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을 법원 판결... 기억해야 할 의미심장한 문장 [소셜 코리아]

우상범 2026. 8. 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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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지난 7월 3일 서울고등법원은 배달 라이더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영국 대법원은 2021년 우버 운전기사를 자영업자가 아닌 근로자(worker)로 인정하며 최저임금과 유급휴가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 판결과 ILO 제193호 협약 채택은 이러한 제도 개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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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국제사회는 이미 플랫폼 노동 보호 강화... 이젠 한국이 나설 시간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우상범]

 법원이 처음으로 배달 라이더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판결을 내린 7월 8일 서울 시내에서 배달 노동자가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노동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는 배달, 대리운전, 택배, 가사서비스부터 프리랜서 번역과 디자인, 소프트웨어 개발 등 전문적 영역까지 펼쳐져 있다.

근로자와 자영업자, 그 사이의 사람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노동자는 약 88만 명이다. 플랫폼은 노동자와 소비자를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분명 긍정적인 기능을 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기존 노동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현실이 존재한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기본적으로 '근로자'와 '자영업자'라는 이분법 위에 세워져 있다. 근로기준법 제2조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즉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근로자로 인정되면 최저임금, 연차휴가, 해고 제한 등의 보호를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법의 보호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플랫폼 노동자 대부분이 위탁계약이나 프리랜서 계약, 개인사업자로 일하고 있어 근로기준법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플랫폼 노동이 증가할수록 법의 사각지대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배달 라이더, 근로자로 인정받다

최근 중요한 판결이 나왔다. 지난 7월 3일 서울고등법원은 배달 라이더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둘러싼 판결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배달 라이더에 대해 근로자성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2021년부터 배달대행업체 지점에 소속돼 일해온 라이더 A씨에게 회사는 업무위탁 계약 해지를 통보하며 배달조끼와 오토바이 등 지급 물품의 반납을 요구했다. A씨는 계약 명칭이야 어쨌든 실제로는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했다며, 해고무효 확인과 미지급 임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2심인 서울고등법원은 근로자성을 인정하며 회사의 계약해지를 부당해고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계약서의 이름이 아니라 실제 노동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배달 라이더는 회사가 운영하는 플랫폼 앱을 통해서만 배달업무를 수행했고, 업무 수행방식과 보수체계 역시 회사가 정한 기준을 따랐다. 겉으로는 배달 요청을 개별적으로 수락하는 독립된 자영업자의 모습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플랫폼 알고리즘과 운영업체의 지시·통제에 따라 업무가 배정되고 수행됐다. 즉 형식적으로는 자영업자인데, 실제로는 플랫폼 업체의 지휘·감독 아래 노무를 제공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판결문에 의미심장한 문장을 남겼다. 플랫폼 노동의 특성을 반영한 별도 법이 만들어지면 좋지만, 법이 없다는 이유로 근로자성을 부정해서는 안 되며 법원이 근로기준법을 탄력적으로 해석해 실질적인 노동관계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판결로 배달의민족이나 쿠팡이츠뿐 아니라 대리운전, 가사서비스, 배송서비스 등 다른 플랫폼 업종으로도 근로자성 논의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제사회는 플랫폼 노동자 보호 움직임 강화

국제사회는 이미 적극적으로 플랫폼 노동자를 기존 노동법의 보호망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 상징적인 결과물이 올해 국제노동기구(ILO)가 채택한 '플랫폼 경제에서 양질의 노동에 관한 협약(제193호)'이다. 지난 6월 제114차 국제노동총회에서 채택된 이 협약은 찬성 406표, 반대 9표, 기권 36표라는 압도적 지지로 통과됐다. 우리 정부와 노동자 대표도 찬성표를 던지며 플랫폼 노동자 보호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물론 사용자 대표는 반대표를 던졌다.

