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프라 디벨로퍼…‘뉴 마이웨이’ 개척자 [CEO 라운지]
정재헌 SK텔레콤 사장(58)이 ‘인공지능(AI) 인프라 디벨로퍼’로 조직 정체성 전환을 서두르면서 속도와 실행력을 높이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사업개발 전문회사 ‘SK하이퍼’ 출범으로 아시아 권역 데이터센터 사업자로 존재감을 키울 교두보를 마련하게 됐다. SK하이퍼는 AI 인프라 프로젝트 발굴과 프로젝트별 특수목적법인이나 합작법인을 서로 연결하는 ‘마스터 디벨로퍼’ 역할을 할 전망이다. CEO 취임 초기 ‘법조인 출신’ 꼬리표 탓에 정 사장을 향한 수군거림이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우려 섞인 시선도 잦아들었다. 다만, 최근 들어 AI 산업 변동성이 부쩍 커진 점은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업황 변동성 확대는 부담
최근 SK텔레콤은 AI 데이터센터 사업개발을 전담할 100% 자회사 ‘SK하이퍼’를 설립하고 2030년까지 7500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 6월 29일 발표한 ‘메가 프로젝트’ 실행을 위한 후속 조치다. SK텔레콤은 2029년까지 영남권과 서남권, 충청권에 5기가와트(GW) 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 뒤 2035년까지 이를 총 15GW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SK하이퍼는 데이터센터 부지 확보와 변전소 구축·운영, 고객 유치, 사업화를 아우르는 마스터 디벨로퍼 역할을 한다.
SK그룹 AI 인프라 가치사슬은 계열사별 전문성을 수직적으로 결합하는 구조다. SK이노베이션 E&S와 SK가스가 부지·인허가·전력 확보를 맡고 SK에코플랜트가 시공, SK하이닉스가 HBM과 메모리, SK엔무브가 냉각유를 공급한다. 그룹 차원의 프로젝트 관리와 투자 우선순위 조정은 지주사 SK㈜ 몫이다. SK텔레콤은 계열사의 인프라·기술을 서비스와 매출로 전환하는 역할을 맡는다.
SK그룹 AI 데이터센터 사업이 천문학적 규모로 커지면서 이를 주도하는 정 사장을 주목하는 시선도 늘고 있다. 1단계 5GW 규모 사업만 해도 75만평 부지에 GPU 300만장·HBM 2400만장을 투입하고 약 350조원의 자금이 필요한 초대형 프로젝트다. 부지와 전력 확보, 계열사 간 역할 조정, 글로벌 고객 유치, 외부 자본 조달까지 동시에 풀어야 하는 만큼 정 사장의 사업 조율 능력과 실행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SK텔레콤이 SK하이퍼라는 별도 법인을 세운 것은 기존 통신 사업과 투자·자금 조달 구조가 다른 데이터센터 사업을 독립적으로 추진하고 외부 자본 유치와 프로젝트별 의사결정에 속도를 내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초기 자금이 필요하지만 가동 전까지 현금흐름이 발생하지 않는 장기 투자 사업이다. 이를 SK텔레콤에서 직접 추진하면 통신망 투자와 배당, 신용등급 관리가 데이터센터 투자와 충돌할 수 있다. 별도 법인을 두면 사업별 투자수익률과 부채를 구분하고 SK하이퍼나 개별 프로젝트 법인에 재무적 투자자와 글로벌 빅테크를 주주로 참여시켜 자금 부담을 나눌 수도 있다. 사업이 다소 부진해도 손실과 부채를 프로젝트 단위로 일정 부분 관리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정 사장은 최근 AIDC 얼라이언스 출범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SK하이퍼 설립과 관련, “사업을 유연하게 추진하고 자금을 유치하려면 이를 완전히 전담하는 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의 메모리 경쟁력이 데이터센터 수요까지 보장하는 ‘테넌트 백스톱(tenant backstop·최소 사용량 보장)’으로 이어질지에 관해서는 시각이 나뉜다. 테넌트 백스톱은 데이터센터의 남는 전산 용량을 핵심 고객이 일정 부분 사용하거나 대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해 공실 위험을 떠받치는 구조다. 이렇게 되면 미래 매출 가시성이 높아져 대출이나 투자 유치가 수월해진다. 하지만, SK텔레콤 등이 특정 빅테크와 밀월관계를 맺을 경우 다른 빅테크는 HBM 물량 배분과 기술정보 보호 중립성을 우려할 수 있다. 익명을 원한 IT 업종 애널리스트는 “SK하이퍼가 엔비디아 중심 플랫폼으로 굳어지면 자체 AI 가속기를 운용하는 다른 빅테크의 테넌트·투자자 유치에는 제약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배당 확대 전망도
통신 본업에서는 전산 체계 인공지능 전환과 정보보호 책임 강화가 정 사장이 풀어야 할 과제다. SK텔레콤은 영업과 회선 관리, 과금, 네트워크 운영 등 분절된 기존 시스템을 데이터 통합과 실행 체계 개편, AI 에이전트 배치가 가능한 구조로 재설계하고 있다. 기존 전산망에 AI 기능만 덧붙이는 수준을 넘어 통신사 운영체계를 ‘AI 네이티브’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복잡한 레거시 시스템을 중단 없이 교체하면서 비용 절감과 고객 경험 개선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해킹 사태 이후 이어지고 있는 법적 리스크도 부담이다. 국회에서 집단소송제를 전 산업으로 확대하고 3년 소급과 ‘옵트아웃’(제외 신청 없으면 자동 포함) 방식을 적용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집단소송제에 3년 소급과 옵트아웃 방식이 적용되면 지난해 유심 정보 해킹 사태가 다시 법적 위험으로 부상할 수 있다. 잠재 배상 범위가 전체 피해자로 확대될 수 있어서다.
시장 일각에서는 SK텔레콤 배당이 SK㈜를 거쳐 최태원 회장의 재산분할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7월 24일 서울고법 가사1부(이상주 부장판사)는 최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판단해 천문학적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최 회장의 지난해 주요 수입은 SK㈜와 SK하이닉스에서 받은 보수 82억5000만원과 SK㈜ 배당금 1038억원 등으로, 거액 재산분할금을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SK텔레콤이 배당을 늘리면 최대주주인 SK㈜ 배당수입이 커지고 SK㈜가 이를 토대로 주주환원을 확대하면 최 회장 현금 수입도 늘어난다.
다만, 이런 식의 배당 확대 전망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개인이 부담해야 할 법적 의무를 기업 자본 전략과 연결하는 게 적절한지를 두고 정당성 시비가 일 수 있어서다. 재산분할은 최 회장 개인이 부담해야 할 사법상 의무인 반면, SK텔레콤 현금은 통신망 투자와 AI 데이터센터 사업, 주주환원 등 회사와 전체 주주 이익을 고려해 배분돼야 한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SK텔레콤과 SK㈜ 배당 정책이 영향받는다면 기업의 투자·재무 전략이 지배주주의 사적 자금 수요에 동원된다는 뒷말을 낳을 수 있다. 행동주의펀드 운용사 관계자는 “실적과 투자 여력에 근거한 배당 확대라면 문제가 없지만, 지배주주의 사적 자금 수요가 배당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는 인상을 줄 경우 총수의 유동성 확보를 우선시했다는 지배구조 비판으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71호(2026.08.05~08.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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