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변해도 변함없는 법의 목표는 善에 대한 신뢰 보호”

이경원 2026. 8. 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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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부터 2006년까지 판사 및 헌법재판관, 2006년부터 지난 4월까지 검사. 권성(85) 전 재판관과 권내건(48) 전 법무부 법무심의관(차장검사급) 부자의 57년은 한국 법조의 현대사다. 권 전 재판관은 1960년대와 현재의 사법부를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시대 변화와 무관하게 사법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법관의 독립"이라고 말했다. 권 전 재판관은 1995년 대법원 사법제도발전위원회 연구실장일 때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보증금납입 조건부 피의자석방(기소 전 보석) 제도 도입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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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의 질문] 57년 법조史 대이어 함께한 권성 전 헌법재판관·권내건 전 법무심의관 父子
권성(오른쪽) 전 헌법재판관과 권내건 전 법무부 법무심의관 부자는 정치권의 극단적 대립이 사법제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며 안타까워했다. 최현규 기자, 국민일보DB


1969년부터 2006년까지 판사 및 헌법재판관, 2006년부터 지난 4월까지 검사. 권성(85) 전 재판관과 권내건(48) 전 법무부 법무심의관(차장검사급) 부자의 57년은 한국 법조의 현대사다. 아버지는 사법부가 권위주의 정권으로부터 독립성을 지키려던 시절부터 판사였고, 아들은 ‘거악 척결’을 내세운 특별수사 전성시대에 검사로 임관했다. ‘정치적 억압을 버틸 고집 있는 법조인’ 소리를 듣던 아버지는 “여론으로부터의 독립도 중요해지더라”고 회고했다. 특수·공안이 아닌 여성·아동 보호 분야에서 검사의 권한을 활용하던 아들은 지난 4월 수사권 전면 폐지를 앞두고 사직했다.

여론으로부터 독립하려는 판사

권 전 재판관은 1960년대와 현재의 사법부를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시대 변화와 무관하게 사법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법관의 독립”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대가 변함에 따라 국가권력뿐 아니라 여론으로부터의 독립도 법관에게 매우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권 전 재판관은 “정치적인 사안일수록 여론을 동원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하는 일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판사가 판결할 때 여론의 비난을 의식해서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가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권 전 재판관은 1995년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장으로서 전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그대로 확정됐으나 감형에 비난이 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매사 정치적으로 양극화하는 여론은 그를 간편히 ‘보수 성향’이라 분류한다. 하지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는 그가 재판관으로 지명된 2000년 “보수적 성향이 우려되는 제3기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서의 자격은 충분하다” “정치적 억압을 버틸 수 있는 법조인으로서 고집이 보여진다”는 인사평가서를 발표했다. 권 전 재판관은 1992년 고(故) 박종철 열사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신원권’ 법리를 도입, 국가가 ‘아들이 죽은 이유를 알고 싶어하던 부모들의 권리’를 침해했다며 배상액을 높였다.

그는 2001년 재판관 9인 중 홀로 간통죄를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윤리적 비난과 도덕적 회오의 대상이지 국가가 개입해 형벌로 다스릴 일이 아니다”는 소수의견이었는데, 이는 14년 뒤 다수의견이 된다. 검찰의 과잉 수사를 비판할 때마다 거론되는 직권남용죄에 대해 20년 전 유일한 위헌 판단을 남긴 이도 권 전 재판관이다.

권 전 재판관은 1995년 대법원 사법제도발전위원회 연구실장일 때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보증금납입 조건부 피의자석방(기소 전 보석) 제도 도입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당시엔 정부와 대법원이 공동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지금의 개혁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권 전 재판관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거쳤는지 의문”이라고 답했다.

-대법관 증원, 법왜곡죄와 재판소원 신설 등은 바람직한 개선인가.

“법의 왜곡 여부 판단은 누가 법률에 대한 해석 권한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되므로 헌법에 규정돼야 할 것이다. 재판소원 문제 역시 그 가부가 헌법에 규정돼야 할 사항이며, 대법관의 숫자를 급격하게 늘리거나 줄이는 것 역시 재판 구조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헌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헌법적인 거대담론의 문제를 과연 충분한 숙의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거쳐 진행한 것인지 의문이다.”

-법조계의 우려가 컸다. 일반 국민에게 닥칠 본질적 부작용은 무엇인가.

