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실패의 '그림자' 가장 가까운 곳부터 삼켰다…가족 다툼 잦아지더니 끝내 파괴[장밋'빚'투자]①

이지예 2026. 8. 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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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뒤처지는 것 아닐까." 코스피 랠리를 좇아 많은 이가 주식시장으로 뛰어들었다. 5일 아시아경제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 법원에서 선고한 형사사건 중 범행 동기가 '주식 투자'이거나 범죄 사실이 '투자 관련 범행'인 사건 판결문 726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10건 중 7건은 사기 관련 혐의로 나타났다. 투자 실패 이후 가족이나 주변에 화풀이한 사례를 일부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한국범죄심리학회장을 지낸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하거나 좌절감을 느끼면 공격성으로 표출될 수 있다"며 "지금과 같은 주식 투자 열풍에서 실패감을 강하게 느낀다면 폭력적인 행동으로 발현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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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726건 보니…조직적 형태로 범죄 발전
투자 실패, 채무 압박…가까운 곳부터 겨눴다
"경제적 좌절, 범행동기 강화…폭력으로 발현"
편집자주
"나만 뒤처지는 것 아닐까." 코스피 랠리를 좇아 많은 이가 주식시장으로 뛰어들었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도 자산 격차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불안은 투자를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만들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넘쳐나는 성공담은 모두의 현실이 되지 못했다. 실패의 대가는 계좌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손실을 만회해야 한다는 압박은 더 큰 빚을 불렀다. 감당하지 못한 책임은 주변으로 전가됐다. 원금 보장과 고수익을 내세운 범죄도 진화했다. 보통 사람들의 절박함을 제물로 삼았다. 아시아경제는 판결문 726건에 담긴 실제 사건과 정신의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장밋빛 전망에 가려진 '빚투(빚내서 투자)'의 그림자를 조명한다.
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증시와 환율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주식에 빠진 A씨는 사실혼 배우자의 모친에게 손을 벌렸다. 주택 담보 대출금까지 끌어당겨 7억8000만원을 빌렸다. 투자는 실패했고 10억원 넘는 빚더미에 앉았다.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처형과의 관계도 틀어졌다. A씨는 가족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처형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A씨는 1심에서 징역 30년을 받고도 항소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는 지난해 4월 원심을 확정했다.

#손실에 대한 원망은 가까운 관계부터 무너뜨렸다. B씨는 수년째 외사촌과 그의 어머니를 간병해왔다. 주식 투자에 실패한 뒤부터 '외사촌 모친을 간병하느라 주식을 관리하지 못한 탓'이라는 망상에 빠졌다. 형제 같던 외사촌과 다투기 시작했고 끝내 흉기를 휘두르고 말았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1부는 지난해 9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주식 투자 열풍의 이면에서 수익에 대한 비뚤어진 욕망과 좌절이 각종 범죄로 번지고 있다. 고수익을 미끼로 내건 사기 범죄가 조직적으로 발전하며 'n차 피해'를 양산했다. 나아가 투자 실패와 채무 압박은 가족처럼 가까운 관계부터 망가뜨렸다. 투자 실패가 개인의 경제적 좌절을 넘어 재산과 생명까지 위협하는 사회적 폐해로 확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판결문 762건 보니…사기 넘어 강력범죄도 유발

5일 아시아경제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 법원에서 선고한 형사사건 중 범행 동기가 '주식 투자'이거나 범죄 사실이 '투자 관련 범행'인 사건 판결문 726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10건 중 7건은 사기 관련 혐의로 나타났다. 특히 투자 관련 범죄는 단순한 개인 사기나 일회성 범행에 머무르지 않고 통신수단 활용, 분업체계 등을 갖춘 형태로 조직화된 것으로 분석됐다.

죄종별로 보면 사기·사기미수·사기방조(특정경제범죄법 포함) 등이 515건(70.9%)으로 가장 많았다.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67건(9.2%), 범죄단체 조직·가입 32건(4.4%) 등이 뒤를 이었다.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는 범행에 대포폰 등 통신 인프라가 동원됐다는 점을 시사한다. 범죄단체 관련 혐의는 지휘체계와 역할 분담까지 갖춘 조직적인 범행을 의미한다. 이는 투자 관련 범죄의 일정 부분이 단순 일탈·사기를 넘어 조직화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절대적인 규모는 작지만 피해의 성격이 중대했던 건 강력·폭력범죄 18건(2.5%)이다. 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 등 5대 강력범죄뿐만 아니라 상해·협박·방화·감금·자살방조 등 다양한 범죄를 야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내지는 손실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이 재산상 피해를 넘어 생명과 신체를 위협하는 범죄로 번진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726건 중 유죄 판단이 내려진 703건의 선고형은 징역 472건(65.0%), 집행유예 177건(24.4%), 벌금 54건(7.4%) 등 분포를 보였다. 실형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합치면 전체의 89.4%를 차지했다. 법원이 재판에 넘겨진 상당수 사건의 죄질을 가볍게 보지 않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무너진 사다리' 좌절감, 공격성 키우는 요인 작용
증권사 앱을 이용해 주식을 거래하는 모습. 김현민 기자

주가가 오를 땐 주식이 자산을 불릴 수 있는 기회의 사다리로 여겨졌다. 그러나 가파른 주가 하락을 겪으며 폐해는 눈에 띄게 커졌다. 손실을 만회해야 한다는 압박과 주변의 성공에서 오는 박탈감, 채무와 책임에 대한 공방이 중첩되며 관계가 무너지고 범죄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투자 실패 이후 가족이나 주변에 화풀이한 사례를 일부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아직 주식 투자와 범죄를 직접 연결한 분석은 없지만, 실제로 급격한 경제적 위기가 폭력범죄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윤우석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제위기 상황과 범죄 발생의 관계 검증' 연구에서 1995~2005년 경제 지표와 5대 범죄 발생 건수를 시계열에 따라 분석·제시했다.

분석 결과 연구기간 전체로 보면 경제적 위기와 5대 범죄 간 유의미한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외환위기 시기로 범위를 좁히자 급격한 실업 증가 등이 살인·강도·폭행 발생을 늘리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경제 문제가 모든 범죄를 일률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살인·강도·폭행 등 일부 폭력범죄의 동기를 강화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게 연구의 결론이다.

전문가들 의견도 같다. 한국범죄심리학회장을 지낸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하거나 좌절감을 느끼면 공격성으로 표출될 수 있다"며 "지금과 같은 주식 투자 열풍에서 실패감을 강하게 느낀다면 폭력적인 행동으로 발현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특히 강력범죄 피해자 가운데 가족·지인 등 가까운 관계가 적지 않았던 점에 대해서는 "실제로 좌절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이면 접촉 빈도가 높은 주변인과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이 과정에서 돈이 결부되면 폭력적인 성향이 더 증폭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지예 기자 easy@asiae.co.kr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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