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으로서 사죄”…위안부 ‘귀향’ 확장판, 오사카서 틀자 생긴 일
미공개 6분 더해 내달 26일 개봉
지난 27일 오사카 최초 공개
관객 200명 중 과반수 일본인
"조금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이 영화 봤으면"

" “200여명 관객의 절반 이상이 일본 분이었어요. 관람 후엔 ‘일본인으로서 사죄한다’는 분도 계셔서 정말 놀랐습니다.” " 일본군 위안부 실화 영화 ‘귀향’(2016)의 확장판을 지난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처음 공개한 조정래(53) 감독의 말이다. 올해 개봉 10주년을 맞는 ‘귀향’은 1943년 열다섯에 중국 지린성 목단강의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강일출 할머니의 참혹한 실화를 담아 개봉 당시 관객 358만명을 동원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위안소로 끌려간 소녀들은 나이부터 추궁당한다. 열여섯, 열다섯살 언니들을 제치고 가장 어린 열네살 정민(강하나)이 일본군 지휘관의 상대로 지목된다. 이렇게 시작한 영화는 지옥 같은 나날, 소녀들이 서로를 지탱한 우정에 초점을 맞췄다.

내달 26일 개봉 예정인 확장판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는 같은 위안소의 중국인 소녀에 관한 6분여 미공개 장면을 더했다. 인근 마을에서 위안소로 끌려온 중국 소녀 자오이 페이가 일본군의 화풀이 상대로 지목돼 난자당해 죽고, 딸의 시신을 안고 오열하던 모친까지 단칼에 살해되는 장면 등이다. 3시간에 달한 초기 편집본엔 포함됐다가 덜어낸 부분이다.
병든 소녀들이 사살되는 대목도 어디선가 나비가 날아드는 순간을 삽입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집에 두고 온 여동생이 생각난다며 위안부 소녀들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고 남몰래 돌봐준 일본군 청년도 이 장면에서 함께 처분된다.
귀국 이튿날인 30일 서울 신당동 카페에서 만난 조 감독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지에 있던 내용이다. 목단강 위안소는 중국에서도 가장 큰 규모였고 상당히 많은 중국 여성들도 고초를 당했다”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는 미얀마, 필리핀,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 여성들이 공통으로 당한 역사다. 일본군 위안부의 가장 큰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 정부가 전시 성폭력을 인류역사상 최초로 시스템화했다는 것이다. ‘한국이 일본에 당했다’는 걸 넘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인권유린이란 점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었다”고 확장판 배경을 밝혔다.

이번 오사카 상영은 영화에도 출연한 재일교포 3세 김민수 대표가 이끄는 극단 달오름 도움으로, 현지 문화공간 벨노르퓨세에서 28일 하루 동안 3회차 진행했다. 총 200명 가량 관객이 찾았다. 조 감독은 “대관료 등을 위해 관람료(2000엔)를 내야 했는데도 극단 측의 SNS(소셜미디어) 글을 보고 찾아왔다는 일본 분이 많았다. 재일교포 관객이 대다수일 거라 예상했는데 놀랐다”면서 “시민단체 관계자도 있었지만, ‘교과서에도 전혀 나오지 않아 몰랐다’는 MZ세대도 있었다”고 했다.
영화사 측이 제공한 현지 관객의 관람평 인터뷰 내용 중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고, “조금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발언도 있다. 현지 관객들이 상영 후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고 솔직한 후기를 밝혔다.

한 일본 남성 관객은 “나 자신이 그 당시 일본인이었고 전쟁에 나갔다면 똑같이 심한 일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너무나 더 괴로운 영화”라며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다.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고백해준 사람들(위안부 피해자)이 많은데 ‘증거가 없잖아?’ ‘못 믿겠어’라는 말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재일교포 3세라 밝힌 또 다른 관객은 조부모님이 강일출 할머니와 같은 경북 상주 출신이라며 “만약 우리 할머니가 끌려가셨다면 저도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현지 작가이자 비평 글을 써온 아이다 요스케 씨는 관람 후 자신의 SNS에 “일본인인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를 짊어지는 것뿐”이라고 남기며 조정래 감독의 현지 무대인사 내용을 이렇게 인용했다.
" “이 영화는 결코 반일 영화가 아닙니다. 이국땅에서 죽어간 소녀들을, 적어도 영혼만이라도 고향으로 데려와 따뜻한 밥 한 끼 먹게 해주고 싶어서 만든 영화입니다.” " 이는 조 감독이 일반 시민들의 모금으로 14년이 걸려 ‘귀향’을 완성하며 되뇌었던 연출 의도이기도 했다.

30일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조 감독은 “현지 분위기가 10년 전과는 달랐다”면서 “2016년엔 일본 개봉을 추진했지만, 우익 단체 협박이 많아 극장주가 포기했다. 당시 오사카 상영 때도 대다수가 재일교포 관객이었고 상황이 엄중해 경호도 세웠다. 상영 도중 소리 지르거나 일본말로 ‘거짓말!’하고 화내며 나간 관객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번 상영에 일본 관객이 많이 온 걸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우익들이 올 것을 대비해 모객할 때 사전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등록하게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번엔 그런 사고가 전혀 없었다”는 조 감독은 “레게 머리를 한 일본 청년은 ‘일본인으로서 내가 알던 시점과 여기 한국인의 시점으로 만든 영화가 좀 다른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양국의 관계가 예전보다 좋고 그런 흐름 속에서 영화를 끝까지 봤다’고 솔직하게 말하면서 할머님들의 명복을 빌었다”고 했다. 이어 “지금의 한일 관계는 굉장히 가깝다. 젊은 세대의 교류가 많고 문화의 힘도 컸다”면서 “사이가 좋을 때 서둘러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제대로 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귀향’ 확장판은 일본 개봉도 추진 중이다.

‘귀향’은 2015년 12월 29일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에 대해 비판과 논의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국내뿐 아니라 일본, 미국 등지에서 최근까지도 관람 운동이 이어져온 작품이다. 그간 일본 정부는 형식적인 반성 표명은 있었으나, 2018년 미쓰비시 등 일본 전범 기업의 “손해배상(위자료) 책임”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거부하고 역사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내용을 전면 삭제하는 등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평가받아왔다. 유엔(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2024년 일본 정부에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배상 청구 등 피해자들의 권리 보장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재차 권고하기도 했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에선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실명 증언한 이래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수는 200여명이었지만, 대부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귀향’의 주인공 강일출 할머니가 올해 3월 28일 작고하면서 국내 생존자는 단 5명이 남았다. 모두 90세 이상이다.
조정래 감독은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일본 정부가 머리 숙이고 (잘못을) 인정하는 말 한마디 듣고 싶어했던 할머니들이 결국 못 듣고 돌아가셨다. 올해 어버이날에 ‘귀향’ 상영회에서 뵌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네가 해결하라’ 하시더라. 시간이 얼마 없다는 절실한 마음에서 영화로 더 널리 알리고 해결의 물꼬를 트고자 했다”고 재개봉 배경을 밝혔다. 그는 또 “이재명 대통령은 경기도지사 시절 피해자 중심의 시각에서 바라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반복해서 언급했다”면서 “정부가 일본의 조속한 배상과 제대로 된 사과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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