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있지만 쓸 돈이 없다”…노인빈곤율 40% 한국 노후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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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인 10명 중 4명은 빈곤선 아래에 있지만 소득 하위 가구의 절반 이상은 집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과 주택 등 노후자산이 있어도 이를 매달 쓸 수 있는 생활비로 전환하지 못하면서 집은 있지만 현금은 없는 한국형 노인빈곤이 고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요청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한국을 비롯한 OECD 국가의 노인 소득과 보유자산, 퇴직연금 및 주택연금 제도를 비교했다.
자산이 없는 저소득 노인에게 지원을 집중하는 한편 주택이나 퇴직자산을 가진 노인에게는 이를 정기소득으로 전환할 수단을 넓혀야 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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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하위 20% 가구 53.8%는 주택 보유
퇴직연금 수급자 83.5%는 여전히 일시금 선택
OECD “소득뿐 아니라 자산까지 고려한 노후대책 필요”

한국 노인 10명 중 4명은 빈곤선 아래에 있지만 소득 하위 가구의 절반 이상은 집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과 주택 등 노후자산이 있어도 이를 매달 쓸 수 있는 생활비로 전환하지 못하면서 집은 있지만 현금은 없는 한국형 노인빈곤이 고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노인의 소득보장을 위한 효율적인 재정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소득빈곤율은 39.7%로 OECD 평균(14.8%)의 2.7배에 달했다. 남성 노인의 빈곤율은 32.6%, 여성은 45.0%로 성별 격차도 컸다. 한국 전체 인구의 빈곤율 14.9%와 비교하면 노인빈곤율은 24.8%포인트 높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요청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한국을 비롯한 OECD 국가의 노인 소득과 보유자산, 퇴직연금 및 주택연금 제도를 비교했다.
국내 최신 통계에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 고령자 통계’를 보면 2023년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39.8%였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연금 수급률은 90.9%까지 높아졌지만 월평균 수급액은 69만5000원에 그쳤다. 연금을 받는 사람이 늘었어도 빈곤에서 벗어날 만큼 충분한 소득을 확보하지 못한 셈이다.
한국의 공적·의무 연금 지출은 2022년 국내총생산(GDP)의 4.9%로 OECD 평균(9.1%)보다 낮았다. 국민연금이 1988년에 도입돼 현재 고령층 가운데 가입 기간이 짧거나 보험료를 충분히 내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제도가 성숙하면 미래 수급자의 보장 수준은 개선될 수 있지만 현재 노인의 빈곤 문제는 당장 해소되기 어렵다는 게 OECD의 진단이다.

다만 OECD는 소득만으로 한국 노인의 경제적 형편을 판단하면 실제 모습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금소득은 적어도 평생 축적한 주택과 금융자산을 가진 고령층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소득 하위 20% 가구 가운데 자가 보유 가구 비율은 53.8%였다. OECD 평균은 담보대출 없이 집을 보유한 비율이 45.1%, 주택담보대출을 낀 보유 비율이 10.4%였다. 한국 수치는 담보대출 유무가 구분되지 않아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53.8%는 노인 가구만 따로 집계한 수치는 아니다. 다만 OECD는 일반적으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주택 보유율이 상승하는 만큼 고령층의 주택 보유 비중도 상당할 것으로 봤다. 국내 통계상 2024년 가구주가 65세 이상인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4억6594만원이었다.
평균 순자산이 높다고 모든 빈곤 노인이 집이나 금융자산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고가 주택을 가진 일부 가구가 평균을 끌어올릴 수 있고, 무주택·무자산 노인은 소득과 자산이 모두 부족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고령층 자산이 부동산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노후소득 정책의 핵심 문제다. 집은 주거 안정을 제공하고 월세 부담을 줄이지만 식비와 의료비, 돌봄 비용을 충당할 현금을 직접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퇴직자산도 안정적인 노후소득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OECD 보고서는 2018년 한국에서 퇴직급여 수급 자격을 얻은 사람의 95% 이상이 연금 대신 일시금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연금 수령 비중이 다소 높아졌지만 일시금 선호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수급을 시작한 60만1000명 가운데 50만2000명(83.5%)이 일시금을 선택했다. 연금으로 받은 사람은 16.5%에 그쳤다. 연금을 선택한 사람도 82%가 10년 이하 상품을 골랐고 20년을 초과해 받는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는 상황에서도 퇴직연금이 종신 생활비가 아니라 목돈이나 단기 인출 자금처럼 쓰이는 셈이다.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000억원으로 처음 500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자산 규모가 커지는 것과 이를 은퇴 후 평생소득으로 전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퇴직연금 500조원 시대가 열렸는데도 대다수 수급자는 여전히 일시금을 선택하는 모순이 나타나고 있다.
OECD는 일시금과 연금 간 세제 차이만으로는 연금 수령을 충분히 유도하기 어렵다고 봤다.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받으면 세 부담이 줄지만 주택대출 상환이나 자녀 지원 등에 목돈이 필요한 가입자에게는 당장의 유동성이 더 중요할 수 있어서다. 이에 연금 수령을 기본값으로 설정하되 원하면 일시금으로 바꿀 수 있게 하거나, 일시금과 종신연금을 결합한 상품을 확대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주택연금은 집에 묶인 자산을 현금흐름으로 바꾸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OECD는 2018년 기준 주택연금 이용자가 60세 이상 인구의 약 1%에 불과했다며 상속 의향과 집값 상승 기대, 복리 이자 부담, 낮은 제도 이해도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이후 가입자는 꾸준히 늘어 2025년 말 누적 15만명을 넘어섰다. 가입자의 평균 연령은 72.4세, 담보 주택의 평균 가격은 3억9600만원이었고 월평균 수령액은 약 127만원이었다. 이는 고령자의 평균 연금 수급액 69만5000원보다 많아 기존 연금에 더할 경우 노후 현금흐름을 보완할 수 있다. 다만 무주택 노인은 이용할 수 없고 저가 주택 보유자는 받을 수 있는 금액도 적다는 한계가 있다.

OECD가 제시한 해법은 소득과 자산을 함께 살펴 공적 지원을 보다 정교하게 배분하는 것이다. 자산이 없는 저소득 노인에게 지원을 집중하는 한편 주택이나 퇴직자산을 가진 노인에게는 이를 정기소득으로 전환할 수단을 넓혀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이를 ‘집이 있으면 기초연금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주택은 매각하거나 담보로 제공하지 않는 한 생활비로 바로 쓸 수 없고 지방의 저가주택은 환금성도 낮다. 거주 중인 집을 금융자산과 똑같이 취급하면 취약 노인의 주거 안정을 해칠 수 있다.
결국 한국 노인빈곤의 핵심은 자산의 유무보다 자산과 소득의 불일치에 있다. 공적연금만으로 생활하기에는 수령액이 적고 퇴직연금은 일시금으로 빠져나가며 개인 자산의 상당 부분은 집에 묶여 있다. OECD는 “소득뿐 아니라 연금과 금융자산, 주택자산을 함께 보는 종합적인 노후소득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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