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베끼더니 얼굴도 닮아”…하루 5편씩 찍어내는 中 ‘숏드’

신경진 2026. 8. 9. 15:0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숏폼 드라마 플랫폼인 훙궈에 올라온 인공지능 제작 드라마의 한 장면. 사진 훙궈 캡처

중국 드라마 업계에서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초단편 숏폼 드라마가 전통적인 제작 방식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중국 넷캐스팅서비스협회(CNSA)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에서 새로 등록된 숏폼 드라마는 12만8000편이며, 이 가운데 AI로 제작된 작품이 95%를 넘는 12만2000편에 달했다. 중국에서 ‘미단극(微短劇)’으로 불리는 숏폼 드라마는 휴대폰 시청에 맞춰 세로 화면으로 제작되며, 회당 1~3분 내외로 총 60~100회 안팎으로 구성된다.

특히 지난 6월에는 인기 숏폼 드라마 플랫폼 ‘훙궈(紅果)’의 인기 순위 10위권 가운데 AI 제작물이 6편이나 포함됐고, 1위까지 차지한 작품도 있었다고 홍콩 명보가 9일 보도했다.

AI 드라마의 최대 경쟁력은 낮은 비용이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실사 숏폼 드라마(60부작 기준)는 제작비가 50~60만 위안(약 1억~1억2000만원)이지만, AI 드라마의 경우 20만 위안(약 4000만원) 이하로도 완성된다. 컴퓨터 한 대와 5~6명의 소규모 팀이 하루에 4~5편을 뽑아낸 사례도 있다. 기존 미디어 업계에서 AI 제작자로 변신한 아차이(阿柴)는 “틱톡 계열의 훙궈 플랫폼은 최소 보장 금액에 더해 목표 트래픽을 달성하면 추가 수익 분배가 이뤄진다”고 명보에 말했다.

인공지능으로 제작한 중국의 숏폼 드라마의 남성 캐릭터. 중국의 드라마 제작 인공지능이 한국 드라마를 집중 학습하면서 한국 남성 배우와 유사한 캐릭터를 양산하고 있다고 홍콩 명보가 9일 보도했다. 사진 중신징웨이 캡처

다만 진입 장벽이 낮다 보니 비슷비슷한 작품이 대량으로 쏟아지는 부작용도 나타난다. 특히 중국의 영상 제작 AI가 한류 콘텐츠를 학습하면서 주인공이 한국 남자 배우를 닮는 현상도 벌어진다. 모정(莫爭) AI 드라마 감독은 “중국의 주류 AI 비디오 모델이 많은 한국 영화를 ‘증류’해(사실상 베껴) 학습했고, 훈련용 데이터에서 한국 드라마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생성된 캐릭터들이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미적 특징을 띠게 됐다”고 관영 경제매체 중신징웨이(中新經緯)에 말했다.

'동방의 할리우드'로 불리는 중국 저장성 진화시의 헝뎬(橫店) 월드 스튜디오. 인공지능(AI) 드라마 제작 열풍으로 인해 촬영팀이나 여행객이 크게 줄어들었다. 사진 명보 캡처


AI 드라마 열풍은 촬영 현장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저장성 헝뎬(橫店) 월드 스튜디오는 극심한 침체를 겪는 중이다. 올해 상반기 헝뎬의 주간 평균 촬영팀 수는 22.75팀으로, 지난해보다 25% 가까이 줄었다. 스튜디오 공실률은 80%에 육박한다. 2025년 헝뎬에서 촬영된 숏폼 드라마가 3000편을 넘었지만, 올해는 대부분의 스튜디오가 비어 있고 엑스트라도 줄었다. 유명 배우조차 시상식 수상 소감에서 일자리를 호소할 정도로 업계가 얼어붙었다.

노동 강도 문제도 불거졌다. 항저우의 한 AI 숏폼 편집자 아칭(阿靑, 가명)은 14일 동안 밤 11시까지 야근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고 싱가포르 연합조보에 호소했다. 그는 “보통 프로젝트가 월요일에 시작해서 일요일까지 완성본을 제출하는 식”이라며 “AI 드라마는 높은 품질 기준이 없어, 빠르게 많이 제작할수록 히트 가능성이 높다”고 토로했다.

올해 새로 등록된 AI 숏폼 드라마 제작사는 2100곳이 넘는다. 올해 2월까지 공개된 12만 편의 숏폼 드라마 중 조회수 1억 회를 넘긴 작품은 150편도 못 미쳤다. 성공률 0.1%의 경쟁이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부추기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는 지적한다.

유명 배우의 초상권 논란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여배우 위수신(虞書欣)은 AI로 도용된 얼굴과 목소리가 담긴 작품이 유통되자 소속사가 지난달 27일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여배우 치웨이(戚薇)는 지난 7일 자신의 AI 아바타를 이용한 숏폼 드라마 제작을 처음으로 허가했지만, 홍보 영상의 선정적 앵글로 역풍을 맞았다.

과열 경쟁의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업계의 자정 움직임도 시작됐다. 규제 당국이 숏폼 드라마 제작 가이드라인을 강화하면서, 1분기의 폭발적 성장세와 달리 2분기에는 ‘양적 확장’에서 ‘질적 개선’으로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관영 경제일보는 보도했다. 틱톡 모회사 바이트댄스가 최대 주주인 드라마 플랫폼 훙궈는 고품질 시나리오 1500편에 대해 제작비 20만 위안(약 4000만원)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쉬젠(徐劍) 상하이 자오퉁대 교수는 “AI 숏폼 드라마는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치열한 경쟁과 다툼을 거쳐서만 천리마와 다크호스가 가려진다. 시장의 자정 능력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