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에 처음, 55살에 마지막... 제주 어부의 상어잡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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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가 나타났다!" 한반도 바다의 아열대, 열대화 징후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은 제주도의 상어, 나아가 기후위기로 더욱 출몰이 잦은 대형 상어를 기록하는 <상어 기록단> 을 꾸렸습니다. "3~5월 사이 봄에 갔어요. 겨울 관탈은 북서풍이 강하게 불어 조업할 엄두가 나질 않죠. 무엇보다 썰물 때에 맞춰 가야 해요. 상어여가 서쪽으로 열려 있기 때문에 썰물 때에만 낚싯바늘을 상어여 속으로 넣을 수 있어요. 관탈 바다는 썰물 때는 조류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거든요. 그리고 상어잡이는 특히, 바람이 잔잔해야 하고 바다가 거칠지 않아야 하고 날씨가 맑아야 해요. 바람이 한 방향으로 불지 않으면 배가 왔다갔다 해버리니 상어를 못 낚죠. 어쩌다 샛바람(*동남풍)이 불면 상어여에 가서도 그냥 돌아와야 했어요. 특히 구름 없이 날씨가 맑아야만 상어여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고요. 상어여 작업시간은 딱 3시간 정도로 썰물 한 물때만 봐요. 상어낚시가 까다로워요." "먼바다에는 '깔치상어' 말고 다른 상어는 없었어요. 간혹 3m가 넘는 큰 상어도 잡혔는데, 잘 먹지를 않았어. 버렸지. 여기 이호마을 앞바다에도 상어가 들긴 했어. 자리돔 잡이를 시작하는 초여름에 해녀들이 작살로 쏘아 잡았지, 비께(*수염상어의 제주어)라고. 막 흔한 건 아니었고." 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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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가 나타났다!" 한반도 바다의 아열대, 열대화 징후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이 이야기하려는 '상어'입니다. 오늘도 저녁 뉴스는 "강원도 양양에 청새리상어가 나타났다, 울산 앞바다에 백상아리가 낚시꾼의 채비에 걸렸다, 제주도 서귀포에서 귀상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초래한 해양 고수온, 해양 열파 현상으로 고등어, 전갱이 등 난대성 어종이 북상하고 먹잇감을 쫓아온 상어의 출몰 빈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 연근해에 분포하는 상어는 청상아리, 악상어, 무태상어, 고래상어 등 대형 상어류를 포함해 별상어, 돔발상어, 수염상어 등 총 49종이며, 이 중 28종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입니다. 해양수산부는 고래상어와 홍살귀상어 2종을 해양보호생물로 지정(2016년)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종의 상어도 법정보호종에 추가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상어가 발견되면, 언론은 '식인' 상어의 제목으로 앞다퉈 보도합니다. 우리에게 상어는 항상 무서운 존재이고, 인간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존재, 퇴치해야 할 '몬스터'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과연, 상어는 그런 존재일까요?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은 제주도의 상어, 나아가 기후위기로 더욱 출몰이 잦은 대형 상어를 기록하는 <상어 기록단>을 꾸렸습니다. 한국 바다에서 상어를 직접 접해온 어부, 해녀, 수협 관계자, 전문 연구자를 찾아 상어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려 합니다. 과거에는 어떤 상어들이 존재했고,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그리고 오늘날 급변하는 해양환경에서 상어의 출현 양상은 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펴보려고요. 식인 상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해양생태계의 균형을 조절하는 핵심종으로서 상어를 만나려 합니다.