ILO 제193호 협약은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최초의 국제기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협약은 크게 세 가지 원칙을 담고 있다. 첫째,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차별금지와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환경을 요구할 수 있다(제3조). 둘째, 생명과 건강에 중대한 위험이 있을 경우 작업을 중단할 권리를 인정하고(제5조), 무엇보다 고용관계를 계약 명칭이 아니라 실제 업무수행 방식과 보수 지급 등 실질적 관계로 판단하도록 명시했다(제9조). 셋째, 알고리즘의 사전 고지와 자동화 의사결정에 대한 인간의 개입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제13조), 법률, 단체협약, 판결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협약을 이행하도록 했다(제24조).
 ILO 제193호 주요 협약
ⓒ 우상범 정리
이는 최근 서울고등법원이 제시한 '실질적 근로관계에 따른 근로자성 판단'과 동일한 방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여기에 적정한 보수와 사회보장, 알고리즘의 투명성, 자동화된 의사결정에 대한 설명 요구권과 인간의 재검토권까지 담아, 플랫폼 노동에서 새롭게 등장한 문제들을 국제기준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여러 나라의 입법과 판결에서 확인된다. 영국 대법원은 2021년 우버 운전기사를 자영업자가 아닌 근로자(worker)로 인정하며 최저임금과 유급휴가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프랑스 대법원도 우버 운전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했고, 최저임금 보호와 단체교섭권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스페인은 일명 '라이더법(Rider Law)'을 통해 배달 플랫폼 노동자를 원칙적으로 근로자로 추정하도록 했고, 독일 연방노동법원도 앱을 통해 일감을 받는 크라우드워커(Crowd worker)의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국가마다 제도는 다르지만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법의 보호체계 안으로 편입하려는 방향은 공통적이다. 즉, 플랫폼 노동을 노동법의 사각지대로 남겨두지 않고, 새로운 노동형태에 맞춰 보호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근로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 조합원들이 2025년 7월 1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 도로에서 열린 ‘7.16 라이더 대행진’에 앞서 오토바이를 정렬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안전배달료 도입과 배달료 착취 구조 개선을 촉구했다.
ⓒ 이희훈
이번 판결로 우리나라의 상황이 곧장 나아지진 않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배달, 대리운전, 택배, 퀵서비스 같은 플랫폼 산업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상당수 노동자는 여전히 근로기준법과 사회보험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는 최저임금위원회 논의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는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여부를 검토하는 연구를 진행했고, 배달 라이더, 대리운전기사 등 일부 직종에는 최저임금 적용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노동계는 이를 근거로 건당 최저임금 적용을 요구했지만, 사용자 측의 반대에 부딪혀 표결 끝에 안건이 부결됐다. 플랫폼 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이 여전히 중요한 정책과제로 남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과 관련하여 최근 가장 주목 받는 것은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다. 이 법은 근로자 여부를 기준으로 권리를 나누던 기존 법체계만으로는 플랫폼 노동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이 법은 근로기준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보호가 미치지 않는 영역을 보완하는 성격을 갖는다.

가장 큰 특징은 보호 대상을 '근로자'가 아닌 '일하는 사람'으로 넓힌다는 점이다. 계약의 형식이나 고용형태와 무관하게, 다른 사람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인 노동권과 사회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프리랜서, 특수고용직 포함)의 공정한 계약, 적정한 보수,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 차별금지, 사회보험 같은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법의 핵심 취지다.

노동시장의 변화에 맞춰 노동법의 울타리를 현실에 맞게 넓히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서울고등법원 판결과 ILO 제193호 협약 채택은 이러한 제도 개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보여준다. 플랫폼 노동을 새로운 노동형태로 인정하되, 노동권 보호는 기존 노동법의 기본원칙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국내외에서 공통된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 보호, 이제는 제도적 개선의 시간

이번 서울고등법원의 배달 라이더 근로자성 인정 판결은 우리나라 플랫폼 노동 보호체계 구축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아울러 ILO 제193호 협약과 유럽의 플랫폼 노동자들의 보호 사례들은 이를 든든히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 보장이 더 이상 개별 판결에 의존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제도 개선 과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조속한 제정,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방안 마련, 그리고 ILO 제193호 협약의 신속한 비준이 함께 추진될 때, 플랫폼 노동은 노동법의 사각지대가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존엄과 권리를 보장받는 노동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제도 개선을 통해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할 시점이다.
 우상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 본인
필자 소개 : 우상범은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입니다. 단체교섭·사회적 대화·노조 조직화·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 및 노사관계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합니다. 최근에는 산업구조 변화 속 노동권 보호와 지속가능한 노사관계 구축 방안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주요 연구보고서 및 논문으로는 「택배노동자의 노동 및 안전보건」, 「인공지능과 노동」, 「플랜트건설의 노사관계 조정시스템 구축 방안」, 「비정규직 이해와 노조 조직화 방식」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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