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직접 연기한 나홍진... "눈물 흐르는 속도까지 계산했다"

이선필 2026. 7. 3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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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 이 사람] 영화 <호프> ① 나홍진 감독 단독 인터뷰... "스태프들 날 의심했을 것, CG 대신 실제로 촬영"

영화의 모든 장면은 협업의 결과물입니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감독의 얘기를 듣고, 그 장면 뒤 숨은 주인공을 만나봅니다. <기자말>

[이선필 기자]

 영화 <호프> 콘티 중 일부.
ⓒ 포지드필름
"지난 10년 사이에 서로 엄청 많은 변화가 있지 않았나요? 이렇게 서로 짠해지네요(웃음)."

영화 <곡성> 이후 10년 만에 만난 나홍진 감독이 건넨 인사말이었다. "복귀가 너무 오래 걸렸다"는 화답에 그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호프>를 준비해 온 과정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머릿속에 한 장면이 그려질 때까지 아침에 눈뜨면 커피 마시면서 생각하고, 밥 먹으며 생각하고, 담배 피우며 생각하고, 목욕탕에 가서도 생각하고 그랬다."

시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 나홍진의 영화는 매번 설왕설래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다. 7월 15일 개봉해 한창 상영 중인 <호프> 또한 그렇다. 1980년대 무렵을 연상시키는 가상의 마을 호포항에 나타난 외계 존재와 이를 쫓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객마다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나 감독은 거의 일관되게 답해왔다.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고.

지난 5월 17일 제79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처음 공개된 뒤, 나 감독과 배우들을 통해 영화와 관련한 많은 정보가 이미 나온 상황이다. 7월 29일 서울 성내동의 사무실에서 만난 나홍진 감독에게 조금은 다른 질문을 해야 했다. 특정 장면을 중심으로 질문했고, 나 감독은 기존에 알려진 이야기에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보탰다.

[기자의 장면] 바미기르와 범석의 눈맞춤... "<호프>의 주제 담겼다"
 영화 <호프>의 촬영 현장 모습.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알려진 대로 <호프>는 15년 전 미국 여행 중에 들른 한 마을 풍경에서 비롯됐다. 영화 제목과 동명인 그 마을은 사람의 흔적이 없다시피 했다고 한다.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한 평론가가 건넨 "(<곡성>까지 보고 나니) 이제야 나 감독의 결이 보인다"는 말이 있었고, "그 결로부터 도망쳐야겠다"는 나 감독의 결심도 작용했다.

그 무렵 한 광고대행사의 제안으로 쓴 단편 시나리오도 주요 동기였다. "한 식당을 찾은 경찰이 잠시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니 모든 사람이 사라졌고, TV에선 이상한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는데 이걸 확장시키고 싶기도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리고 <호프> 직전까지 준비했다가 중단한 두 장편 프로젝트를 빼놓을 수 없었다. 1982년 경남 의령에서 주민 56명이 희생된 '우범곤 순경 총기 사건'과 한국형 크리쳐를 표방한 '로보트 태권브이'다. 나 감독은 "우 순경 사건 관련자들을 만나며 매우 자세하게 취재했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분명 <호프>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태권브이 또한 제 무의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답했다.

속초에 거주하는 나 감독은 2018년 초고를 완성한 뒤 웨스트월드(시각비주얼 특화 회사) 손승현 대표를 대포항으로 불렀다. "우리가 해보자"는 말로 의기투합해 지금의 <호프>가 탄생할 수 있었다. 경찰인 범석(황정민)과 성애(정호연), 마을 청년 성기(조인성) 일행이 외계 존재들과 쫓고 쫓기는 단순한 서사는 밀도 높은 액션으로 채워졌고, 한 장면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해당 장면은 아래와 같다.

성애가 운전하는 순찰차를 탄 범석은 마을 주민들을 무참히 공격한 바미기르(카메론 브리튼)를 쫓으며 총을 난사한다. 직전까지 자신들을 공격해 오던 바미기르가 도망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성애가 속도를 높여 바미기르와 평행으로 달리던 찰나 범석은 바미기르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고, 순간 당황한다. 바미기르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흐르고 있었던 것.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사냥감이 사냥꾼이 되고, 사냥하던 이들이 사냥감이 되는 순간이다. 서로의 입장이 뒤바뀐다. 그 짧은 순간에 영화의 주제 의식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악으로 알았던 놈의 얼굴을 마주하니 어떤 사연이 느껴지고, 그놈 입장이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그 입장은 무엇일까.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가 답변일 수 있다."

제작사가 28일 공개한 영상에는 이 장면을 위해 나 감독이 직접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후반 작업을 위한 테스트 영상이었다. 그는 "눈물과 땀이 가장 정교하고 이상적인 형태로 흐르도록 속도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바미기르(카메론 브리튼), 아이도보르(테일러 러셀), 조르(알리시아 비칸데르) 등 외계 존재 이름에 얽힌 농담처럼 알려진 일화 또한 "맞다"고 했다. "세자를 지키며 보초를 서야 하는데 밤이 너무 길어! 그러다 바미기르가 됐고, 세자를 돌봐야 하니 아이도보르가 됐다"며 그가 재차 밝혔다.