<상어 기록단>의 한반도 상어 인터뷰는 총 10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 상어 인터뷰를 통해 우리의 삶에서 상어의 존재와 의미, 해양 생태계에서 상어의 역할, 기후위기가 초래한 상어의 잦은 출현과 그 의미 등을 추적하려 합니다. 상어 이야기, 이제 시작합니다. <기자말>
[윤상훈 기자]
고영길 어르신은 1942년생 말띠이고, 올해 85살이다. 일제 강점기,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고모들을 따라 부모님이 모두 일본으로 일하러 갔고, 그곳에서 태어났다. 고영길 어르신의 할아버지는 제주시 이호마을 토박이였다. 일본에서 제주로 잠깐 들어온 사이, 제주도의 비극적인 '제주4.3사건'이 터져서 가지도 오지도 못한 채 제주시 이호마을에 지금까지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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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영길 어부 |
|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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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시 이호마을의 고영길 어부의 집에 1967년 결혼 사진이 걸려 있다. |
|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
"우리 가족은 살림이 어려웠어요. 한 번은 친척네 집에 제사용 생선을 사러 갔는데, 물건이 있어도 숨겨버렸어요. 돈을 못 받을까 생각해서 그랬던 거죠. 그때 어머니가 '궨당도 필요 없다'(*가까운 친척도 필요없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어요. '어머니 걱정 맙서, 나가 바당을 댕기쿠다'라고요. 나이 13살에 고깃배를 처음 탔어요. 노를 저어 가는 '풍선'인데 네 명이 탔고, 서로 번갈아 노를 저어야 했어요. 하지만, 나는 너무 어려서 노를 젓지도 못했어요."
- 노를 젓지도 못할 만큼 어렸는데, 어떻게 배를 타신 거죠?
"동네에서 잘 아시는 분이 선장님이었는데, '이제 고치 글라'(*같이 가자)해서 고깃배를 처음 타게 됐죠. 그때는 고기잡이를 낮에 했는데. 이호동 포구에서 출발해 관탈도(*제주 북부에 있는 추자면 소속 무인도) 가는 길목에 '지픈 목'(*깊은 목. 지금의 제주해협)이라는 바다가 있어요. 그곳은 수심이 대략 90발(*한 발을 1m 50cm 잡으면 대략 130m 이상 깊은 수심) 정도 들어가요. 그곳은 수심이 깊으니 고기를 낚자고 해도 고기가 물었는지 말았는지 알 수가 없었지. 선장님이 나한테 낚싯줄을 당겨보라고 했지만 '대맹이만 두 개 올라왔어요'(*눈만 달려 있을뿐 상황 파악이 안되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 아무것도 모르고 눈치가 없다는 표현임). 선장님이 하는 말이 '이제부터 미끼를 끼워서 내가 낚싯줄을 챌 테니, 너는 당기기만 하라'라고 하더라고요."
- 고기가 물었는지 말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다 상황도 모르고 고기잡이가 어려웠을 텐데요, 상어낚시는 어떻게 가능하셨어요?
"배 탄 지 딱 한 달이 지나니 고기가 물고 늘어졌는지 미끼만 따먹었는지, 요령을 알겠더라고. 그 후론 나이든 경험 많은 어르신들과 고기잡이를 나가도 나를 따라오지 못했지. 매번 내가 1등이고 큰 고기만 낚았지. 그때는 주로 갈치를 낚았는데 이젠 상어잡이에 나가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좋다, 나도 나가보자'라고 한 거야."
- 상어잡이를 나갈 땐, 어떤 어구를 챙겨갔나요? 상어 미끼는 뭐로 쓰셨어요? 특별히 준비한 게 있는지요?
"강철로 만든 마삭(*양쪽에 낚싯바늘을 매다는 용도의 쇠줄) 양쪽에 정술(*낚싯줄)을 매달아 바늘을 묶었지. 마삭 가운데 봉돌을 달았고. 낚시 원줄과는 귀두리기(*낚싯줄 끝이나 특정 위치에 매달아 장비를 안정시키는 도래)로 연결했어. 여기 정술은 외삼촌이 동남아에서 가져온 걸 조금 얻었어. 낚시 원줄은 100~120발 정도 준비했고, 낚싯줄에 돼지 피를 옷에 감 먹이듯 치대서 둘둘 감아 큰 솥에 물들였어요. 그렇게 해야 낚싯줄이 까슬까슬한 게 상어 입질을 잘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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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물 짜는 어구 |
|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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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어잡이 낚싯바늘과 소나무 닻을 설명하며 그린 그림 |
|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
"상어여는 이호마을에서 대관탈도를 향해 가다 보면, '지픈 목'을 지나야 해요. 노를 저어가면 2시간 반 걸렸지. 거기가 상어 밭이죠. 그곳은 그다지 넓지 않아서 배 3척을 대면 충분해서 다른 배들이 오지도 못해요. 그 옛날에 '지픈 목'을 지나 상어여를 어떻게 알아서 상어를 낚았는지 몰라요. 참, 신기하지. 나중에 기계배에 어탐기를 달아 살펴보니, 수중여가 일직선으로 100m 정도 뻗어 있는데, 마치 사람 사는 집처럼 서쪽으로 열려 있더라고. 큰 돌덩이 여 밑에 상어가 있었어."
