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애만 던져요"... 국가가 민간 시스템을 지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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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아동을 위한 가정위탁제도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 2022년 도입된 전문위탁가정은 민간 차원에서 운영됐던 입양기관 위탁 업무를 강제중단 시키면서 대안으로 만든 제도다.
가정위탁제도가 법으로 자리 잡은 건 2003년이다.
2022년 국가가 전문위탁가정 제도를 도입하면서 민간시스템은 정리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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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아동을 위한 가정위탁제도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 혈연 중심으로 조손가정에서 돌보는 대리양육가정과 친인척위탁가정은 전체 위탁가정의 90%를 차지한다. 10%의 비혈연 위탁가정에는 일반위탁가정과 영유아중심의 전문위탁가정이 있다. 2022년 도입된 전문위탁가정은 민간 차원에서 운영됐던 입양기관 위탁 업무를 강제중단 시키면서 대안으로 만든 제도다. 지금은 사라진 입양기관 위탁제도와 대신해서 만들어진 전문위탁가정 제도를 두루 경험한 위탁모는 6월 9일 지방에서, 위탁 업무를 담당했던 전직 입양기관 직원은 6월 29일 서울에서 인터뷰했다. <기자말>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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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 자료사진. |
| ⓒ 연합=OGQ |
정씨(60)는 18년 동안 입양기관 위탁모로 있다가 2022년 전문위탁가정 제도 시행 이후 전문위탁가정으로 전환한 소수의 위탁모 중 한 명이다. 지금까지 거쳐 간 아이만 30명 내외다. 마지막으로 그녀 품에서 자란 아이는 해외로 입양을 갔다.
최씨(여, 50대)는 입양기관에서 위탁 업무를 관리했던 전직 입양기관 담당자였다. 두 사람의 기억을 따라가 보면 국가가 60년 넘게 방치해 온 보호아동 가정보호 체계의 단면이 드러난다. 아울러 제도의 공백을 메워왔던 민간의 전문성이 국가 행정에 의해 어떻게 버려지는지도 알게 된다. 최씨는 이렇게 말했다.
"위탁 과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근거 지침이나 법령은 없었어요. 60~70년대부터도 있었을 거예요."
법도 지침도 없었다. 아이가 시설로 가서 시설장이 법적 후견인이 되는 순간 아이의 운명은 그걸로 끝이었다. 대부분의 시설장은 아이를 입양이나 위탁으로 가정보호 시켜야 할 동기가 전혀 없었다. 시설 운영에 가장 필수적인 존재가 아이들이었다.
숫자 뒤에 아이가 있었다
입양기관들은 해외 사례를 보고 배우며 자체적으로 위탁 시스템을 만들었다. 예산도 스스로 마련했다. 후원금과 해외 입양 수수료로 위탁비를 충당했다. 1999년 기준 월 30만 ~ 40만 원. "국가로부터는 한 푼도 지원된 금액이 없었다"고 최씨는 잘라 말했다. 입양기관에서는 위탁비와 별도로 분유와 기저귀 등의 육아용품도 매달 지원했다.
우리나라 위탁가정의 90%가 조손과 친인척인 혈연 위탁인 데 반해 입양기관 위탁모들은 100%가 비혈연위탁이다. 최씨는 당시 기관이 관리한 위탁모 규모가 정확하진 않지만 '200~300명 정도'로 기억했다. 가장 규모가 컸던 기관이 400명 수준이었으니 4대 입양기관에서 1200~1500가정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기준 국가에서 관리하는 일반위탁가정이 800여 가정이라는 걸 감안하면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숫자 뒤에는 아이가 있었다. 갓 태어난 아이는 교대 근무하는 보육사가 아니라 한 엄마의 품에서 애착을 쌓으며 자라다 새 부모의 품에 안겼다. 위탁모를 구하는 방법도 지금과는 달랐다. 최씨는 "교차로나 벼룩시장 같은데 홍보도 하고, 전단을 만들어 아파트 단지를 돌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가 일했던 기관은 오래된 주공아파트 단지를 자주 찾았다. 조용하고 안정적인 그리고 인정이 살아 있는 동네였다.
자격요건은 단출했다. 결혼했을 것,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을 것, 부부가 함께 동의할 것. 그 시절에도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가정을 우선했다. 종교도 은근히 따졌다. 특이한 신앙을 가진 집은 피했다. "아이를 맡겨야 하니 최선의 안전선을 찾으려 했다"고 최씨는 말했다.
수십 년이다. 위탁모를 찾고, 교육하고, 관리하는 일에 입양기관은 그만큼의 시간을 들였다. 최씨는 "사회복지사가 아이를 돌보는 법, 분유 타는 법까지 교육했고, 예방 접종 수첩과 의료급여 관리번호까지 기관이 직접 쳥겼다"고 말했다. 위탁모인 정씨도 같은 기억을 갖고 있다.
"선생님한테 조금만 이상하다고 말하면 바로 확인하고 예약해 병원에 데려가 줬어요. 담당 선생님 밑에 위탁모가 있어서 아이 성향도, 건강 상태도 계속 (서로) 알고 있는 구조였죠."
병원도 따로 있었다. 최씨가 일하던 기관 근처에는 시립병원 안에 아이들만 쓰는 병실이 있었다. 감기부터 장염까지, 아이들은 정해진 병원에서만 진료를 받았다. 예방접종 수첩은 반드시 사무실을 거쳐야 나갔다. 최씨의 말이다.
"그래야 아이가 한 번이라도 더 체크가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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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탁모와 아이 |
| ⓒ AI가 만든 사진-제미나이 |
2022년 국가가 전문위탁가정 제도를 도입하면서 민간시스템은 정리 대상이 됐다. 기존 위탁모 다수가 일반입양부모 자격에 준하는 까다로운 자격심사 기준에 못 미쳤다. 가장 가슴 아픈 탈락사유는 나이제한이었다.