[감독의 장면] "모든 순간이 전부 특별... 하나만 꼽을 수 없다"
 영화 <호프>를 연출한 나홍진 감독.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현재까지 온라인에서는 <호프> 속 캐릭터나 특정 장면을 패러디한 여러 밈(meme)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여러 장면이 관객에게 와닿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감독 입장에선 어떤 장면을 회심의 순간으로 꼽을지 궁금했다.

"액션이 일어나는 모든 공간이 내겐 다 너무 특별해서 꼽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마베이요(마이클 패스벤더)와 함께한 숲속 장면, 도로 추격 장면 등 하나하나 진짜 어렵게 만들어낸 것"이라며 그는 "최고 수준의 액션 시퀀스를 만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강조했다.

"끊임없이 상상하고 생각하며 한 장면씩 만들어 갔다. 모든 장면을 낮으로만 설정한 것도 세트 촬영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크리쳐가 등장하면 시각적 통일성을 위해 블루 스크린 세트에서 촬영하게 된다. 그게 싫었다. 실제 액션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VFX(시각특수효과) 팀에게 가혹할 정도로 요청했다. 촬영해 놓은 걸 잘 붙여달라고.

프리프로덕션(사전제작) 때 세운 촬영 계획은 차라리 찍지 않았으면 않았지, 현장에서 바꾸지는 않았다. 약속이잖나. 저도 선배들에게 그렇게 배웠다. 촬영은 이미 프리 때 다 끝내는 것이라고. 스태프들이 모두 그 약속을 잘 지켜주셨다. 사실 다들 속으로 이게 진짜 촬영이 가능하냐 의심을 많이 했을 것이다. CG(컴퓨터그래픽)를 상당 부분 사용할 것이라 예상했을 텐데 그냥 실제로 찍어버린 거지."

그는 "영화에 구현된 장면들은 한국은 물론 해외 작품에서도 보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자평했다. 높은 나무로 이뤄진 숲을 말을 타며 내달리는 장면, 성기가 말 위에서 범석의 경찰차로 옮겨타는 장면 등을 예로 들며 나 감독은 "너무나 감사하게도 스태프들이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주셔서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감독의 역할은 그런 의심과 불안을 확신으로 바꿔 가는 데에 있지 않을까. 그는 "10년 만에 제작진이 다시 모였는데 그 사이 다들 베테랑이 됐더라"며 웃어 보였다.

<호프>는 개봉 전부터 한국 영화산업의 향방을 가늠할 주요 작품으로 거론됐다. 침체한 산업 분위기에서 나온 대형 블록버스터이자 제작면에서 도전을 감행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다. 산업과 창작 양쪽에서 위기감을 느끼는지 물었다.

"영화산업 전반을 두고 말하면 한국 영화와 해외 영화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 같다. 관객이 찾는 극장에서는 모든 영화가 같은 무대에서 경쟁하게 됐다. 그래서 그 구분이 의미 없을 것 같다. 개인으로서는 (위기감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 영화를 만들면 된다. 그걸 만들기 위한 재원 마련 또한 제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문제에 부딪히면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지. 선수는 어떻게든 계속 열심히 만들어야 한다."

나 감독은 다음 인터뷰이로 세 명의 키스태프를 추천했다. 자신의 집 가까이에 산다는 유상섭 무술감독, 특수효과 장인으로 알려진 홍장표 감독, 그리고 특수분장을 맡은 황효균 감독이었다. "세 사람이 함께 이야기하면 재미있는 제작기가 많이 나올 것"이라 전했다.
 영화 <호프>의 촬영 현장 모습.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호프>에 얽힌 남은 이야기
나홍진 감독은 숲과 도로에서 끈질기게 외계 존재와 사투를 벌이는 성기를 두고 "지구인으로서의 어떤 자존심, 체면을 상징"이라 답한 바 있다. 혈투에 쓰러진 성기를 내려다보며 마베이요가 던진 말이 마치 영어의 "나이스 투 미트 유(nice to meet you)"처럼 들린다는 해석이 있어 물었다.

"그건 아니고, '이 미천한 종자여'라는 뜻이다. 사실 그 장면부터 자막을 넣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또 하나 외계 존재를 목격한 해술(임현식)은 영화의 숨 쉴 구멍과도 같다. "해술이 아저씨가 그런 거면 맞아"라며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신뢰를 드러낸다. 해술이 성애 앞에서 진술 도중 설사를 언급하며 장광설을 늘어놓는 대목에서는 객석에서 제법 큰 웃음이 터졌다. 이 캐릭터를 설정한 이유도 궁금했다.

"살다 보니 늙은 남자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더라. 주의를 분산시키는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잘 들어보면 중요한 힌트가 군데군데 담겨 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그런 힌트를 알아채는 건 가치 있는 일이라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그게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 입장마다 서로 다른 말을 하게 되니까. 기억이 온전하게 객관화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또 다른 이유는 우주적 관점에서 본 인간의 비루함을 담고 싶었다. 그렇다고 인간 자체가 비루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관점의 차이다."
이후 [그 장면, 이 사람] 영화 <호프> ②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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