- 지금은 어탐기가 있어서 상어여를 찾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그때는 상어여를 어떻게 찾아서 낚싯줄을 넣었을까요?
"가늠을 했지. 옛날 할아버지부터 해온 일이지요. 그때는 나침반이 없었으니까. 상어여 근처에 도착하면 'ㄱ' 자 모양으로 동쪽 가늠과 남쪽 가늠을 했어요. 우선 남쪽 가늠은 검은오름과 도두봉 사이에 걸친 오름을 맞춰요. 그런 다음 동쪽 가늠을 하는데, 한라산 오름들이 떨어졌다가 겹쳐 보이는 곳을 찾았고요. 바로 그때 닻을 내리면 상어여에 정확히 떨어뜨릴 수 있어요."
- 상어잡이는 한 달에 두세 번밖에 못나간다고 하셨는데요. 상어여를 찾아 상어잡이를 나갈 때 특별히 고려한 건 무엇인가요?
| 관탈도에 대하여 |
| 관탈도는 대관탈도(큰 관탈도)와 소관탈도(작은 관탈도)로 이뤄져 있다. 대관탈도는 제주도에서 30km, 추자도에서 24km 거리에 있으며, 소관탈도는 대관탈도 서쪽으로 10km 떨어져 있다. 행정구역은 추자면 묵리 144번지와 143번지이다. 관탈도는 '화급히 벗어나야 하는 섬'이란 뜻으로 '화탈(火脫)'이라 부르거나, '육지의 맨 끝'이라는 의미의 '가탈이'라고 불렀다. 옛 사람들은 육지에서 추자군도를 지나 관탈도에 이르면 육지가 끝난다고 했다. 관탈도에서 제주도 방향으로 수심 130m의 골이 깊은 제주해협을 지나야 제주도에 다다를 수 있다. 고영길 선생님이 말한 '상어여'는 관탈도와 제주해협 사이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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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관탈도. 제주시 추자면 묵리에 속한 무인도이며 제주도 황금어장으로 알려져 있다. |
|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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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탈도에서 바라본 제주도 한라산 |
|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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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관탈도. 관탈도 서쪽으로 10km 떨어져 있다. |
|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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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탈 등 주변해역’은 2025년 4월에 해양수산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지정 근거로 언급된 수거머리말과 산호류 서식지가 아름다운 곳이다. |
| ⓒ 해양수산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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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가지해송 |
|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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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둔한진총산호 |
|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
"노를 저어가는데 세 명이면 못 갑니다. 네 명이 필요한데 세 사람이 노를 저으면 한 사람은 쉬어야 해요. 번갈아 노를 저으며 갔지요. 상어여에 도착하면, 상어 낚싯줄을 썰물 조류에 따라 계속 풀어주며 흘려줘요. 그러다 보면 낚싯줄이 더 이상 흘러가지 않는 곳이 나오는데, 거기가 상어 집이죠. 상어가 있으면 당장 물었지요."
- 그때 잡았던 상어는 주로 어떤 상어였어요?
