전의 목표가 된 모스크바·탐보프 지역의 대형 물류시설 2곳은 항법장비와 드론(무인기) 생산 부품 등을 공급하는 데 사용되는 곳”이라고 밝혔다.

와일드베리스는 자사 규정에서 “무기와 군수품의 판매를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홈페이지에서 FPV(1인칭 시점) 드론과 조종·영상 장비 등을 판매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NYT는 “폭발물 투하 장치를 갖춘 드론의 판매 게시물에는 러시아군의 대량 구매 문의도 올라와 있었다”며 “다만 해당 제품이 실제 러시아군에 배송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국민들에게 전쟁을 체감케 하려고 와일드베리스를 타격한 거란 분석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우크라이나는 와일드베리스 집중 공격으로 경제·사회적 부담을 키워 러시아에 종전 압박을 가하려 한다”고 짚었다. 와일드베리스 공격으로 수만 개 중소 판매업체와 배송망, 소비자, 은행권까지 충격을 확산시켜 러시아의 전쟁 부담을 키우려는 전략이란 것이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타티야나 김은 지난달 22일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우크라이나가 민간 인프라와 일반 시민, 우리 직원들을 공격한 것은 국제 테러 행위”라고 주장했다. 와일드베리스 시설을 민간 인프라로 규정하며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전면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NYT에 따르면 와일드베리스는 8만 곳이 넘는 중소 판매업체들에 두 차례에 걸쳐 자발적인 보상금을 지급하며 위기를 타개 중이다. 판매자들이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에 대비해 가입할 수 있는 보험 상품도 도입했다. 러시아 정부도 나섰다. 알렉세이 사자노프 러시아 재무차관은 “세금 감면과 유예기간 등을 포함한 와일드베리스 판매자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8일(현지시간)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국경의 카르담 검문소 인근에서 드론이 폭발한 농경지로 향하는 길목에 불가리아 군사경찰 차량이 주차돼 있다. AFP=연합뉴스


한편 이날 우크라이나산으로 추정되는 드론이 불가리아 영공을 침범해 폭발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불가리아 국방부는 해당 드론이 우크라이나제 ‘마야’일 가능성이 높으며, 루마니아를 통해 불가리아로 들어갔다고 판단하고 있다. 마야는 공격용 드론과 유사한 신호를 보내 적 방공망을 교란하고, 지대공미사일 발사를 유도해 방공 자원을 소진하는 기만용 드론이다. 불가리아는 러시아·우크라이나와 함께 흑해를 끼고 있어 전쟁 발발 이후 드론·미사일 등 군사적 여파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왔다.

특히 이날 드론 폭발 사고는 전쟁 이후 러시아산 천연가스 대신 동남유럽의 대체 가스를 운송하는 가스관인 트랜스발칸 천연가스관 시설에서 불과 1㎞ 떨어진 지점에서 발생했다. 트랜스발칸 천연가스관은 우크라이나에서 몰도바·루마니아·불가리아를 거쳐 튀르키예까지 이어지는 천연가스 수송망으로, 그리스·북마케도니아 등 주변국에도 연결돼 있다.

불가리아 국방부는 “지금까지는 이번 사건이 고의적이라고 볼 이유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헤오르히 티키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도 “이 사건의 모든 정황과 기술적인 내용을 파악 중”이라며 “우크라이나군은 불가리아를 향해 어떤 의도적인 수단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8일(현지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오른쪽)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는 발칸반도에서 외교적 접점도 넓히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를 처음 방문해 알렉산다르 부치치 대통령과 유럽연합(EU) 가입 노력과 양자 관계 강화 등을 논의했다. 부치치 대통령도 지난달 15일 키이우를 방문했다.

친러 국가로 분류되는 세르비아는 서방의 대러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으면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지지해왔다. 로이터는 “조기 대선 및 총선을 앞둔 부치치 대통령이 EU 가입과 러시아와의 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수영 기자 ha.su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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