“한 국가가 쇠락하지 않고 흥하기 위해서는 내부 구성원들의 분란을 종식하고, 함께 뜻을 모아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분란을 적기에 종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패자에 대한 승자의 포용 없이는 내분이 성공적으로 종결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패자가 승자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결국 무한히 내분이 반복되다 국가는 쇠락의 길로 가게 된다.”

권 전 재판관은 저서 ‘청강해어 논어 노자’ 후기에서 “헌재와 법원이 재판을 하면서 ‘총통이 자기 입장이라면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이 판결은 국민의 관념과 맞는가’ 하는 반문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자문한다. 그는 “물어볼 곳은 헌법과 법률, 그리고 자기의 양심 이외에는 없어야 한다”고 자답했다.

수사권 잃은 검사의 무기력

권 전 재판관의 아들 권 전 심의관은 2006년 검사로 임관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현대차와 론스타를 수사하던 대형 특별수사의 전성시대였다. 권 전 심의관은 “거악 척결을 위한 검사의 수사능력이 사실상 가장 큰 덕목이었다”며 “‘초임 2년간 보여준 수사능력으로 남은 검사 생활이 정해진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수부·공안부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 검사들은 직구속과 인지 실적을 신경 썼다.

권 전 심의관의 이력은 대체적인 검찰 정서와는 어긋난다. 법무부 공안기획과에서 일한 그는 2017년 공안부 근무를 제의받았으나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여조부)에서 일하기를 희망했다. 권 전 심의관은 “어째서 공안부가 아닌 여조부에 가려고 하는지를 일일이 간부들에게 설명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방식의 수사권 행사로 직업적 보람을 찾았다. 권 전 심의관은 “차마 지나칠 수 없는 비극적 상황에 놓인 사건들을 대하며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마음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발달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단순 처벌 대신 맞춤형 보호를 제공하는 교육조건부 기소유예를 검찰 최초로 시도했다. 대전지검에서는 출생신고 없이 17년간 방치된 ‘유령 아동’을 발견해 검사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이제 ‘수사하는 검사’는 사라진다. 권 전 심의관은 지난 4월 “부당한 행태나 안타까운 사정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을 수 있었던 점이 검사로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자 현 제도의 장점이었다”며 20년 검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가 길을 열었던 일들은 수사권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들이다. 그가 떠난 뒤 검찰은 무기력증에 빠진 모습이었다.

-검찰의 자업자득이라는 여론도 있다.

“검찰의 처분이 잘못돼 신뢰를 받지 못한 사건이 있다면 실력이 부족했거나 사심이 개입했거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건 법조인으로서는 크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유다.”

-검사 수사권 폐지가 왜 본질적인 해결 방안이 되지 못한다고 보나.

“수사권을 폐지해도 누군가는 수사를 해야 하고, 그러면 똑같은 문제가 그대로 발생한다. 과거 검찰에서 문제됐던 사건이 똑같이 경찰에서 발생했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검찰보다 적정하게 잘 처리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이미 너무나 많은 분들이 ‘그렇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끊임없는 정치와 법치의 갈등

72년 만의 검사 수사권 폐지를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우려 속에 국회를 통과했다. 범죄 피해자, 형사법 교수, 법원과 검찰이 혼란과 부작용을 걱정했다.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은 보완수사 폐지가 위헌이라는 의견을 공개 표명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4일 국민일보에 “지금도 그 소신은 변함이 없다. 헌법의 기본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치와 법치, 여론·권력과 법의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제도가 바뀌고, 사회는 분열될 수밖에 없다. 제도가 계속 변해도 변하지 않아야 할 법의 정신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법이란 무엇이어야 할까. 권 전 재판관은 “‘선에 대한 신뢰의 보호’가 법의 목표”라고 답했다.

“인류의 역사가 지나온 방향을 보면 때때로 후퇴하는 것처럼 보였던 때도 있지만, 결국은 ‘이 세상은 보다 선하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실현돼온 과정이었고, 자유와 인권이 신장되는 방향이었다. 자유와 인권의 보호, 그리고 ‘선에 대한 신뢰의 보호’가 법의 목표이자 원리라는 것을 법조인은 항상 명심해야 한다.”

권 전 심의관에게도 “법이란 무엇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건넸다. 그는 대답할 수준이 못 된다며 답변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언행일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만 들었다”고 말했다.

이경원 이슈&인터뷰팀장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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