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넘어 본<오디세이>, 아버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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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즘 영화 <오디세이>가 화제다.
그런데 이번 영화 <오디세이>를 보며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그 만화영화를 통해 나는 이미 <오디세이아>의 이야기를 상당 부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추억을 떠올리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를 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 TV 화면을 통해 만났던 영화의 장면과 지금 스크린에서 마주한 오디세우스의 이야기가 묘하게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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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림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즘 영화 <오디세이>가 화제다.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고,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작품의 역사적·신화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원작은 고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두 서사시 가운데 하나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다. <일리아스>와 함께 서양 문학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기 전 이 작품들을 다시 찾아보는 관객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그저 '트로이의 목마' 정도만 기억한 채 지난 7일 저녁 극장을 찾았다. 원작이 어떤 이야기인지, 영화가 이를 어떻게 풀어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스크린 앞에 앉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마주하는 것이 작품을 온전히 느끼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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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7일 CGV 서전주에서 관람한 영화 <오디세이> 영화입장권. |
| ⓒ 최호림 |
"율리시스~ 율리시스~우주의 선장"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세대라면 이 노래 가사만으로도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쯤은 떠올리실 것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 <오디세이>를 보며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그 만화영화를 통해 나는 이미 <오디세이아>의 이야기를 상당 부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율리시스의 아들이 텔레마커스라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알고 보면 오디세우스(Odysseus)와 율리시스(Ulysses)는 결국 같은 인물이다. 고대 그리스어 이름이 오디세우스이고, 라틴어 및 영어권에서는 율리시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원작에서 율리시스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고향 이타카로 귀환하던 중, 한 섬에 정박했다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인 외눈박이 거인 사이클롭스(Cyclops)와 마주친다. 사이클롭스의 동굴에 갇힌 율리시스와 그의 부하들은 포도주로 거인(Polyphemus)을 취하게 만든 뒤 불에 달군 말뚝으로 그의 하나뿐인 눈을 찌른다. 결국 아들의 눈을 멀게 한 율리시스를 향한 포세이돈의 분노는 그의 귀환 여정을 더욱 길고 험난하게 만든다.
만화 <우주선장 율리시스>는 이러한 원작의 핵심 설정을 우주라는 미래적 공간으로 옮겨온 작품이었다. 사이클롭스를 거대한 기계 생명체로 바꾸고, 고향 이타카를 지구로 바꾸었을 뿐이다. 배경과 등장인물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끝없는 모험을 이어가는 율리시스의 가혹한 운명은 그대로였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재미있는 SF 만화라고만 생각했다. 이 만화가 수천 년 전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알지도 못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나 영화로 그 이야기를 다시 마주하고 보니, 율리시스의 길고 험난한 귀환 여정은 이미 오래전 어린 시절의 내 기억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오디세이아>를 이번에 처음 만난 게 아니었다. 어린 시절 이미 두 편의 서로 다른 작품을 통해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만나고 있었다. 그 하나가 바로 커크 더글러스가 주연한 1954년 영화 <율리시즈(Ulysses)>였다.
당시 MBC에 <주말의 명화>가 있었다면 KBS에는 <명화극장>이 있었다. 지금처럼 수많은 케이블 채널과 OTT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TV에서 만나는 영화 한 편은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특히 늦은 시간 TV의 채널권은 아버지가 쥐고 계셨다. 어린 나에게는 아버지가 선택한 프로그램을 함께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보았던 <율리시즈>는 커크 더글러스가 어떤 배우인지, 이 영화가 어떤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몰랐던 내게 그저 거대한 모험과 외눈박이 거인의 모습이 강렬하게 남은 영화였다.
여러 추억을 떠올리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를 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 TV 화면을 통해 만났던 영화의 장면과 지금 스크린에서 마주한 오디세우스의 이야기가 묘하게 겹쳐졌다. 반세기가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한 편의 영화가 또 다른 오래된 영화의 기억을 불러낸 순간이었다.
오디세이를 보다 나홍진의 <호프>가...
최근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호프>도 떠올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의 실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영화를 보며, 감독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오디세이>에서 처음 등장하는 괴물과 동굴 속에서 마주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니, 그 알 수 없는 존재의 정체를 끝내 어둠 속에 감춰둔 채 만들어내는 공포와 폭력성이 느껴졌다. 묘하게 <호프> 속 정체불명의 우주 괴물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두 작품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오디세이>를 보고 나니 문득 이런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혹시 나홍진 감독 역시 오디세우스와 괴물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를 만들어내는 방식에서 어떤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닐까.
오디세우스가 마주한 비극
같은 이야기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대와 시선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영화가 된다. 이번 <오디세이>를 보면서 나는 원작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오디세우스를 바라보게 됐다.
그는 트로이의 목마를 이용한 전략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혜로운 영웅이었다. 그러나 승리의 환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자신이 만들어낸 비극적 참상과 마주한다. 신의 조각상을 칼로 내려치는 순간부터 그는 평생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 된다. 아테나를 비롯한 신적 존재가 마치 그의 죄책감과 이성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환영처럼 따라붙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드디어 성문이 열렸을 때, 승리에 환호하며 들어갔던 전쟁터는 어느 순간 참혹한 학살의 현장으로 변해 있었다. 영웅적인 승리라고 믿었던 일이 사실은 수많은 죽음 위에 세워진 비극이었음을 오디세우스는 뒤늦게 마주한다.
그 이후 칼립소에게 붙잡혀 7년 동안 머물며 망각에 기대는 장면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현실의 트라우마와 고통을 잊기 위해 알코올이나 약물에 의지하는 현대인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잊으려 해도 내면 깊은 곳에서 끝내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가족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결국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고향, 그리고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일깨워주는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는 한 가장의 거친 성장 스토리처럼 읽혔다. 한때 열정과 야망으로 가득했던 영웅은 거대한 세상의 풍파와 맞서 싸워 승리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자기 자신마저 잃어버렸다. 그리고 고난과 모험의 연속인 오디세우스가 삶의 여정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꼭 내 삶의 궤적이 겹쳐 보였다. 그것은 거친 세파를 견디며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가장들의 성장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끝없는 세상 풍파 속에서도 결국 돌아가야 할 집을 향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모습은, 매일 아침 삶이라는 전장으로 나서는 모든 아버지들의 초상과 닮아 있었다.
수천 년 전 만들어진 이 이야기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50대의 내가 다시 마주한 <오디세이아>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사실 변한 것은 이야기 속 신화의 세계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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