수십 명의 아이를 돌보면서 몸으로 익힌 양육 능력도 60세가 넘었다는 이유로 단절시켰다. 건강을 증명하려 해도 소용없었다. 공적 행정의 기계적 잣대는 아동 최우선의 이익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여기(전문위탁)는 60세가 정년이라 저는 계속 아기를 보고 싶어도 못 봐요."
아이가 좋아서 시작한 위탁모였고 서른 명 넘는 아이를 돌본 경험이 있으며 아직 건강한 정씨의 말이다. 그가 전에 몸담았던 입양기관은 정년이 70세였다. 그래도 아무 문제 없었다. 그러던 것이 국가사업이 되면서 문턱이 높아졌다. 수십 년 쌓인 노하우를 흡수할 방법을 국가는 만들지 않았다. 대신 입양기관을 지우는 방식을 택하면서 시스템의 좋았던 부분마저 부정당했다.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전문위탁으로 넘어와 처음 맡은 아기는 목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정씨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그는 입양기관 시절을 이렇게 기억했다.
"(지정된) 병원에 가면 다 예약되고 저는 아기만 이렇게 하면 됐어요."
지금은 달랐다. 담당 기관도, 시청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정씨는 아이의 상태를 발견하고도 어디로 가야 할지부터 스스로 알아내야 했다. MRI는 돌이 지나야 찍을 수 있다는 답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재활의학과가 있는 인근 의료원을 찾아냈다. 예약도, 통원도, 치료 도구를 사는 것도 전부 자신의 몫이었다. 담당 기관 직원이 동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없어요. 전혀 없어요. 지금은 그냥 애만 던져요."
1년 새 세 번 바뀐 담당 공무원
나이 제한에 걸린 정씨가 지금 마지막으로 돌보는 아이는 시설에서 5개월 만에 온 아이였다. 그런데 그 5개월 동안의 건강 발달 기록은 제대로 넘어오지 않았다.
"인지가 100일 수준밖에 안 됐어요."
병원 진료 결과는 담당 공무원에게 서면으로만 전달된다. 정씨가 직접 겪은 아이의 변화는 전달되지 않는다. 그는 결국 아이의 재활 치료를 스스로 중단했다. "재활을 계속 다니면 늦다는 기록만 남을까 봐"였다. 담당 공무원은 1년 사이 세 번 바뀌었다.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시청도, 아동권리보장원도, 위탁을 관리하는 재단도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 그 사이에서 아이의 발달 과정을 계속 이어받아 챙기는 담당자는 없다. 정씨는 그 공백을 이렇게 짚었다.
"만약에 제가 나서서 가르쳐 주지 않았으면, 그냥 그 종이에 쓰여 있는 게 다겠죠."
여기저기로 분절된 담당자들이 아는 건 서류 한 장이 전부라는 뜻이다. 아이를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은 위탁모 한 사람뿐이다. 그 지식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과거 해외 입양 갔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 한국을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정씨가 오래전 키워 보낸 아이가 열아홉 살이 되어 지난달 엄마와 함께 한국에 와서 정씨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 아이는 정씨가 지금껏 돌 본 아이 중 가장 오래 길렀던 아이였다. 보통은 8~9개월 안에 해외로 갔지만 그 아이는 사시가 있어 수술이 필요했다. 그런 아이를 계속 맡아 키울지 시설로 되돌려 보낼지는 순전히 정씨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정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가 그때 포기했으면 입양을 못 갔을 거예요. 여기서 커서 시설에 갔으면 놀림도 많이 받았을 거예요. 그 아이 인생을 바꿔준 거죠."
그렇게 돌아온 아이와의 만남을 주선해 줄 곳이 없었다. 아동권리보장원에 전화했더니 자기들 업무에 없는 일이라고 했다. 결국 예전 입양기관 직원이 통역과 만남 자리까지 챙겨줬다.
전문위탁제도의 실상
정씨는 최근 시사 프로그램 얘기를 꺼냈다. 예비 입양 부모가 18개월까지 아이를 원한다고 했는데 우편으로 4살짜리 아이와 결연됐다는 통보가 왔다는 사례였다.
"(국가에서는) 결국은 서류로 움직이고,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같은 일을 민간 중심이었을 때와 국가 중심이었을 때 직접 경험한 당사자로서 현장과 동떨어진 '행정중심'의 공적체계를 빗댄 말이었다. 국가의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며 법과 제도 정비를 서둘렀던 행정부에서 내건 슬로건은 '아동중심'의 공적체계였다.
2025년 정부는 지방으로 넘겼던 가정위탁제도를 중앙으로 되가져오겠다고 밝혔다. 일 년이 지난 지금 구체적인 로드맵은 아직 없고 남은 건 선언뿐이다.
정씨 같은 위탁모들이 수십 년간 몸으로 만든 것은 매뉴얼이 아니었다. 아이 하나하나의 얼굴과 습관, 울음소리를 구분하는 감각이었다. 그 감각은 서류로 옮겨지지 않는다.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제도가 개편될 때마다 감각은 함께 사라진다.
지금 국가가 로드맵을 만들면서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예산이나 조직도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국가가 외면했던 아이들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이어받을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공적 체계로의 개편은 그동안 국가를 대신해 온 민간 체계의 감각과 전문성을 최대한 살려내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에 대한 피해는 단순히 돈이나 물적 손해가 아니다. 앞으로 백 년을 살아갈 한 아이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정씨가 남긴 마지막 말은 공적 체계 개편과 맞물려 시행된 전문위탁제도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여기는 그냥 애기만 주면 끝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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