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은 눈치, 휴식은 남 얘기”…38도 폭염에도 안전망 없는 방문점검원

유정민 2026. 8. 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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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온도가 38도 안팎까지 치솟았던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동숭길 일대에서 만난 방문점검원 이경숙(57·여)씨는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연신 땀을 닦으며 이같이 말했다.

20년 넘게 동숭길 일대 사무실과 사업장을 돌며 정수기·공기청정기·비데 등을 점검해 온 이씨는 하루 평균 15~20건을 소화한다. 이날 오전 10시30분, 이씨는 첫 방문지였던 한 건물에서 정수기 필터 교체와 점검 업무를시작했다.

이씨는 "방문 점검할 때는 빠르게 작업해야 한다는 생각에 물 마실 겨를이 없다가 밖에 나와서 물 생각이 난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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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뙤약볕 걷는 방문점검원 일터 동행해 봤더니
에어컨 없는 실내·열악한 이동 여건…“특고 노동자 더위 대책 절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동숭길 일대에서 만난 방문점검원 이경숙(57)씨가 작업 도구를 들고 방문지로 이동하고 있다. 유정민 기자
“이번 여름은 정말 장난 아니네요. 이마, 목덜미, 등줄기에 땀이 막 흘러요. 고객을 만날 때, 땀 냄새 날까 봐 걱정이죠”

체감온도가 38도 안팎까지 치솟았던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동숭길 일대에서 만난 방문점검원 이경숙(57·여)씨는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연신 땀을 닦으며 이같이 말했다.

20년 넘게 동숭길 일대 사무실과 사업장을 돌며 정수기·공기청정기·비데 등을 점검해 온 이씨는 하루 평균 15~20건을 소화한다. 이날 오전 10시30분, 이씨는 첫 방문지였던 한 건물에서 정수기 필터 교체와 점검 업무를시작했다.

작업 장소인 부엌에는 에어컨이 없어 후끈한 공기가 가득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를 정도였다. 이씨는 고객에게 필터 교체 과정을 설명한 뒤 점검에 집중했다. 이씨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이씨는 “목에 물수건을 얹고 일해도 봤지만 땀과 섞여 금방 쉰내가 나는 바람에 포기했다”며 “더워도 참고 버틴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동숭길 일대에서 만난 방문점검원 이경숙(57)씨가 작업 도구를 들고 방문지로 이동하고 있다. 유정민 기자
이씨는 다음 방문지로 향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건당 수입이기 때문에 일을 쉬면 돈을 벌 수가 없다”며 “남들처럼 휴가도 가고 더울 때는 쉬고 싶지만 열심히 일해도 수입이 넉넉지 않아 쉴 수 없다”고 했다.

이씨는 상체를 덮는 크기의 두툼한 대형 가방을 등에 메고 한 손에는 작업 도구가 담긴 플라스틱 통을 들고 있었다. 또 다른 손에는 양산이 들려있었다. 이씨는 “양산이라도 써야 이 날씨에 쓰러지지 않는다”며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으니 내가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일정상 대부분 오후에 일이 몰려 있어서 한창 더울 때 가장 바쁘게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31도 이상인 작업 장소에서 2시간 이상 작업하는 것을 ‘폭염작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업주는 근로자의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2시간마다 20분 이상의 휴식 시간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이씨와 같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는 이같은 규칙 적용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다. 폭염 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지자체 등이 마련한 이동노동자 쉼터가 있지만 작업 장소가 계속 바뀌는 방문점검원들에게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씨는 “쉼터까지 장비를 들고 이동하는 것도 번거롭다”며 “차라리 쉴 시간에 얼른 일을 마치고 퇴근하고 싶다”고 했다.

두 번째 장소에 도착하자 이씨는 땀범벅이 된 얼굴을 휴지로 닦았다. 이곳에서 점검해야 할 기기는 총 5대였다. 에어컨이 있었지만 직원들이 상주하는 공간이 아니라 가동되고 있지 않았다. 이씨는 “에어컨이 있어도 임의로 켜기에는 눈치가 보인다”며 “30분이면 작업이 끝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해서 부탁하기도 애매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비데를 점검하기 위해 들어간 화장실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습하고 더웠다. 더위를 식힐 새도 없이 일해야 했지만 이씨는 “뙤약볕 아래서 이동하는 것보다 이렇게 실내에서 일하는 편이 더 낫다”고 했다.

지난 5일 방문점검원 이경숙(57)씨가 방문지의 비데 필터를 교체하기 위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유정민 기자
오후에는 차량으로 이동하는 구간도 있었다. 이씨의 차는 뜨거운 햇볕 아래 주차돼 있었다. 달궈진 차에 타자마자 에어컨을 강풍으로 틀었다. 그러나 차가 시원해지기도 전에 다음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동 거리가 2~3분 남짓으로 짧은 탓이다. 이씨는 “고객과의 약속 시간을 지키려면 빨리빨리 움직여야 한다”며 “차를 타고 다니면 편한 거 아니냐고들 하지만 차가 더위를 피할 쉼터가 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날 작업하는 내내 이씨는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점심 식사를 하며 마신 것이 전부였다. 이씨는 “방문 점검할 때는 빠르게 작업해야 한다는 생각에 물 마실 겨를이 없다가 밖에 나와서 물 생각이 난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텀블러에 물을 넣어 다녀봤는데 날씨가 더워 금방 미지근해지고 짐만 됐다”며 “정수기를 점검하는 물장수인데 정작 나는 물을 거의 못 마신다”고 한탄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동숭길 일대에서 만난 방문점검원 이경숙(57)씨가 작업 도구를 들고 방문지로 이동하고 있다. 유정민 기자
특수고용 노동자인 이씨는 폭염 속 온열질환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회사 차원의 예방 대책이나 지원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와 달리 주차비 지원이 나오지 않아 전액 사비로 부담해야 한다.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아 도보 이동을 택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씨는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대우가 너무 열악하다”며 “노동자들이 사비로 넥쿨러나 양산을 사서 폭염을 버티게 둘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안전 대책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유정민 기자 y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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