"'깔치상어', 그것밖에 없었어. 껍질이 까슬까슬하고 진한 갈색에 특별한 무늬는 없어요. 등지느러미에 하나, 꼬리지느러미에 하나씩 가시가 두 개 있어요. 상어 가시가 손에 찔리면 배 안에서 뒹굴 정도로 그렇게 아파요. 머리는 뭉툭하고 배는 하얗고. 크기는 1m 50cm 정도까지 컸고 작은 것은 1m 정도고요. 한 번 나가면, 한 사람마다 5~6개, 혹은 10개 낚은 사람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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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상어 분류매뉴얼>에 확인한 돔발상어. 등지느러미 앞에 강한 가시가 있다. |
| ⓒ 국립수산과학원 |
"상어를 잡아 오면 어머니가 지게를 져서 동문시장에 팔러 갔어요. 동문시장에 상어를 취급하는 상인이 있었는데 물건을 넘기면 잘라서 팔더라고. 그때는 어머니가 팔아서 가격도 몰랐지만, 상어 가격이 좋았을 거라. 돈 있는 사람들은 제상에 돼지고기 적꼬지(*'적'은 꼬치에 꿰어 구운 음식을 뜻하는 제주어)처럼 상어 꼬지를 해서 올렸죠. 상어 기름도 좋았는데 먹으면 '듬삭하게'('듬삭하다'. 진하고 풍성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차는 느낌을 담은 제주어) 맛있었어. 많이 낚으면 상인이 직접 포구로 상어를 받으러 오기도 했고요. 뭐, 한두 개 낚으면 팔지 않고 포구에서 동네 분들과 썰어서 술안주로 하기도 했고요."
- 노 젓는 배를 하시다가 기계배를 사셨다고 하셨는데요. 기계배로는 어디에서 주로 상어를 잡았지요?
"기계배를 시작하면서 관탈도 주변까지 갔어요. 큰 관탈과 작은 관탈 사이에 주낙을 놨어요. 상어는 관탈도 주변밖에 없었지요. 상어 좋은 것들이 주낙에 올라왔어요. 여기서도 위치를 가늠해야 하는데, 큰 관탈을 기준으로 작은 관탈과 비양도를 맞춰 오른편에 5개, 왼편에 5개를 놓는 식으로 주낙을 40개 정도 놨어요. 14살에 처음 상어를 잡았고, 55살에 상어를 마지막으로 잡았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는 기계배로 다른 고기를 잡으러 다녔어요. 서쪽 비양도에서 조기, 장대, 우럭, 장어를 잡았고, 성산에서 갈치를 잡고, 표선에서 북조기(*눈볼태의 제주어)를 잡고, 곽지 앞바다에서 한치를 많이 잡았어."
- '깔치상어' 말고 또 다른 상어는 잡히지 않았던가요? 다른 곳에선 해녀 삼촌들도 상어를 잡았다고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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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광민 사진?도구 기획전>에 전시된 ‘비께’ 사진. 고광민 서민생활사 연구자의 설명에 따르면 “비께무레는 헛무레의 일종으로, 해녀들이 물속에 들어가 수염상어를 잡는 물질을 일컫는다. 제주에서는 수염상어를 비께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해마다 늦봄부터 여름 사이 산란을 위해 제주 바다를 찾는다”고 한다. |
|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
"바다 좋았지. 지금이랑 많이 달라. 여기 앞, 해안도로가 그때는 모두 모래밭이었어. 넓었지. '모살개'라고 불렀어. 모래바람에 집이 묻히기도 했고. 그리고 여기 해녀 탈의장 옆에 포구가 있었는데(*이호마을 잉그리드 카페 앞이었다고 함), 이호마을 테우는 모두 여기에 있었고. 나중에 동쪽 마을에 동깨 포구가 생겼고. 당시 이호마을은 100~130호 정도 집이 있었고, 동부락, 서부락, 현사마을 포함해 이호마을 5개 부락의 해녀들 숫자가 100명이 넘었어. 주로 미역 메고 듬북(*밭농사에 거름으로 쓰는 모자반류)을 했지. 당시 바다에 듬북이 얼마나 많았냐면, 듬북 때문에 노를 저어서 배가 나갈 수가 없었어. 뱃머리에 걸리고 노에 엉키고 그랬어. 동네 해녀들이 와서 듬북을 걷어내 바다에 길을 내줬어. 덕분에 바다에 나갈 수 있었지."
- 혹시, 고기잡이할 때 썼던 어구나 그물, 조업을 기록한 장부 등 가지고 계신 게 있을까요?
"다 팔았지. 이젠 아무것도 없어. 15살 때부터 물때마다 고기 잘 무는 곳까지 장부에 다 기록해뒀는데. 배 팔 때 각종 도구랑 장부까지 싹 다 넘겼어. 서쪽 비양도에 사는 김치원이라는 사람한테. 지금은 그이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더라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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