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상담 중 냄비에 빠진 아이…원장 무죄 뒤집힌 이유

한영혜 2026. 8. 6. 07:5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모습. 뉴스1

어린이집 입소 상담을 받던 중 원장실을 나와 혼자 돌아다니다 조리실의 뜨거운 국물이 담긴 냄비에 빠져 크게 다친 사고와 관련해 대법원이 어린이집 원장의 업무상 과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최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어린이집 원장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2023년 5월 한 살배기 B군은 어머니와 함께 A씨가 운영하는 충남의 한 어린이집을 찾아 입소 상담을 받았다. 상담 도중 B군이 계속 원장실 밖으로 나가려 하자 A씨는 B군의 어머니에게 “어린이집은 안전하고 밖에 선생님들도 있으니 아이가 어린이집을 자유롭게 탐색하도록 두셔라”고 말한 뒤 B군을 원장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A씨는 이어 거실에서 수업 중이던 보육교사들에게 ‘아이 좀 봐달라’고 말한 뒤 어머니와 상담을 계속하기 위해 원장실로 들어갔다.

혼자 어린이집 내부를 홀로 탐색하며 돌아다니던 B군은 문이 잠기지 않은 조리실에 들어갔고 바닥에 놓여 있던 뜨거운 육개장 냄비 주변에서 넘어지면서 몸 전체가 냄비 안으로 빠져 화상을 입었다.

검찰은 A씨를 냄비 뚜껑을 열어둔 채 조리실 바닥에 둔 조리사와 조리실 문을 잠그지 않은 보육교사와 함께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A씨가 어린이집 원장으로서 영유아의 안전을 확보할 주의의무가 있는데도 아이를 전담해 돌볼 보육교사를 지정하지 않은 채 불특정 보육교사들에게만 아이를 맡긴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1심은 A씨 등 3명 모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은 입소 절차를 마치지 않은 아동에게까지 보육교사를 미리 지정하거나 배치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는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또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조리사와 보육교사의 과실에 있는 만큼 A씨에게 일부 주의의무 위반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사고와의 인과관계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과 다른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은 영유아보육법의 취지를 고려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영유아가 어린이집의 보호 대상이 되는지는 어린이집이 그 영유아에 대한 보호 의무를 실질적으로 인수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사고 당시 피해 아동이 입소한 상태가 아니었더라도 피고인이 입소를 위해 방문한 피해 아동을 보호자에게서 인계받아 적어도 어린이집의 보육영역 안에서 보호 의무를 적극적ㆍ실질적으로 인수했다”며 “피해 아동은 어린이집의 보호 대상이 됐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또 영유아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의 범위는 “영유아의 나이와 발육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A씨가 한 살배기 아동을 원장실 밖으로 내보낼 당시 특정 보육교사를 지정하거나 배치하는 등 보호와 관찰이 실제 이뤄질 수 있도록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으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인정되는 이상, 조리사와 보육교사의 업무상 과실이 경합했다고 해서 피고인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과 사고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단절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유죄 취지로 사건을 원심법원에 돌려보냈다.

한편 A씨와 함께 기소된 조리사와 보육교사는 1심에서 각각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으며 항소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